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13일 - 모니카 언니 아들들에게
11월 말에 저는 아예 짐을 싸서 요양 펜션을 나왔어요. 아들들 방학을 함께 보내려구요. 떠나기 전날, 저보다 두 살 위인 모니카 언니랑 호수공원에서 산책했어요. 언니는 봄이 되면 다시 오라고, 언제든 다시 오라고 신신당부를 했지요. 그렇게 헤어진 후 보름밖에 안 되어서 언니는 세상을 떠나셨어요. 빈소에 다녀와서 언니의 아들들에게 편지를 썼어요.
사랑하는 모니카 언니의 아들들에게
아들!! 덤앤더머 아줌마야. 엄마랑 나는 항암치료를 너무 오래 해서,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기억이 깜박깜박해서 자꾸 맹한 짓을 하곤 했지. 한구석이 빠진 대화인데도 서로 잘 알아듣고 통하는 게 신기해서 덤앤더머 아줌마라고 이름지었다지? 별명, 마음에 들었어.
엄마랑 시장에서 도넛이랑 국수 사먹던 일, 하느님 흉보면서 재미있어 하던 일.… 그런 사소한 일들이 기억날 때마다 눈물이 나. 내가 이런데, 가족은 오죽 슬프랴 싶어서 마음이 아파.
보름 전 펜션을 떠나기 전에 엄마랑 아들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 엄마는 가족 사랑이 극진하셨어. 모니카라고 세례명을 지은 이유도 모니카 성녀처럼 아들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다고 하셨지. 두 아들 군대 보내 놓고 정말로 많이 울고 기도하셨다고 해. 아들들 학교 다닐 때 도시락을 예쁘게 장식해서 싸주던 이야기도 하셨고, 아들들이 엄마 요리를 좋아하는데 해줄 수 없어서 속상하다고도 하셨어. 아줌마가 기억하는 엄마는 그렇게 유난히 사랑이 많은 엄마였고, 헌신적으로 간호하는 남편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착한 아내이셨어. 아줌마는 엄마와 아빠처럼 서로에게 마음을 다하는, 사랑 많은 부부를 만나게 되어서 행복했어. 아줌마가 십 년째 투병하다 보니, 참 많은 환우들과 그 가족들을 알고 지냈거든. 그중 엄마 아빠의 모습이 제일 아름다웠어. 존경스러웠고. 그렇게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는 가족은 드물단다. 엄마는 늘 아빠가 대한민국에 둘도 없는 남편일 거라고, 고맙고 자랑스럽다고 하셨어.
아들들! 우리 덤앤더머 팀은 최근 몇 달 동안은 자주 하느님 흉을 보았단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건강을 얻고 싶은데, 하느님은 자꾸만 ‘영원한 생명’ 카드를 내밀면서 우리 청을 모르는 체하신다고. 하느님은 눈치가 없는 바보팅이라고. 바보팅이 하느님이 눈치도 없이 일찍 엄마를 데려가셨구나.
아들! 어제 장례식장에서 의젓한 모습으로 문상객을 맞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많이 놓였지만, 엄마가 얼마나 간절하고 애틋한 마음으로 가족들과 더 오래 함께하고 싶어 하셨는지 알기 때문에, 아들에게 영적인 위로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 그래서 이렇게 한밤중에 일어나 훌쩍이다가 컴퓨터 앞에 앉았어.
아들들에게 엄마의 영적 체험 하나, 그리고 엄마와의 대화 주제였던 ‘영원한 생명’에 대한 아줌마의 체험 하나 보낼게. <하느님은 부재 중>이라는 제목의 메모와 <성모님께서 주신 영상편지>라는 글이야.
