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묻힌 보물/별난 신앙체험

주님! 정말 무서워 죽겠어요 / 강모익_전주교구 나운동 본당 신자

김레지나 2015. 5. 17. 19:28

주님! 정말 무서워 죽겠어요

 

강모익_전주교구 나운동 본당 신자

 

아, 암!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듣기조차 소름끼치는 무서운 말 아닌가? “암입니다. 대장암입니다.” 어처구니없는 말이 아닌가. ‘내가 대장암. 왜?’

내 머릿속에는, ‘이제는 죽었구나’하는 생각과 ‘하느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구나’하는 생각뿐이었다. 마음 한구석에 소용돌이침을 어쩌지 못하고 가슴을 치는 고통이 왔다.

왜 내가 대장암에 걸린 걸까?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살 수 있을까? 6개월, 아니 1년, 아니 2년. 아니면 3년은 살다가 허무하게 죽겠지 하는 생각이 들자 하늘이 노래졌다.

“큰 병원으로 가십시오. 대장암은 수술을 하면 괜찮아질 것입니다.” 의사로서 흔히 할 수 있는 말이다. 그 병원에 더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서, 힘없이 병원 문을 열고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큰아들이 “아버지, 병원에서 뭐라던가요?” 한다. 나는 힘없이 “대장암이라 하더라”고 말했다.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깜짝 놀라며, 다시 묻는다. “대장암이라고요?” “그래, 대장암이라고 하더라.” 아들은 두말도 하지 않고 진찰받은 병원으로 가서, 다음 날로 전북대학 병원에 예약하고 돌아와 “내일 저랑 같이 갑시다.” 한다.

 

다음 날 아침도 먹지 않고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피 검사, 변 검사, 엑스레이 검사, CT 촬영에 기타 뼈 사진까지 사흘에 걸쳐 하라는 검사는 다 했다. 그런데 결과가 나오려면 며칠 걸리니 2주 후에 오란다. 기다리는데 2주가 그렇게 길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대변에 피가 조금씩 묻어 나오더니 나중에는 변기가 뻘게질 정도로 피만 나오는 것이 아닌가.

 

2주 후 병원에서 오라는 날이 되어 갔더니 담당 의사가 나를 맞이하며 자리에 앉기를 권했다. 아들과 집사람을 대동하고 갔는데, 컴퓨터를 보고 내 얘기를 듣더니 대장암 4기란다. 대장암은 수술을 하면 다른 암보다 완치율이 높아서 괜찮은데, 그 옆의 간으로 전이된 암이 문제라는 것이었다. 간에 전이된 암이 한데 모여 있지 않고 여기저기 띄엄띄엄 있어서 수술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그렇다면, 수술하지 않고 그대로 죽고 싶습니다”하였더니, 하하하 웃으며 “지금 죽어도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먹을 것은 먹고 똥은 싸고 죽어야 하지 않겠습니까”한다. 생각해 보니 그 말씀이 맞다. 바로 그 다음 날로 수술 일정을 잡고 입원하였다.

 

수술실로 들어가면서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드렸다. ‘자비하신 하느님 아버지! 저는 씻을 수 없이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알고서도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모두 하느님께 비오니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살다 보니 하느님 아버지를 멀리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모두 용서해 주소서. 자비하신 하느님 아버지! 저는 지금 수술을 받으려고 수술실로 들어갑니다. 살아서 나올지 죽어서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죽어도 할 수 없고, 살아서 나오면 그보다 더 다행한 일이 없을 정도로 기쁨과 희망이겠지요. 하오나 어찌 생사를 제 마음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의 처분을 바랄 뿐입니다. 제가 혹시 죽더라도 남아 있는 아내와 자식들을 지켜주시고, 그들을 강복해 주시어 하느님 아버지께 찬송과 영광을 드리고 사랑과 나눔의 삶을 살아가는 그들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제가 하지 못한 삶을 그들을 통하여 살게 해주시고, 그들의 생활에 희망과 용기를 주시어, 힘없는 자들을 도와주시고 하느님 아버지를 우러러 찬송과 영광을 빌면서 살아가는 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약 10시간 정도 지나서 정신이 들어 집사람에게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수술 시간이 3시간이었는데 3시간을 더 수술하고 회복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3시간을 연장한다고 할 때. 그 3시간이 정말 긴 시간이었단다. 얼마나 마음 졸이며 기다렸을까. 참으로 미안했다.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내가 그런 자격이 있는 것인가. 보잘것없고 형편없는 아버지인 것 같은 나를 마음 졸이며 기다려준 가족이 고마웠다.

