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에 아주 두꺼운 파우스티나 성녀의 자서전 원본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내용은 99.9% 기억나지 않아요.
딱 하나 기억하는 내용은 이렇습니다.
파우스티나 수녀님께 천사가 나타나서 썼던 일기를 다 태우라고 명령해요.
수녀님은 큰 수고를 기울여 예수님의 말씀을 적은 일기를 순명하는 마음으로 태워버리십니다.
근데, 다음 날인가, 암튼 곧, 예수님께서 악마가 천사인 척 나타났던 거라고 알려주셔요.
그래서 파우스티나 수녀님은 기억을 더듬어 일기를 다시 쓰셔야 했어요.
저는 그 일화에서 영적인 분별이 얼마나 어려운가.
분별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큰 겸손이 필요한가, 하는 것을 배웠어요.
예수님을 날마다 만나 대화하는 파우스티나 수녀님도
그런 터무니 없는 명령을 하는 존재가 천사인 줄로만 알았지 악마인 줄을 알아차리지 못하셨어요.
또, 날마다 수녀님을 만나주시는 예수님도 귀뜸해주시지 않으셨구요.
그러니 예수님을 만나 대화하기 힘든 우리들이야 오죽하겠어요.
우리가 자신의 보잘것없음을 인정하는 겸손을 갖지 않으면 어떤 영적인 체험도 우리에게 해가 될 수 있어요.
물론 하느님의 뜻을 분별하기 힘들 때는, 아무리 터무니 없는 명령이라하더라도,
교회의 지시에, 장상의 지시에 순명하는 것이 백번 옳아요.
파우스티나 수녀님이 그러셨듯이 말이에요.
순명하는 마음으로 한 실수도 덕이 되고 공이 되는 거예요.
우리가 하느님께로부터 온 영적 체험의 은총에 맛들이려고 애쓰거나,
그 단맛에 머물러 있고자 하거나, 자랑하는 마음을 갖거나,
그 체험으로 자신의 신앙을 포장하고, 다른 사람의 신앙을 평가하려는 마음을 가지면
십중팔구 악마가 천사인 척 나타나 하느님처럼 그럴듯한 말을 하고, 달콤한 신비 체험을 주기도 해요.
그러면 그 영혼은 점점 더 영적인 교만에 취하게 돼요.
또, 분명 자신은 교회 안에서 하느님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열매를 보면 사랑이 부족하거나 신앙의 오류가 담겨 있어서 주위 사람들이 하느님을 잘못 알아보게 만들어요.
분별을 잘 하려면
먼저 그 체험에 하느님의 <사랑>이 담겨 있는가,
그 영적 체험이 하느님 사랑과 믿음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가,
그 체험을 전했을 때 다른 사람들의 신앙에 도움이 되고, 교회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게 하는가.
그 체험이 내 삶에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열매를 맺는데 도움이 되는가.를 살펴봐야 해요.
좀 큰 체험일 경우에는
반드시 그 체험을 들어주고 인정해줄 지도자가 있게 마련이어요.
예수님께서는 둘씩 짝지어 제자들을 파견하셨어요.
하느님께서는 사제, 영적인 조언자를 반드시 짝지어 주십니다.
또, 반드시 불편함과 반대를 무릅쓰는 상황을 만들어 주십니다.
예를 들어, 그 체험을 전하면서 마음을 몹시 불안하고 주눅들고, 비난 받을까 겁나는 마음이 유난히 들지만,
하느님을 전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런 저항을 누른다면, 그런 체험은 성령께로부터 온 것일 확률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그 체험을 전하는 것이 자신의 유익을 포기하는 경우, 세상일 하는 시간을 대신 써야 한다거나, 건강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쓴다거나, 암튼 그 일의 댓가가 세상 것이 아닌 경우 안전한 체험일 확률이 높습니다.
이도 저도 아니면, 아무리 좋은 영적체험이라도 무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저 교회의 성사와 전례 안에 머물러 하느님 말씀을 듣는 것이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은총임을, 그 이상은 필요 없음을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러셨지요.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정말입니다. 그러니 진심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남들보다 낫고자 하는 마음에서 바라는 영적인 체험은
세상 것을 구하는 마음만큼 해가 될 수 있기에 위험합니다.