하느님 안에서 잘 지내던 사람들은 보통 세상을 떠나기 삼 개월쯤 전에 하느님을 만나는 것 같아. 엄마는 그 체험 이후로 많이 아프셨지만, 영적으로는 훨씬 기운 넘쳐 보였단다. 분명 엄마 목소리가 밝고 기운차게 변했었지. 엄마를 만나주신 하느님께서 엄마의 마지막 순간까지 엄마 손 꼭 잡아 위로해주시고 힘을 주셨을 거야. 그리고 엄마는 ‘영원한 생명’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가까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계실 거야. 그러니, 아들! 앞으로 울게 되더라도, 그 눈물이 너무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들들이 엄마를 기억하면서 느끼는 슬픔이 엄마의 마음처럼, 삶의 모습처럼 아름답고 따뜻하기를 바라.
--------------------------------------------------------
하느님은 부재 중 (2015년 9월 16일)
제가 기거하고 있는 요양펜션의 별채에 사는 모니카 언니는 4년 전 유방암이 발병하여, 거의 쉬지 않고 항암치료를 했는데도 계속 전이가 되었고, 최근에 좀 독한 약으로 바꾼 후, 부작용으로 많이 힘들어합니다. 온 몸에 검붉은 발진이 돋고 손톱, 발톱이 들떠서 잘 걷지 못하고, 입안이 헐고 구토증이 일어서 유동식으로만 끼니를 때우고 있습니다. 언니는 투병 기간이 길어지니 하느님이 정말 계신가 싶고, 하느님이 계신다면 이렇게까지 힘들게 하시는 이유가 뭘까 따지고도 싶었고 냉담하고도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하느님 안에 머물러 있어 보려고 ‘성서 사십 주간’ 공부를 시작했고, 공부를 시작하게 된 동기를 적는 칸에 ‘하느님은 부재 중’이라고 적었답니다.
지난 토요일 저녁에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서 기력이 없고, 목 아래로 검붉게 변한 자신의 모습을 보니, 왈칵 서러운 마음이 들어, “저를 이렇게 힘들게 하지 마시고, 데려가시려면 얼른 데려가세요.”하고 기도하고 잠을 청했답니다.
꿈속에서 누군가 언니를 깨워서 일어났는데, 언니 앞에 슬라이드 화면처럼 수많은 사진이 지나가더랍니다. 언니가 통증으로 웅크리고 있는 모습, 이런저런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모습들이 찍힌 사진들을 어떤 형체와 함께 한 장면, 한 장면 넘겨보았답니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 언니의 인생 모든 순간을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시선과 마음을 함께 느꼈답니다. 곧 언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외쳤답니다. “저는 이제 기적을 보았습니다. 당신께서는 진정으로 저와 함께해주셨군요.”
언니가 형부에게 생시처럼 선명한 꿈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형부가 "예수님이 혹시 낫게 해주신다거나 그런 말씀 안 하시던가?"하고 물었답니다. 언니는 큰소리로 대꾸했답니다. "그게 뭐가 중요해? 나랑 함께해주신다잖아."
언니는 주일 미사에서 성체를 모시고 들어와 주체할 수 없이 쏟아지는 눈물로 감사기도를 드렸답니다.
제가 언니에게 “이제 ‘하느님은 부재 중’ 팻말 떼고 ‘하느님과 함께 있음’으로 바꾸어야겠네.”라고 했더니, 언니가 말했습니다. “성서 사십 주간 공부에서 이제 욥기를 읽을 차례야. 나는 욥기를 읽기가 싫었어. 하느님께서 뭔가 내가 원하지 않은 걸 요구하실까 봐. 이제는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읽어봤더니, 욥기에도 '하느님은 부재중이시다'는 말이 있더라고.” 제가 말했습니다. “욥이 그러지요.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라구요.”
언니와 저는 펜션의 정자에 누워서 욥 이야기, 고통이 사명인 사람들도 있을 거라는 이야기, 그러니 우리는 우쭐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킥킥댔습니다. "함께 있으면 뭐해? 아픈 거나 좀 덜하게 해주실 일이지.ㅋㅋ" 하고 하느님 흉도 보았지요.