 

병상에 누워 아픔을 참고 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몇 분이 문병을 왔다. 고마운 분들이다. 나는 누워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했다. 암에도 완치라는 것이 있겠지만, 인간의 끝은 죽음 아닌가. 죽음밖에 없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얼마나 오랜 투병 생활을 해야 완치되었다는 말을 들을 수가 있을까? 머리도 다 빠지고 몸은 야윌 대로 야위어 뼈만 앙상히 남은 짐승 같은 사람이 되겠지. 아, 생각만 해도 무섭다. 얼마나 무서운 하느님의 벌이냐. 나는 내 잘못을 뉘우치며 하염없이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자비하신 하느님 아버지, 잘못된 생각과 행동과 마음으로 죄를 많이 지었나이다. 모두 용서해 주소서.

 

입원 8일만에 퇴원을 하란다. 미음과 죽을 먹다가 이제 겨우 밥이라도 조금씩 먹고 움직이기 시작하자마자 퇴원하라니, 아니할 수도 없어서 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 방에 누워 있자니 모든 것이 새로웠다. 정든 집과 살림을 보니 감개무량했다.

 

하루에 20~30번씩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다 먹으라고 했지만, 화장실 가기가 무서워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었다. 장어가 몸에 좋다는 말을 들은 아내가 어느 날 먹으러 가잔다. 그동안 잘해준 것도 없는데, 남편 살려보겠다고 병원에서 고생고생하며 시중들던 아내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닭볶음탕이다. 추어탕이다 하며 좋다는 것은 거의 다 먹어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몸은 하루가 다르게 살이 올라 남 보기에 환자 같지 않은 모습으로 변해 갔다.

 

병원에서 오라고 한 날, 병원에 도착하여 수속을 밟고 항암 치료를 받기 위해 병실 침대에 누웠다.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젊었을 때의 생활, 결혼 후의 생활, 지금 병든 초라한 나의 생활, 하느님을 생각하지 않고 마음대로 한 행동, 무엇이 죄인지조차 모르고 한 행동, 불우했던 가정 형편, 나는 왜 살고 있으며, 왜 살려고 발버둥 쳤는가. 무엇 때문에 살고 있으며, 왜 살려고 발버둥 쳤는가. 무엇 때문에 살고 있고, 사는 동안 이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는가. 이웃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하였는가? 양로원, 고아원 몇 번 찾아가서 위문한다고 한 초라한 행동들,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는 내 생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간호사가 주사를 맞자고 했다. 검은 봉투에 싼 주사약이 혈관을 타고 들어갔다. 주사 맞는 팔이 조금 아프고 발끝과 손끝이 짜릿짜릿했다. 아, 이것이 항암 치료의 첫 단계였다. 이런 주사를 2박3일 동안 10개 정도 맞아야 한단다. 무서운 암과의 투병 생활이 정말 시작된 것이다. 무섭다. 정말 무서워 죽겠다.

“하느님 아버지! 벌을 주시려거든 죽음의 벌을 주시옵소서.” 그때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 후로도 나는 이런 생활을 12번이나 겪었다. 하지만 수술실로 들어서면서 드렸던 절박한 내 기도를 주님께서는 분명 들어주시리라 굳게 믿으며, 오늘도 희망을 저버리지 않고 기도와 투병 생활을 병행하고 있다.

 

“주님은 영원 세세에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