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김용은 수녀님

(14) e세상에서 ‘듣기’ 어려운 이유- 영적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 ‘듣기’

김레지나 2015. 1. 24. 21:55

(14) e세상에서 ‘듣기’ 어려운 이유

영적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 ‘듣기’
적극적 지적활동 ‘듣기’(listening)
‘SNS 홍수’ 속에서 본질 잃어버려
책 읽기 통해 듣는 능력 키워야
발행일 : 2014-10-19 [제2915호, 17면]

“정말, 재미있었어.” “난 지루해서 죽는 줄 알았다.” “난해하지 않았어?”

같은 강의를 듣고도 저마다의 반응이 다르다. 심한 경우는 자기방식대로 해석하고 비판한다. 듣는다는 것은 말 자체를 알아듣기보다 화자의 지능세계에 들어가 적극적인 교류를 이뤄내는 것이다.

SNS 환경에 익숙할수록 더 듣지 못한다. 듣기보다 말하려하고 동시에 여러 사람이 말하다보니 듣는 사람도 없다. 마치 ‘말’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처럼 말이다. ‘말’이 의사소통의 도구라기보다는 감각으로 즐기는 엔터테인먼트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듣는다는 것은 귀가 있어 듣는(hearing)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지적활동의 듣기(listening)이다. 그래서 책 읽기를 통한 지적훈련은 듣기능력을 길러준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다양한 언어체험으로 세상의 ‘언어’가 잘 들린다. “독서를 하지 않으면 ‘자기 생각’의 회로 안에서만 머물게 된다(스티브 레빈)”고 하지 않는가? 이는 책을 읽으면 타인의 말에 머물 수 있는 회로가 열리고 그만큼 세상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느낌과 감각만으로도 소통 가능한 SNS 홍수 속에 빠져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단순한 언어체험만으로도 세상을 다 안다고 착각하게 해준다.

SNS 언어는 글이라기보다는 ‘말’에 더 가깝다. 여과와 성찰의 과정을 거친 ‘글’이 아닌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말’을 그대로 글로 옮겼을 뿐이다. 검색하는 행위는 읽는 행위와는 매우 다르다. SNS 언어에 묻혀 익숙하게 살다보면 지적훈련의 과정을 거쳐야 이해되는 고급언어나 학문용어가 낯설 수밖에 없다.

또한 SNS 혁명이라 할 수 있는 유튜브의 등장으로 ‘짧아야 효과적’인 새로운 소통의 원칙이 생겼다. 동영상도 3분 이상 넘으면 집중하기 힘들다. 전체보다는 흥미 있는 부분만 보면 된다. 그래서인지 우리들 대부분은 길거나 어려운 ‘말’을 지루하게 느낀다.

SNS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는 ‘듣기’의 본질을 잃어가고 있다. 말하는 사람만이 ‘말’의 주인이고 듣는 사람은 듣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그저 들리는 대로 듣거나 혹은 구경하는 것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듣기는 듣는 사람이 아닌 말하는 사람의 책임이란 말인가? 하지만 의사소통의 핵심은 ‘화자가 아닌 청자의 이해에 달려있다(하이데거)’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다. 잘 듣기 위해 세상의 수많은 글과 만나는 훈련을 해야 하고, ‘말’에 몰입하고 인내하면서 화자의 지능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듣기와 독서는 서로 통한다. 책은 다양한 생각들을 모아 핵심적인 것을 요약해서 들을 줄 알게 안내해주고 많은 언어체험을 하는 지적훈련의 도구이다.

우리는 말하기 이전, 어머니 자궁에서 먼저 ‘듣기’부터 배웠다는 것을 잊지 말자. 태아는 어머니의 목소리나 다른 소리를 들으면서 뇌가 활성화되고 신체의 발육도 활발해진다. 그만큼 듣는다는 것은 인간성숙에 매우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잘 듣는 사람은 마음을 열고 낮추일줄 안다. 듣기는 마음을 여는 것이고 영적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이기 때문이다.



김용은 제오르지아 수녀(살레시오수녀회)는 미국 뉴욕대(NYU) 대학원에서 미디어생태학(Media Ecology)을 전공하고, 버클리 신학대학원(GTU Graduate Theological Union)의 살레시오영성센터(ISS)에서 살레시오 영성을 수학했다. 현재 부산 ‘살레시오 영성의 집’ 관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