이젠 언니도 저도 하느님께 한 걸음 더 다가섰음을 기뻐합니다. 하느님께서 또 물으십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언젠가는 우리도 하느님의 질문에 기쁨으로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 하느님, 저도 하느님을 사랑합니다."하구요. 저는 언젠가 있을 그 대화를 마음속으로 그려보면 꼭 눈물이 납니다. 이렇게 그리는 순간에도 하느님께서 저를 안고 계시기 때문이겠지요.
------------------------------------------------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요한 21,13) (원어로는 아가파오? 신적인 사랑을 하느냐? 라는 뜻이라고 함)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예, 사랑합니다."(원어로는 '필레오' 가족애, 의리, 우정을 뜻하는 사랑)
예수님께서 또 물으십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agapao?)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예, 사랑합니다."(Phileo)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물으십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이번에는 베드로의 수준으로 'Phileo" 라고 물으십니다."
베드로는 그만 슬퍼졌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요한 21,17)
-------------------
이하 박진홍 신부님 강의 중에서
....................베드로 사도는 “예, 저는 주님을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할 수 없으셔서 답답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아가파오?’하고 물으셨지만 베드로는 ‘필레오’라고 밖에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
세 번째는 예수님께서 ‘필레오?’하고 물으셨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사랑에 다가갈 수 없으니 놀랍게도 하느님께서 우리들 수준으로 낮추어 다시 물어보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그런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런 하느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울었을 것입니다.
(중략)
.................................
그렇게 기쁘게 지내다가 부제품을 받게 되었습니다.
부제품을 받기 전에 수원의 ‘말씀의 집’에서 한 달간 피정을 했습니다.
동기들이 저를 무섭다고 할 정도로 열심히 피정에 참여했습니다.
저는 대침묵 중에 동기들의 눈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화가 깨질까봐 눈도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 잠잠히 물 위를 걸어 오시는 예수님의 파장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잠재의식 속으로 깊이 깊이 잠기게 되었습니다. 엄청난 세계가 그 안에 있었습니다.
깊이 들어가서......... 발을 살짝 내디뎠을 뿐인데, 1초도 안되는 순간에 100개가 넘는 단어를 만나는 느낌이랄까요.
저는 하느님의 사랑을 ‘만났습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을 사랑하십니까?
“예”라고 대답하실 수 있는 분들은 행복하십니다.
저는 하느님께 “예”라는 대답을 지금까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피정에서 기도를 하는 중에 눈앞에 선 하나가 천천히 그어졌습니다.
제가 다섯 살 때... 여섯 살,... 여덟 살.... 제가 지내온 모든 장면들이 그 선 안에 다 들어있었습니다.
너무나도 또렷하고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심지어 7살 때 자전거를 배우다가 오른쪽으로 넘어져서 바닥의 더러운 이물질이 묻었던 기억도 보였습니다. 그 기억 때문에 제가 그런 경우를 조심하면서 살게 되었고, 그 기억이 저의 어떤 성격을 이루는 부분이 되었고, 그 성격으로 인해 누군가의 어떤 말에 어떤 반응을 하게 되었고..... 부산사람이 충청도 신학교에 오게 되었고.. 신학교에 들어와 기쁘게 살게 되었고....... 그 모든 크고 작은 일들이 모두 하느님이 놓으신 포석이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굵은 선 하나가 그 선을 감싸고 따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치 전선의 피복이 전선을 감싸고 있듯이 굵은 선이 제 인생을 감싸고 따라오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이셨습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쭈욱, 제가 어디 곳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단 한 순간도 저를 놓치지 않으셨고,
서른두 살까지 겪은 모든 사소한 일들까지 감싸며 따라오시는 분, 하느님이셨습니다.
곧이어 제 마음에 말씀이 들렸습니다.
“사랑한다.”
저는 “예. 저도 하느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하고 싶었습니다.
아마 베드로 사도도 같은 심정이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시는데,
저는 하느님의 그 사랑만큼 사랑한다고 할 수가 없어서, “예, 저도 하느님을 사랑합니다.”하고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저도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미치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도 하느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기에는 제가 느낀 하느님의 사랑이 너무 컸습니다.
