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15년

슬프게 하는 것들 - 잃어버린 역할들

김레지나 2015. 10. 31. 17:05

 

 

 

며칠 전에 초임학교 제자로부터 이 사진을 받았어요. 

저랑 찍은 사진이라면서요. 메모가 적힌 앨범사진을 폰으로 찍었나 봐요.

내용이 귀엽고 웃겨서 킥킥 웃으면서도 슬펐어요.

더이상 교단에 설 수 없으니.....

제가 잃은 것들이 갑자기 실감나더라구요. 

 

"중2 담임 선생님과 함께/

 선생님이 수학여행 다녀오신 후 전근 가심.

 그때 얼마나 울었던지.

 새로운 선생님께 차갑게 대하자고 다짐했는데,

 나중엔 좋아서 난리였다. 여자들이란..."

 

정말이지 그떄 얼마나 울었던지,,,

부족하고 얼치기 같은 저한테 아이들은 참 순수한 사랑을 주었지요.

이임하는 날, 아이들은 울면서 버스 정류장까지 따라오고,

저는 자취방에서 밤새 울었어요.

 

올해 스승의 날에는

림프암으로 투병 중인 아이가 축하 인사를 하더라구요.

이제 마흔 즈음이니, 아이가 아니라 어른들이지요.

귀여운 눈웃음이 너무나 귀여웠던 아이는

긴 투병 생활로 말라서 예전 모습을 찾아볼 수 없어요.

하지만 제게는 여전히 아이여요.

그 시절 그 귀여운 아이를 위해 기도해요.

 

어제는 또 십여 년 만에 초임 학교 때 선생님한테 전화를 받았어요.

제자들에게 전번을 얻었다고...

저도 제법 포용력이 생겼는지, 그 시절의 어설픈 추억들이 부끄럽지 않고

그저 보고 싶더라구요.

 

이제는 좀 여유있게 그리운 사람들 만날 나이도 되었는데,

드디어 그럴 나이가 되었는데,...

저는 건강상 시간상 그럴 여유가 없네요.

 

얼마 전에는 사랑하는 친구들이 왔어요.

아직 교직에 있는 친구들,

수년 전 보다 더 건강해 보이고, 여전히 예쁘고,

점점 더 따뜻한 열정으로 빛나는 모습은 자랑스러웠지요.

 

고맙고 아름다운 인연들과

이제 좀 더 시간을 낼 나이가 되었는데,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친구들 몰래 눈물이 글썽여졌어요. 

젊음도, 건강도, 일도 제가 다시 누릴 수 없는 것이에요.

 

엄마, 아빠를 배웅하면서

식당에서 마침 회식 중인 근처 학교 선생님들의 수다를 들으면서

또 슬퍼지더라구요.

이제는 영영 잃어버렸구나. 돌아갈 수 없구나. 

 

요즘 부쩍 집에 가고 싶어서

요양 그만 둘까 해요.

제가 엄마의 역할도 잃어버렸구나 싶어서요.

남편한테 늘 묻지요.

"애기 밥 줬어? 뭐 먹었어?"

그럼 남편이 그래요.

"우리 집에 애기가 어딨어?"

울 아들들, 무뚝뚝한 어른이 되어가지만,

제게는 아직 애기에요.

우리 애기,

아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