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파파 프란치스코

새로운 가난 만들고 노동자 소외시키는 경제모델 거부를”

김레지나 2014. 8. 29. 20:22

새로운 가난 만들고 노동자 소외시키는 경제모델 거부를”

등록 : 2014.08.15 19:32 수정 : 2014.08.15 22:18

 
프란치스코 교황이 15일 오전 대전 유성구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대전/사진공동취재단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교황이 던진 메시지 의미와 배경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는 곪을 대로 곪은 내상을 수술하다 말고 수술칼을 뱃속에 넣어둔 채 화해와 평화와 같은 관념적인 말로 봉합하라고 권유하는 그런 종교 지도자가 아니다.

그는 공격적인 언어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주장하는 바는 정확하게 제시한다. 보수적인 매체들이 그의 메시지를 가급적 외면하고, 최대한 가십 위주로 전달하는 건 그의 언행의 폭발성을 반증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교황이 방한하기 전부터 국내 언론이 주로 그 점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교황청은 특별히 주문했다. ‘제발 가십이 아닌 메시지에 집중해 달라’고. 마이클 잭슨이나 마돈나가 방한했을 때와 같은 식으로 접근하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그의 방한을 앞두고 최대 관심사는 과연 절망 속에 내몰린 세월호 304명의 유가족들의 한을 풀어줄 것이냐였다. 그는 서울공항에 도착한 자리에서 세월호 유족들의 손을 잡고 아픔을 표시한 이래 이틀간의 일정에서 가장 깊은 배려로 유족들의 아픔을 위로해주었다.

인간 존엄성 짓밟는 물질사회에 일침
낮은 곳에서 약자 위한 예수처럼
소외되고 가난한 자 돕기를 촉구

세월호 유가족 고통엔 “연대”
청와대 연설에선 “정의” 강조
돈 아닌 ‘사람 중심’ 역설

교황은 15일 세월호 유가족 36명을 초청해 함께 드린 대전월드컵경기장 미사에서 연대를 호소했다. 그는 이 미사의 기도를 통해 “세월호 사건과 같은 슬픈 일로 우리가 하나가 되었으니 이 힘을 모아 공동선을 위해 힘쓰자”며 “우리가 옆에 있고 함께 사는 것이 희망이다. 힘을 내자”고 말했다. 그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추기경 시절 대형 화재사고로 194명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은 현장에 달려가 유족들에게 자기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며 “언제든 연락하라”고 한 것처럼 고통받는 사람들과의 연대를 강조한 것이다. 방한준비위원회 대변인 허영엽 신부도 “교황께서 다른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는 것은 예의이지만, 세월호 유족들을 따로 만난 것은 관행을 벗어나 큰 상징이 있다고 본다”고 해석했다.

‘세월호’ 다음으로 관심사는 과연 박근혜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그가 어떤 조언을 해줄 것인지였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국가기관이 불법개입한 데 대해 우리나라 천주교 사제, 수도자 절반 가까운 이들이 ‘부정선거’라고 비판에 나섰고, 박 정권은 이 사제들을 ‘종북’으로 몰아 공격했기 때문이다. 교황이 아르헨티나 예수회 관구장으로 있던 1976~83년 군부 독재자가 이른바 ‘더러운 전쟁’ 때 정부의 살인 고문 폭력에 저항한 사제 수도자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구금·고문·학살하는 것을 수없이 보아온 그에게 이런 상황은 익숙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교황의 발언들 (※ 클릭시 확대됩니다.)
그는 14일 청와대에서 한 연설에서 ‘정의’를 강조했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라고 했다. 문제를 덮어버리는 게 평화가 아니라 정의를 실현할 때 진정한 평화가 온다는 뜻이다. 그는 “용서와 관용과 협력을 통해 불의를 극복하라”거나 “상대방의 말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대화를 하라”며 평화적 방법론을 제시했지만 그의 충고는 결국 ‘정의만이 평화의 길’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계층,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각별히 배려하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교황이 한국 가톨릭 주교단을 만난 자리에서 “잘나갈 때일수록 조심하라”, “권력과 성공만을 지향해선 안 된다”거나 “아랫사람들에게 언제나 귀를 활짝 열어놓고 있어야 한다”고 한 것은 직접적으로는 한국 가톨릭 지도자들에게 주는 충고였지만, 박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 사회 지도층에 더 절실히 해당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경청과 공감을 늘 몸으로 보여주는 그는 60여년간 ‘전쟁중’ 상태를 지속하며 긴장 속에 살아가는 남북한에 대해서도 ‘제발 이기고 지는 어린아이 같은 싸움에서 벗어나라’는 식의 호소를 계속하고 있다.

그의 모든 메시지는 결국 ‘인간’에 모아진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돈이지 인간이 아니라거나, 지금은 인간을 쓰고 쓰레기처럼 버리는 시대라고 말한다. 그런 시대의 최대 희생자는 가난한 사람과 사회적 약자라고 본다. 결국 교회가 싸워야 할 대상은 빈부 격차를 더욱 확대시켜 약자와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경제 모델이니 이를 거부하라는 것이 교황의 메시지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