감히 하느님의 사랑 앞에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씀 드릴 수 없었습니다.
피정이 끝나기 전에 주님께 그 고백을 하지 못하면 부제품을 받지 못하리라 마음 먹고 몸부림을 치면서 대답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피정이 끝나도록 “예, 하느님을 사랑합니다.”라는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한 달 피정이 끝나고 각자 느낀 점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 차례가 왔습니다.
“하느님, 저도............”
그러고 나서 저는 말을 잇지 못하고 20분 넘게 울었습니다.
다들 이상한 눈으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울먹이면서 겨우 이어붙인 말은 “사랑합니다.”가 아닌, “죄송합니다.”였습니다.
그 때 저는 결심했습니다.
“하느님, 죽기 전에 한 번은 저도 ‘사랑합니다’ 라고 말씀 드릴게요.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말’로써가 아니라 제 ‘삶 속’에서 미약한 응답으로라도 한 번 사랑을 고백하고 갈게요.”
지금 이렇게 사제가 되어 살고 있는데,
제가 그 응답을 하기 위해 하느님께 다가서고 있는지, 아니면 멀어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후략)
-------------------------------------------------------
성모님께서 주신 영상 편지
(위령성월에 2)
루르드로 보낸 쪽지
시월 중순에 루이제 언니에게서 카톡이 왔습니다.“다음 주에 루르드 가시는 분들이 있어서 레지나씨 위한 미사 봉헌 부탁하려구요. 미사 지향을 보내주시면 그대로 적어서 봉헌할게요.”
루르드는 1858년, 성모님께서 14살 소녀 베르나데트에게 발현하셨던 성지입니다. 성모님은 당신을 ‘원죄 없이 잉태된 이'라고 소개하면서 죄인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루르드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회심과 내적, 외적 치유의 기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언니의 마음이 고마워서, 기도 지향을 잘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하느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 위에 드높이 있기 때문에(이사야 55,9 참조), 혹여 하느님께서 제 건강 대신에 ‘영원한 생명’이나 ‘예수님을 닮는 것’과 같은 은총이 훨씬 더 좋지 않느냐?‘하고 권하실까봐, 콕 집어 ’질병의 치유’를 부탁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저를 괴롭히는 <모든 질병>에서 낫기를 원합니다. 제게 <이 세상에서의> 건강을 더 허락해주세요."라고 써 보냈습니다.
연옥 영혼을 위한 기도
루르드 성모님께 전구를 부탁한 일은 금세 잊어버렸고, 저는 열이 38.5도가 넘는 감기로 된통 고생을 하다가 위령성월을 맞았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특별히 위령성월에 연옥 영혼들이 하루속히 천국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기도를 바칩니다. 저는 매년 11월 1일부터 8일까지 연옥영혼들에게 전대사를 양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애써왔는데, 올해는 유독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기도해드릴 분들이 올봄에 요양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기도 모임을 같이 하며 정이 들었던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첫 날에는 유방암 폐전이로 세상을 떠난 사비나 언니를 위해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고 보면 늘 고통이 은총이었어.’라고 하시던 언니는, 병원을 떠나는 날 아침 일찍 제 병실로 와 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언니와 저는 그저 끌어안고 울었습니다.
사비나 언니의 영혼을 위해 참례한 미사에서 신부님께서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라고 하는‘식사 후 기도’를 열심히 바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갑자기 분심이 들었습니다. ‘내가 하는 8일간 기도가 정식으로 교회에서 보증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하지?’걱정이 되어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 사비나 언니, 안나 언니, 글라라 언니, 세실리아 언니, 네 언니를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파요. 저는 지금껏 교회가 그리 가르친다고 철썩 같이 믿었습니다. 아무튼 제 믿음대로 바로 천국에 들도록 해주세요. 꼭, 꼭 교회의 가르침이어야 합니다. 아니라면 너무 마음 아프잖아요. 언니들이 저한테 기도를 부탁하셨다고요.”
