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파파 프란치스코

800㎞ 짊어지고 온 ‘세월호 십자가’ 바티칸 간다

김레지나 2014. 8. 29. 20:20

800㎞ 짊어지고 온 ‘세월호 십자가’ 바티칸 간다

등록 : 2014.08.15 19:49 수정 : 2014.08.15 22:14

 
프란치스코 교황이 15일 대전 유성구 노은동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에서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 쪽으로 다가가자 가족들이 울먹이며 손을 내밀고 있다. 대전/사진공동취재단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교황, 유가족 만나 특별한 기도
유족이 들었던 십자가 전달하자
‘교황청에 가져가겠다’는 뜻 밝혀

사안마다 고개 끄덕이며 ‘공감’ 표시
팽목항에 관심…일정 조율 가능성

노란 리본 등 선물받자 묵주 선물
유가족 “정말 달고 나올 줄 몰랐다”

한국 방문 이틀째인 15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월호 침몰 참사가 남긴 상처를 두루 어루만졌다. 대중들과 봉헌한 첫 미사였던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에 앞서 세월호 유족들을 따로 만나 위로했으며, 미사 가운데 세월호 참사로 상처받은 한국 사회를 위한 특별한 기도를 올렸다.

이날 오전 10시40분께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사가 열리는 대전월드컵경기장에 입장하기 직전 경기장 중앙제단 뒤에 있던 제의실 앞에서 세월호 유족 10명을 15분가량 만났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유족도 3명 포함됐다. 김병권 세월호가족대책위원회 위원장과 김형기 수석부위원장을 비롯해 예비신학생이었던 단원고 고 박성호군의 어머니, 생존 학생 2명 등이 교황을 알현했다. 6㎏이 넘는 나무십자가를 지고 38일 동안 800㎞가 넘는 길을 걸어 대전에 도착한 단원고 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와 고 김웅기군의 아버지 김학일씨도 함께했다. 두 아버지가 전달한 이 나무십자가를 교황은 바티칸으로 가지고 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교황 방한 일정 (※클릭시 확대됩니다.)
세월호 유족들과의 만남에서 교황은 유족들이 하는 말을 주의 깊게 경청하며 때론 고개를 끄덕여 공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저희 얘기를 교황님이 눈을 마주치면서 일일이 다 듣고 알고 있다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우리 얘기를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한 유족이 “단식중인 유민이 아버지를 광화문에서 안아주세요”라고 말하자 교황은 ‘그렇게 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고 참석자는 전했다.

팽목항을 방문해 달라는 요청도 나왔다. 김 부위원장은 “주교님께 듣기로는 교황청에 계실 때부터 대전에서 팽목항까지 몇㎞나 되는지 물으셨다고 한다. 교황께서 팽목항 방문에 관심은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일정이 있으니 어찌 될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유족들은 난항을 겪고 있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대한 메시지도 강하게 전달했다. 또 다른 유족은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지금까지 우릴 밀어준 한국 천주교를 밀어달라”고도 청했다.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 10명을 위한 기도를 간청하는 유족도 있었다. 교황은 유족들 손을 일일이 잡으며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을 했고 일부 유족을 안아주기도 했다.

유족들은 교황께 세월호 참사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 팔찌, 세월호 희생자들의 사진이 담긴 손바닥 크기의 앨범을 선물했다. 교황도 유족들에게 로마에서 가져온 묵주를 선물했다.

세월호 유족이 십자가를 든 채 걸어가고 있다.
15분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세월호 유족들은 교황으로부터 격려와 지지를 받았다고 했다. 특히 교황은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던 행동으로 유족들을 특별히 위로했다. 세월호 리본을 왼쪽 가슴에 달고 미사를 집전한 교황으로부터 세월호 유족들은 공감과 연대의 메시지를 받았다. 김 위원장은 “만나뵈었을 때는 너무 떨려서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노란 리본 달고 나오신 걸 보니 ‘우리랑 한 가족이구나’ 싶었다. 이분이 우리를 알아주시는구나, 말할 수 없이 감동했다”고 했다. 유족들은 알현에 앞서 경호원에게 선물을 전달했다. 유족과의 만남이 끝난 뒤 교황이 직접 선물을 확인해 리본을 단 것이다. 교황은 이날 오후 충남 당진 솔뫼성지에서 열린 아시아청년대회 행사에 입장하다가 참가자가 건넨 노란 리본을 받아 다시 한번 하얀 수단 왼쪽 가슴에 달았다.

대전월드컵경기장에 입장해 카퍼레이드를 할 때 교황이 세월호 유족 앞에 차를 세운 것도 의외의 행동이었다. 교황은 차에서 내린 뒤 유족들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위로했다. 세월호 유족들은 이날 제단 왼쪽 끝 앞줄에 있었다. 이날 미사에 참석한 고 박성호군의 누나 박보나씨는 “경기장을 돌면서 인사를 하고 가시는데 주교님께서 저희를 보고 세월호 유족이 있다고 하시니까 내리셔서 손 잡아주시고 웃어주셨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고 했다. 그는 “최대한 많은 가족들의 손을 잡아주시려고 노력하시는 것 같았다. 손 잡아주신 것만으로도 엄청 큰 위로를 받았다. 참된 지도자의 모습을 봤다”고 했다.

이날 세월호 유족과의 만남은 애초 사무실에서 따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시간과 공간의 문제로 제의실 앞에서 모두 선 채로 진행됐다. 방한준비위원회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지금 상황에서 오랜 시간 앉아 이야기를 듣는 게 쉽지 않다. 세월호 유족들을 만나는 건 그 아픔에 동참한다는 목적이 있다. 교황께서 세월호 유족을 따로 만나는 것 자체가 대단히 이례적이고, 이런 만남 자체가 큰 상징이 있다”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