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L자매가 한숨을 내쉬며 하는 말이다.
“저는요.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로 살래요.”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에 이유를 물었다.
“외제차를 타고 다니면서 숍을 몇 개씩 운영하는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가 늘 하는 이야기는 ‘외모’ 아니면 ‘명품’이에요. 게다가 남편 연봉이 1억도 채 안 된다고 불평해요. 마치 배부르게 먹으면서도 늘 배고파하는….”
사람을 돼지로 표현하는 것이 민망한지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멋쩍게 웃는다.
나 역시 그 친구를 안다. 가끔 전화가 걸려오면 다른 사람에 대한 불평을 하곤 한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그 친구는 ‘내가 누구’인지보다 ‘남에게 어떻게 보이나’가 중요해서 자신을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를 평가하는 남들의 시선에 갇히다보니 더 불편하고 불안해지는 걸까?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는 부족한 것이 없지만, 정작 자신은 ‘만족’할 수 없는 것일까? 이렇게 배고픈 현실만이 끝없이 반복되다보면 결국 ‘이왕이면 더’를 중독적으로 욕망하게 될 뿐이다.
그렇다면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고 싶다는 L자매의 고백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외모와 명품을 내세우는 친구의 ‘속됨’앞에서 가진 것 없어도 ‘참됨’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우월감을 확인하고 싶은 걸까? 물론 L자매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공부하고 독서를 즐긴다. 책 한권을 읽고 나면 그 울림을 공유하고 싶어 하기도 한다. 책이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고 무엇보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런 L자매에게 모든 것을 가졌어도 욕망하는 그 친구가 ‘속되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것일까?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다른 사람에 비해 열등해지는 것에 대한 어느 정도의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 누구는 열심히 돈을 벌어 과시하며 자존심을 내세우고, 또 누구는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며 자존감이나 우월감을 찾으려 한다. 그런 의미에서 L자매나 친구 모두 공통점이 있다 하겠지만 분명히 다른 것은 있다. L자매는 책을 많이 읽으면서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에 만족하는 길을 찾고 자존감 회복에 마음을 둔다. 하지만 L자매의 친구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 커서, 보이기 위한 물질에 마음을 쓰다 보니 자존심만 커져간다. 자존감과 자존심은 매우 다르다. 자존감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만나 긍정하는 것이라면 자존심은 타인의 자리가 너무 커서 ‘지켜야’할 것이 많다보니 늘 무언가를 욕망한다. 비교와 경쟁에서 찾는 자존심은 마침표가 없다.
우리가 무엇으로라도 열등기능을 회복해야 한다면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그냥 읽어라. 분명한 것은 그렇게 읽다보면 참된 자아존중감으로 가는 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뇌는 입력한 정보로만 생각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아는 것’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책은 가보지 않은 수많은 생각의 길을 열어준다. 그 길이 많을수록 좋다. 가야할 길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선택의 폭과 세상을 품는 도량이 넓어진다는 것이다.
좋은 책을 읽으면서 얼어붙은 우리의 생각과 감성을 깨트리고 외모와 물질 속에 갇힌 ‘나’를 깨우자. 아름다운 독서의 계절이다. 한 줄 한 줄 속에 담긴 글 속에서 그동안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나’를 만나 배고픈 소크라테스의 행복을 누려보면 어떨까?
김용은 제오르지아 수녀(살레시오수녀회)는 미국 뉴욕대(NYU) 대학원에서 미디어생태학(Media Ecology)을 전공하고, 버클리 신학대학원(GTU Graduate Theological Union)의 살레시오영성센터(ISS)에서 살레시오 영성을 수학했다. 현재 부산 ‘살레시오 영성의 집’ 관장을 맡고 있다.
(11) 자존감을 낮추는 자존심
글 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 만나자
타인 시선에 ‘자존심’ 세우기보다
책 통해 참된 자아존중감 찾아야
책 통해 참된 자아존중감 찾아야
발행일 : 2014-09-28 [제2912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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