성모님께서 주신 영상편지
그날 저녁이었습니다. 뜬금없이 루이제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성지순례 일행 중 한 명이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못 가게 되는 바람에, 당신이 대신 루르드에 가서 순례 기간 내내 저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셨답니다.
언니가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레지나, 근데, 같이 치료 받던 사람들 중에 세상을 떠난 사람들 있어?”
“예, 네 명이요.”
네 명의 언니들 이름을 외우며 손꼽아 기다렸던 터라 즉시 대답했습니다.
루이제 언니가 화들짝 놀라며,“어머나, 소름 돋는다.”하셨습니다.
루이제 언니가 루르드를 떠나는 날, 어두컴컴한 새벽길을 달려 성모님 발현동굴을 한 번 더 찾아가 저의 치유를 청하는 기도를 했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영상이 보였답니다. 큰 수녀님 한 분과 네 명의 작은 수녀님이 보였는데, ‘넷’이라는 숫자의 의미를 풀지 못하면 분명 거짓 환시이려니 생각하셨답니다. 아무래도 성령께서 주신 환시가 아닌 것 같아서 저한테 물어보지 않으려 하셨답니다.
반가운 마음에 언니에게 자세히 물었습니다.
“응, 밝은 회색빛 벽이 보이는 수도원 실내 같았어. 커다란 장상 수녀님이 한 명 앉아 있고, 네 명의 아주 작은 수녀님이 그 큰 장상 수녀님을 바라보며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세로 앉아 있었어. 작은 수녀님들의 표정은 참 편안해 보였어. 간절한 것도, 고통스러운 것도 아니고 그저 고요하고 담담한.....”
“어머나. 맞아요. 네 명! 언니들이 제 기도를 기다리고 있었나 봐요.”
“큰 수녀님의 얼굴은 정확히 안 보이는데, 앞에 있는 네 명의 수녀님들 때문에 마음을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
루이제 언니는 제가 세상을 떠난 환우들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거나 의기소침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시며, “레지나가 그분들 때문에 어떤 불안이나 좌절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느님께서 어떻게 이끄실 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힘내요.”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돌아가신 언니들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하지만 슬퍼하고 실망하지 말라는 메시지는 아닌 것 같아요. 오늘부터 네 언니들을 위한 기도 시작했는걸요. 곧 그 언니들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을 건데요. 제가 언니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면서‘교회의 가르침이 맞나’하고 지나치게 걱정하니까, 성모님께서 제 걱정에 대한 답을 주신 거네요.”
루이제 언니가 말했습니다.
“돌로 된 수도원이었어. 어두운 회색은 아니고, 석고보드 같은 색인데 훨씬 더 밝고 베이지색과 분홍색이 살짝 비추는 듯해서 더 고요한 분위기를 만들더라구. 벽에 있는 단순한 무늬가 분위기를 더 품위 있게 만들었구. 한여름 서늘한 실내에 고요히 앉아 기도하는 뭐 그런 분위기....”
“아, 그래요? 천국과 가까운 연옥의 상태를 색깔로 표현한다면 아마 그런 회색이겠지요? 언니들이 이미 천국에 들었을 수도 있지만, 암튼 제가 그 언니들이 연옥에 있을까봐 기도하고 있으니까 그런 분위기에서 보였나 봐요. 돌아가신 언니들도 저도 설레는 마음으로 천상 기쁨에 참여할 때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렇게 부드러운 분홍빛도 섞였을 거구요.”
“그래. 맞다. 그런가보다.”
“그리고 세상을 떠난 언니들도 저도 세례 받았고 하느님의 신부로 창조된 사람들이니까 수녀복을 입고 있었나 봐요. 연옥에서는 세상에서보다 더 큰 사랑으로 기도한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기도하는 모습이었을 거구요.”
루이제 언니는 “아무튼 성모님께서 레지나가 원하는 걸 다 알고 계신다는 거네요.”하고 위로해주셨습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떴는데, 퍼뜩 생각이 스쳤습니다.
