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8.15 19:38 수정 : 2014.08.15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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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15일 오전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할 대전 유성구 월드컵경기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환영 인파 속에서 부모와 함께 교황을 기다리던 어린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
노란리본 단 교황 “세월호로 고통받는 이들 위해 기도”
대전 미사 직전에 십자가 순례 유족 등 위로
유족들 “진실은폐 정부에 어떤 고초 겪을지…”
프란치스코 교황이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봉헌하기 직전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을 만나 위로했다. 이어 5만명이 운집하고 전국에 생중계된 미사에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나왔다.
교황을 면담한 이들은 지난달 8일부터 십자가를 메고 안산 단원고를 출발해 골고다 언덕을 걸어간 예수처럼 진도 팽목항을 돌아 대전까지 온, 단원고 학생 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와 고 김웅기군의 아버지 김학일씨 등 유가족 8명과 단원고 학생 2명이었다.
유족 김학일씨가 “300명의 억울하게 죽은 영혼이 십자가와 함께 있다”며 “억울하게 죽은 영혼과 같이 미사를 집전해 달라”고 말하자 교황은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이어 세월호가족대책위원회 김형기 수석 부위원장이 “지금까지 진실을 은폐해온 정부를 믿을 수 없다.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우리 곁에 계신 한국 천주교를 밀어 달라. 가족에게 어떤 고난과 고초가 닥칠지 모른다. 두렵다. 그때 교황님이 우리를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유족들은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다. 죽은 아이들을 살릴 수는 없지만 우리 아이들이 왜 죽어갔는지 이유는 알고 싶다. 진상규명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그래야 죽어서도 아이들을 떳떳하게 볼 수 있다”며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한 10명을 위해서도 기도해 달라”고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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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노란색 리본을 왼쪽 가슴에 달고 15일 오전 대전 유성구 노은동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대전/사진공동취재단 |
교황은 유족들이 돌아가며 얘기할 때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하거나 안아주었다.
이어 가족들은 세월호 희생자 추모를 위한 노란 리본과 희생자 사진이 담긴 앨범, 생존 학생과 가족들이 쓴 영어·스페인어·한국어로 된 편지 등을 함께 전했다.
유족들은 교황 면담에 앞서 진도에서부터 들고 온 십자가를 대전교구 유흥식 주교를 통해 교황에게 전해줄 것을 요청했다.
교황은 잠시 뒤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미사장에 나와 무개차로 행사장을 돌던 중 이 미사에 동석한 세월호 희생자 가족 36명이 있는 곳에서 차에 내려 다가와 격려해주었다. 그의 가슴엔 어느새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뒤 122일간 수장된 아이들과 같이 어두운 밤을 보낸 가족들에겐 광복 같은 빛이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교황은 이 미사 삼종기도에서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생명을 잃은 모든 이들과 대재난으로 인해 여전히 고통받는 이들을 성모님께 의탁한다”며 “주님께서 세상을 떠난 이들을 당신의 평화 안에 맞아 주시고, 울고 있는 이들을 위로해 주시며, 형제자매들을 도우려고 기꺼이 나선 이들을 계속 격려해 주시길 기도한다”고 밝혔다.
교황은 이어 “이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모든 한국 사람들이 슬픔 속에 하나가 되었으니, 공동선을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는 그들의 헌신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교황은 미사 강론에선 ‘죽음의 문화’를 질타했다. 그는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모델들을 거부하고, 생명이신 하느님과 하느님의 모상을 경시하고, 모든 남성과 여성과 어린이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죽음의 문화를 배척하기를 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하느님의 계획대로 세상을 변모시키려는 우리의 노력을 이끌어 주시도록 간청한다”고 했다.
교황은 미사 뒤 교황방한준비위원회를 통해 유가족한테서 받은 십자가를 로마로 가져가겠다고 밝혔다. 교황방한위원회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교황이 방한 뒤 첫번째 공개 미사장에서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따로 만난 것이 이례적이고, 큰 상징이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 유족들은 16일 광화문 시복식장에도 600명이 초청받아 다시 교황과 함께한다.
교황은 이날 오후 충남 당진 솔뫼성지에서 열린 아시아청년대회 강론에서 아시아에서 모인 22개국의 청년들 6000여명에게 “세상, 장벽을 극복하고 분열을 치유하며 폭력과 편견을 거부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라”고 말했다.
교황은 청년들과의 대화에서 한국인 박지선씨로부터 남북 분단의 극복에 대한 질문을 받자 “누가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닌 우리가 언제나 한 가족인 것을 생각해야 한다. 지속적으로 희망을 지니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즉석에서 남북간 화해·평화를 위한 침묵의 기도를 제안해 함께 기도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송인걸 진명선 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