빡빡머리 깎은 날 두 달 전쯤 캐나다에서 머리를 깎은 뒤 지금까지 차일피일 머리 깎는 일을 미루다보니 어느 새 더벅머리 총각이 되어버렸다. 오랜만에 들른 단골 이발소는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평소에 내 머리를 깎아 주던 이발사는 이미 다른 손님의 머리를 깎고 있어서 할 수 없이 처음 보는 .. 강론 말씀 (가나다순)/최 강 신부님 2011.12.05
당신이 찾아야 할 것 그리 넓지도 않은 방을 이미 삼십분 가까이 이 잡듯 샅샅이 뒤졌는데도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휴대폰이 보이질 않는다. 쓰레기통을 뒤엎어도 보고 책상서랍을 거꾸로 털털 털어도 보고 침대 밑에 고개를 처박고 휘휘 둘러봐도 어디에도 없다. 밀라노에 가 있는 아우구스티노 .. 강론 말씀 (가나다순)/최 강 신부님 2011.12.05
사람된 도리부터 9교시 수업이 끝나자 언제 지루해 했었냐는 듯이 다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강의실을 나서는데 ‘로따 로마나’(Rota Romana, 로마공소법원)에서 재판관으로 근무하시면서 혼인법을 강의하시는 까베를레띠 신부님이 나를 불러 세우셨다. 그리고는 ‘이 곳에서 공부하며 살아가는데 .. 강론 말씀 (가나다순)/최 강 신부님 2011.12.05
갈치속젓과 고르곤졸라 - 신앙에 감동이 없다면 성지 순례를 오셨던 한 수녀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한국 음식 몇 가지를 주셨는데 그 속에 누룽지와 갈치속젓이 있었다. 고향이 군산이라서 모든 해산물을 좋아하긴 하지만 어쩐지 갈치속젓은 냄새도 그렇고 색깔도 그렇고 해서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강론 말씀 (가나다순)/최 강 신부님 2011.12.05
아줌마가 무서워 - 약속 로마에 있는 대학들의 정문 앞에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조그만 깡통 하나를 앞에 놓고 구걸을 하는 집시 아줌마들을 볼 수 있다. 내가 다니는 라떼란 대학 앞에도 덩치는 투포환 선수만 하고 이빨은 모두 금니로 해 넣고는 ‘배고파요’라는 푯말을 들고 앉.. 강론 말씀 (가나다순)/최 강 신부님 2011.12.05
이상한 성지순례 이상한 성지순례 선교지에서 휴가 나온 선배 신부님이 한 성지 순례팀의 지도 신부로 로마에 오셨다. 지난 토요일 저녁 그 일행과 만나 식사를 함께 한 뒤, 평소에 가보고 싶었기도 했고 또 요즘 내 주위의 고통 받고 있는 분들을 위해 특별한 기도도 바치고 싶은 맘이 있어 산 죠.. 강론 말씀 (가나다순)/최 강 신부님 2011.12.05
커밍 아웃 어느 날 박쥐는 새들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너, 새야? 아니면 쥐야?” “몰라, 난 그냥 박쥐야. 그냥 박쥐하면서 너희들하고 친구로 지내면 안돼?” “안돼! 너 새하고 싶으면 항상 우아하게 하늘만 날아다녀. 한 번만 더 땅에서 쥐하고 놀면 넌 영원히 새 축에는 못 끼일 테니까 .. 강론 말씀 (가나다순)/최 강 신부님 2011.12.05
판단 중지 금요일 저녁 무렵, 산책을 하는 도중 본의 아니게 어느 창문이 반쯤 열린 가정의 풍경을 엿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평화로워 보여서 나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그 광경을 훔쳐보고 싶어졌다. 살짝 살짝 보이는 한 중년 이탈리안 여성이 그 반쯤 열린 창문 사이에서 입가에 웃.. 강론 말씀 (가나다순)/최 강 신부님 2011.12.05
시장 구경 - 하느님과 붙잡은 손을 놓지 마시라. 누가 어린 시절 내게 있어서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엄마따라 시장가기’를 그 첫째로 꼽는데 아무런 주저함도 없겠다. 시장 입구에서 ‘때밀이 타올’을 파는 아저씨로부터 시작하여 야채전과 어물전을 지나 모든 물건들이 반질반질하게 윤기가 흐르.. 강론 말씀 (가나다순)/최 강 신부님 2011.11.23
전동 칫솔 한국에 있을 때 적어도 내 상식으로는 이해하기가 조금 힘들었던 사람들 중에 목욕탕에서 돈을 내고 자기 몸에 밀린 때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떻게 다른 이가 자기의 겨드랑이며 옆구리를 만질 때의 간지럼을 참을 수 있으며 또 어떻게 낯선 사람이 자기의 .. 강론 말씀 (가나다순)/최 강 신부님 2011.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