‘맞아. 연옥 영혼들은 이미 하느님을 뵈었기 때문에 믿음의 공로가 없지만, 이 세상 신자들은 믿음의 공로가 있어. 그래서 내가 그렇게 몸집이 컸던 거야.’
돌아가신 안나 언니를 위해 미사참례 하러 가기 전에 루이제 언니에게 전화했습니다.
“저는 아직 이 세상에 있어서 믿음의 공로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크게 보였던 거여요.”
“아, 그렇겠구나. 솔직히 그 큰 장상 수녀가 정말 레지나일까? 한참 생각했어. 레지나가 커도 너무 큰데? 싶은 거야. 장상 수녀님과 앞의 네 수녀님의 크기를 비교하자면 어른과 너댓살 먹은 어린아이쯤 될 거야. 그래도 어린 아이 얼굴은 아니고 어른 얼굴이었어.”
언니가 그제야 자세히 이야기해주시는 것으로 보아, 전날의 대화로도 장상 수녀님의 큰 덩치가 여전히 수수께끼였나 봅니다.
“그리고 큰 수녀님 옷은 분명 수녀복인데, 치마폭이 엄청 넓었어. 중세 시대 부풀린 드레스처럼.”
“그래요? 큰 치마폭에 작은 영혼들을 많이 품을 수 있다는 뜻일까요? 앞으로 더 열심히 기도하라고요. 겨자씨만한 믿음으로 산도 움직일 수 있다는데, 큰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는 천국에 들기만을 고대하는 연옥 영혼들을 단번에 정화시킬 수 있을 것 같아요. 하하. 재미있네요.”
천상 엄마, 성모님
저는 ‘세상 것’을 청하는 쪽지를 루르드로 보냈는데, 성모님께서는 ‘영원한 생명’ 영상편지를 보내오셨습니다. 제가 원하는 답은 아니었지만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나흘 연속 미사참례를 하는 것이 힘에 부쳤는지 도로 지독한 감기로 자리에 누웠습니다. 급기야 일흔 여덟 친정 엄마가 제가 요양하고 있는 곳까지 오셨습니다. 열이 오르고 기침이 심해서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신기하게도 엄마랑 같이 지내는 날부터 푹 잘 수 있었습니다. 당신도 기운이 없으신데, 있는 힘을 다해 마사지를 해주실 때면 아옹다옹해도 엄마가 제일이구나 싶었습니다. 문득 ‘성모님 마음도 친정 엄마 마음이겠구나. 내 고민이 시작되기도 전에 애틋한 사랑으로 영상편지를 준비하셨겠지.’하는 생각으로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성모님께서 치유 약속은커녕 감기까지 더해 아프도록 내버려두신다 싶어서 삐칠락 말락 했었는데, 친정 엄마가 옆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잠을 푹 잘 수 있었듯이, 천상 엄마가 계시는 것만으로도 안심이겠다 싶으니 한결 기운이 났습니다.
“엄마, 천상 엄마, 수수께끼 영상 편지 재미있었어요. 고맙습니다. 엄마가 제 곁에 계시니 참 좋아요. 네. 성인들의 통공에 대한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갈 준비를 잘 할게요. 이 세상 떠나는 날까지 엄마 손 꼭 잡고 힘을 낼게요.”
“아빠, 하느님! 주님의 어머니(루카1,43)를 저희 모두의 엄마가 되게 해주셔서(요한 19,26-27) 고맙습니다. 아빠, 최고!”
2015년 11월 15일 엉터리 레지나 씀
----------------------------------------------------
“사랑이 사후까지 미칠 수 있으며 서로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죽음의 경계 너머까지 계속되어 서로 주고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수세기 동안 그리스도교의 근본적인 확신이었으며 오늘날에도 위안의 이유가 됩니다. … 우리는 그 누구도 온전히 홀로 동떨어진 섬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서로 관련되어 있고, 수많은 관계를 통하여 함께 연결되어 있습니다. 혼자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혼자 죄짓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혼자 구원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이루는 것에서 다른 이들의 삶이 끊임없이 내 삶 안으로 들어옵니다. 반대로 내 삶도 다른 이들의 삶에 흘러 들어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위한 나의 기도는 심지어 그가 죽은 다음에라도 그에게 무관한 외적인 것이 아닙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 48항)
---------------------------------------------------
[성인들의 통공]
아들아, 백여 년 전부터 물질주의는 어둡고 짙은 그늘처럼 상당수의 인류를 뒤덮고 있다. 그것은 내 신비체인 수많은 신자와 사제들의 영혼까지 어둡게 하여, 위대하고 활기차고 참되고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작용하는 ‘영적 실재’인‘성인들의 통공’교리를 깨닫지 못하게 하였다.
