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일 연중 9주간 수요일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부활에 대한 희망을 간직하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 죽음은 끝이 아니라 과정이고 그 너머에는 우리에게 약속된 새로운 생명이 있음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는 현세에서 육신의 감각과 정신의 힘에 의지하여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영적인 분이십니다. 육은 영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자신의 감각과 이해 안에서만 받아들이려 합니다. 그래서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와 부활에 관한 논쟁을 벌이는 것입니다.
죽음 이후의 삶은 단지 현세적 삶의 연장이 아님을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육을 지닌 우리들이기에 육의 고통과 갈등을 겪고 살아갑니다. 서로에 대한 아픔도, 미움도, 원망도 육의 본성과 욕망으로 인해 겪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으로 인해 비로소 우리가 육을 벗고 하느님 안에서 주어질 새로운 생명,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찾아 오신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가야 할 곳을 향하도록 우리를 인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의 우리의 목적이 아니라 참된 목적지를 가기 위해 지나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참된 목적을 위해 이 과정을 잘 살아가는 삶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삶은 지금을 영원히 즐기며 살아가는 그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분의 약속을 믿고 영원한 생명이 약속된 그 나라를 향해 걸어가는 순례와 같습니다.
부활에 대한 신앙은 이 모든 것이 지나가는 것임을 알게 해 줍니다. 육신을 지니고 살아가며 겪게 되는 유혹과 시련도 결국에는 죽음과 함께 사라져 버릴 것들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 목적을 두는 신앙은 거짓 신앙입니다. 또한 내세에 모든 것을 둔다는 이유로 현실을 외면하는 신앙도 거짓입니다. 결국 참 신앙은 하느님과 함께 '지금, 여기'를 살아 영원한 생명을 향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으로서 산 이들의 하느님"으로 알려 주셨습니다. 신앙이 우리를 진정으로 살아있게 해 줍니다. 그 살아 있음이 지금의 고통과 갈등 속에서도 목적과 방향을 잃지 않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힘들다"고 어려움을 호소하십니다. 사랑과 용서를 살고 싶은데 마음이 아파서, 차갑게 얼어버려 이 삶을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 마음이 먼저 움직여서 걸어가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한 걸음도 내딛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앞장서 걸어갈 때, 그 믿음을 따라 내 마음과 몸도 이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은 태초부터 우리를 사랑하시며 이제와 영원히 우리와 함께 살아계신 하느님의 이름입니다. 지금은 비록 죄의 상처와 육신의 한계 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살아계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우리도 죽은 이들이 아닌 산 이들이 되어 이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지나 갈 모든 것들, 사라져 버릴 것들에 나를 묶지 않고 영원하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지금을 살아갈 힘과 용기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께서 오늘 나의 하느님의 이름이 되어 주시고, 여러분의 하느님이 되어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강요셉 신부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부활에 대한 희망을 간직하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 죽음은 끝이 아니라 과정이고 그 너머에는 우리에게 약속된 새로운 생명이 있음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는 현세에서 육신의 감각과 정신의 힘에 의지하여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영적인 분이십니다. 육은 영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자신의 감각과 이해 안에서만 받아들이려 합니다. 그래서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와 부활에 관한 논쟁을 벌이는 것입니다.
죽음 이후의 삶은 단지 현세적 삶의 연장이 아님을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육을 지닌 우리들이기에 육의 고통과 갈등을 겪고 살아갑니다. 서로에 대한 아픔도, 미움도, 원망도 육의 본성과 욕망으로 인해 겪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으로 인해 비로소 우리가 육을 벗고 하느님 안에서 주어질 새로운 생명,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찾아 오신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가야 할 곳을 향하도록 우리를 인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의 우리의 목적이 아니라 참된 목적지를 가기 위해 지나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참된 목적을 위해 이 과정을 잘 살아가는 삶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삶은 지금을 영원히 즐기며 살아가는 그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분의 약속을 믿고 영원한 생명이 약속된 그 나라를 향해 걸어가는 순례와 같습니다.
부활에 대한 신앙은 이 모든 것이 지나가는 것임을 알게 해 줍니다. 육신을 지니고 살아가며 겪게 되는 유혹과 시련도 결국에는 죽음과 함께 사라져 버릴 것들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 목적을 두는 신앙은 거짓 신앙입니다. 또한 내세에 모든 것을 둔다는 이유로 현실을 외면하는 신앙도 거짓입니다. 결국 참 신앙은 하느님과 함께 '지금, 여기'를 살아 영원한 생명을 향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으로서 산 이들의 하느님"으로 알려 주셨습니다. 신앙이 우리를 진정으로 살아있게 해 줍니다. 그 살아 있음이 지금의 고통과 갈등 속에서도 목적과 방향을 잃지 않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힘들다"고 어려움을 호소하십니다. 사랑과 용서를 살고 싶은데 마음이 아파서, 차갑게 얼어버려 이 삶을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 마음이 먼저 움직여서 걸어가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한 걸음도 내딛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앞장서 걸어갈 때, 그 믿음을 따라 내 마음과 몸도 이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은 태초부터 우리를 사랑하시며 이제와 영원히 우리와 함께 살아계신 하느님의 이름입니다. 지금은 비록 죄의 상처와 육신의 한계 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살아계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우리도 죽은 이들이 아닌 산 이들이 되어 이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지나 갈 모든 것들, 사라져 버릴 것들에 나를 묶지 않고 영원하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지금을 살아갈 힘과 용기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께서 오늘 나의 하느님의 이름이 되어 주시고, 여러분의 하느님이 되어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강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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