그 체험의 순수함을 더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덧붙여 선물해주시는 십자가들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어서
겁없이 마냥 부러워할 것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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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밤에 일어나 이렇게 주절대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며칠 전에 어떤 가톨릭 신자 환우로부터 들은 이야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인 예이긴 합니다만, 암튼 실재하는 사례이니까.........
그 환우가 어떤 개신교 기도원에 가서 기도 받고 암이 나은 적이 있는데,
그 기도원에 머무는 환자들이 대부분 귀신과 대화를 한다는 겁니다.
지도자 역할을 한 어떤 집사님 집에 갔는데, 귀신이 너무 많이 보이더랍니다.
"이 많은 귀신들과 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대적해 싸워야 한다."고 하더니,
결국 암이 온 몸에 퍼져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 환우는 지금도 귀신을 본다고 합니다.
그 집사의 경우,
'나는 영적인 사람이야.'
'내 눈에는 귀신도 보여.'
'나는 영적인 사람은 (귀신을 통해) 느낄 수 있어.'
' 내 질병은 영적인 싸움으로 이길 수 있어.'하는 생각으로
그 세계에 머물러 있고자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상처 받고 약한 사람일수록, 자존감을 가져보려고 그런 비뚤어진 영적인 세계를 붙잡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영적 훈련을 위해 귀신을 붙여준 게 아니라, 어떤 이유로든 자기가 원해서 마귀를 붙잡고 있는 겁니다.
아니면, 큰 고통이 닥쳤을 때, 잘못된 인연을 만나서 잘못된 길로 인도되었거나....
문제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하는 환자들, 절망 속에 있는 사람들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불러들여 잘못된 세계에 의지하고 집착하게 하는 기도원이 상당하다는 겁니다.
(저한테 여러 기도원 이야기를 해 준 환우는 저보다 훨씬 더 많이 배운 지식인입니다.)
무시해야 합니다.
어떤 영적인 유익도 주지 못하는 마귀 체험(죽은 사람의 영혼인 척 하지요.),
갑작스레 보이는 다른 사람의 과거와 현재,
그딴 거 필요 없다고, 원치 않는다고, 거부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모여, 마귀를 쫓아내는 체험을 했다고 해서,
자신이 하느님 안에 제대로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 마음 속의 어떤 점이 그런 영적인 체험이 반복되게 만드는지 세심하게 성찰해봐야 합니다.
간혹, 마귀들의 괴롭힘도 영적 만족감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무시하고 거부하지 못하면 마귀들이 계속 자기네들끼리 천사노릇도 하고 마귀 노릇도 하고 장난합니다.
자신이 영적인 사람이 아니라, 마귀들린 사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체험을 공유하는 사람들과의 연을 끊고,
아무런 느낌이 없을지라도 교회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길을 잘못 들면, 진리를 발견할 수 없고,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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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들이 찾아가는 곳 중에
기억치유를 통해 암치료를 하는 곳이 있답니다.
아는 가톨릭 신자 형제님이 가 본 적이 있다는데,
여러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있는 자기 앞에 나와서
왔다 갔다 하면서 지인들, 조상들의 역할을 맡아 역할극을 한다네요.
그럼 그네들이 과거를 대충 알아맞추는 것같더라고..ㅎㅎ
마귀들 수법이지요.
자기들에게 의지하고 하느님 못 찾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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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영적인 상태에 있고, 환우들을 도우려는 선의가 있는 분들 중에서도
가끔 잘못하실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언의 은사가 있는 분이
'저 사람은 왜 아플까? 저 사람은 어떤 영적 상태에 있을까?' 하고 판단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다면
자칫 잘못된 예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병마일 겁니다. 하느님의 전능으로 마를 쫓아버려야 합니다."하는 식으로요.
어떤 사람에게는 맞는 말일 수 있지만, 일반화를 시키면 곤란합니다.
자신의 경험이나 선입견이 작용하는 경우도 있구요.~~
악은 우리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동의를 하니까 해를 끼칠 수 있는 거지요.
병마라는 이름으로 마귀 존재를 인정해주고 쫓아낸답시고 말을 걸기까지 하는 것,
그거 필요 없는 일입니다.
아함~!! 레지나는 잠이 와서 오늘 수다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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