성인들의 통공의 위대함과 능력, 생명과 사랑으로 고동치는 활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니, 내 자비로운 성심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그 신비로운 교환을 이해시킬 수 있는 적절한 말이 인간의 언어에는 없다.
이를 이해한 사람은 아주 드물다. 추상적으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통공’안에서 천국의 복된 영혼들과 연옥에서 대기 중인 영혼들과 세상에서 전투 중인 형제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살고 있는 사제도 아주 드물다.
죽음은 영혼들의 활동을 종식시키는 것이 아니다. 죽음의 더 정확한 표현은 ‘통과’이다. 시간에서 영원으로 건너가는 것이다. 그러니 이로 인해서 선이건 악이건 영혼의 활동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생명은 이어진다]
아들아, 생명은 무덤 저쪽에서도 계속 이어진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분명히 알려야 한다. 믿음의 표를 가지고 너희보다 먼저 간 사람들은 연옥에 있든지 천국에 있든지 여전히 너희를 사랑하고 있는데, 모두가 세상에 있을 때보다 더 순수하고 더 열렬하고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하고 있다. 그들은 너희가 삶의 힘든 시련을 극복하고, - 그들이 이미 했던 것처럼 - 너희도 삶 자체의 목표인 결승선에 도달하도록 도와주고픈 열망으로 고무되고 있다.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협하는 모든 위험과 함정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너희에 대한 그들의 도움은 너희의 믿음과 그들을 향한 길로 접어드는 너희 자유의지, 기도 및 하느님과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께 전구하면서 너희를 효과적으로 보호하는 그들에 대한 신뢰의 정도에 따라 상당한 부분이 결정된다.
사제와 신자들이 성인들의 통공 교리에서 끌어낼 수 있는 은총과 도움과 선물이 무궁무진한 자원임을 의식하고 생생한 믿음으로 고무된다면, 악의 세력에 대한 그들의 능력이 백 배나 더 커지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내 거대한 가정을 헤아릴 수 없는 재산과 능력으로 부요하게 하였고, 패배를 모르는 무한하고 영원한 사랑의 힘으로 이를 굳건히 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옷타비오 미켈리니 몬시뇰에게 전하신 말씀 /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 가톨릭출판사)
--------------------------------------------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너희가 매일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너희를 부르고 싶다. 모든 영혼은 하느님과 그분의 사랑에 이르기 위해서 기도와 은총이 필요하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너희는 새로운 전구자들을 얻게 된다. 그들은 너희가 살아가는 동안 ‘모든 세속적인 것은 중요하지 않으며, 너희가 얻고자 노력해야 하는 것은 오직 천국뿐’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도와줄 것이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그러므로 너희 자신과 너희 기도를 통해 기쁨을 누리게 될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도하여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메주고리예 성모님께서 미리아냐에게 하신 말씀)
========================================= ^^
'신앙 고백 > 투병일기-2015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집에 온 지 벌써 한 달이 되었어요. (0) | 2015.12.23 |
---|---|
하느님께서 주신 뜻깊은 유머 / 김유리아 (0) | 2015.12.14 |
동생이 아일린 조지 여사를 만났답니다. (0) | 2015.11.23 |
그리스도왕 대축일 - 평화의 왕과 춤을 (0) | 2015.11.22 |
☆ 성모님께서 주신 영상 편지 (위령성월에 -2-) (0) | 2015.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