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파파 프란치스코

차 여덟번 멈추고 환영인파 속 아이 머리 만지며 ‘축복’

김레지나 2014. 8. 29. 20:21

차 여덟번 멈추고 환영인파 속 아이 머리 만지며 ‘축복’

등록 : 2014.08.15 19:44 수정 : 2014.08.15 22:07

 
프란치스코 교황이 15일 오전 성모승천대축일 미사가 열린 대전 유성구 대전월드컵경기장에 하얀색 지붕없는 차량을 타고 들어오면서 교황을 상징하는 금색 테두리가 그려진 흰색 손수건을 흔들며 “비바 파파”(교황 만세)를 연호하는 5만명이 넘는 신도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대전서 ‘성모승천 대축일’ 미사
월드컵경기장 입장에만 10분 걸려
5만여 신도들 20분간 “비바 파파”
교황 “가난하고 궁핍한 이들 관심을”
문화행사서 축가 부른 인순이
“세월호 유족들에게 힘 돼주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고개를 돌려 앞자리에 탄 수행원에게 차를 멈추도록 지시했다. 조금 전 차량이 한 아기를 지나쳤기 때문이다.

아기와 10여m 떨어진 곳에 차가 멈추자 교황은 경호원에게 아기를 데려오게 해 얼굴을 쓰다듬으며 강복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이틀째인 15일 오전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하려고 대전월드컵경기장에 들어서면서 모두 여덟번 자신이 탄 차를 멈춰 세웠다. 환영인파 속에 있는 어린이들을 축복하기 위해서다.

교황은 어린이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거나 이마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늘어선 신자들과 악수를 하고 축복해주느라 경기장 입구에 들어서는 데만 10분이 걸렸다. 교황은 신자들과 가깝게 눈을 맞춰 인사하고 손을 잡고 기도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말해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전 10시10분께 하얀색 무개차를 타고 행사장인 대전월드컵경기장에 입장했다. 5만명이 넘는 신도들은 교황이 제의실로 들어가기 전까지 20여분 동안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흰 손수건을 흔들며 “비바 파파”(교황 만세)를 연호했다. 축구경기 단체응원처럼 파도타기를 하며 교황을 열렬히 환영했다. 교황은 밝은 표정으로 환호하는 신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했으며, 무개차 옆에 서 있던 어린이와 장애인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했다. 이어 교황은 제의실에서 15분 동안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김병권 위원장 등 10명을 만나 위로했다.

교황은 월드컵경기장으로 가는 도중 어린이들을 찾아 머리를 쓰다듬거나 입을 맞추기도 했다. 대전/사진공동취재단
교황은 월드컵경기장으로 가는 도중 어린이들을 찾아 머리를 쓰다듬거나 입을 맞추기도 했다. 대전/사진공동취재단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벌리고 기도문을 읽자, 대전월드컵경기장을 가득 채운 5만여 천주교 신도들은 한목소리로 “아멘” 하며 하느님에게 기도를 청원했다.

오전 10시50분 프란치스코 교황의 집전으로 성모승천대축일 미사가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봉헌됐다. 교황은 강론에서 “한국 천주교인은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회개하고, 가난하고 궁핍한 이들과 힘없는 이들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성모님께서는 우리들의 희망이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 희망은 외적으로 부유해도 내적으로 고통과 허무를 겪는 사회에서 암처럼 자라는 절망의 정신에 대한 해독제”라고 말했다.

미사는 1시간40분여 동안 거행됐으며, 미사가 진행되는 내내 대전월드컵경기장은 경건하고 엄숙한 성전이 됐다. “주님의 영광이 영원히 이 땅에 있나이다. 평화를 빕니다.” 낮 12시20분 영성체 의식이 시작되면서 서로 인사를 하는 ‘평화의 인사’가 진행되자 신도들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주변 사람들과 기쁨과 희망을 나눴다.

교황은 월드컵경기장으로 가는 도중 어린이들을 찾아 머리를 쓰다듬거나 입을 맞추기도 했다. 대전/사진공동취재단
세례명이 스콜라스티카라는 40대 여성은 “영적 지도자이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뵙게 돼 기쁘고 행복하다. 구름이 걷히고 날이 맑아진 오늘 날씨처럼 교황님 방한을 계기로 한반도에 평화와 화해가 깃들기를 기도했다”고 말했다.

신도들은 교황을 만나는 기쁨과 설렘에 미사 시작 10여시간 전인 14일 밤 12시께부터 대전월드컵경기장 주변에 모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15일 새벽 4시부터 아침 8시 사이 경기장에 입장해 교황 방한 관련 영상물을 보고 기도하며 교황을 기다렸다. 미사에 앞서 오전 9시 문화행사 ‘한마음대축제’가 시작돼 가수 인순이가 ‘거위의 꿈’ ‘친구여’를 불렀다. 인순이는 “교황님을 기다리는 마음을 담아 노래했다”며 “이 자리에 세월호 유가족들이 오신 걸로 알고 있으며 그분들을 위해 서로 힘이 되어주자”고 말했다. 소프라노 조수미씨는 금색 수를 놓은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나와 ‘넬라 판타지아’ ‘아베 마리아’를 열창해 감동을 더했다. 조수미씨는 “많은 무대를 서봤지만 교황님 앞에서 노래한다고 생각하니 3일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떨리는 마음을 고백했다.

교황은 미사를 마친 뒤 세종시 대전가톨릭대로 옮겨 가 오후 1시30분부터 가톨릭 아시아청년대회 참석자 가운데 17개 나라를 대표하는 청년들을 비롯해 아시아청년대회 홍보대사인 가수 보아, 유흥식 대전교구장 등과 함께 점심식사를 겸한 대화를 나눴다. 천주교 대전교구는 “이날 점심식사는 한식과 양식을 섞은 평범한 가정식”이라고 소개했다. 메뉴는 쌀밥, 아스파라거스를 곁들인 갈비, 콩국수, 닭죽, 각종 전류, 샐러드 등이다.

대전/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성모승천대축일

8월15일 성모승천대축일은 천주교 신자들에게 희망을 표상하는 날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살았던 마리아가 죽은 뒤 몸이 썩어 사라지지 않고 부활해 하늘로 들어올림을 받았다는 사건은 신자들에게도 같은 구원의 날이 오리라는 약속과 같다. 1950년 11월1일 교황 비오 12세가 성모승천을 교리로 공식 선포하며 천주의 성모마리아대축일(1월1일)과 예수부활대축일(매년 날짜가 바뀜), 예수성탄대축일(12월25일)과 함께 천주교회의 4대 의무 축일이 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5일 강론에서 인용한 복음서 <루카>와 <묵시록>의 내용은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때 읽도록 지정된 성경 구절들이다. 이 미사에선 마리아의 탄생과 승천이 인간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를 강론하는 것이 관례지만, 이날 교황은 “무한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고 비인간적인 경제모델을 거부하기를” 간청했다. <루카> 복음서에서 교황이 인용한 ‘마리아의 노래’(마니피캇) 다음 대목에 나오는 마리아가 믿는 하느님의 모습은 이렇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