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복음 말씀은 오병이어의 기적이었습니다.
미사 중에 문득, '나 한 사람의 보잘 것 없는 희생과 나 한 사람의 기도가 여기 모인 많은 신자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영적인 빵이 될 수도 있겠구나. 내 기도와 희생은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그를 통해 주님께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기적을 행하시겠구나. 그래서 올바른 신심으로 드리는 미사의 가치가 그렇게도 큰 것이겠구나.' 하는 묵상을 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해 해석이 분분합니다. 성경말씀은 얼마나 풍성한 뜻을 담고 있는지, 이런 저런 해석들이 모두 다 귀하고 소중합니다.
안타까운 일은 한 가지 해석을 하는 사람이 다른 한 가지 해석을 틀렸다고 배척하는 경우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묵상하는 사람들 중에서 글자 그대로의, 물고기와 빵의 수가 늘어났다는 사실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면서 이성적인 해석'만'을 옳다고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오병이어의 기적 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를 그런 식으로,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 가능한 사건에 대한 해석을 기적이라는 이야기 속에 담아냈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한 해석을 하는 태도가 그 사람의 믿음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되기도 합니다.
저는 극히 일부 신자들에게서, 그런 식의 태도로 말미암아 성경에 흐르는 중요한 신비를 놓치고 성령 운동을 배척하고 심지어 예수님의 부활도 제자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고백하느라 지어낸 이야기이지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라고 하고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50퍼센트 신이셨고, 50퍼센트 인간이셨던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100퍼센트 신이셨고, 100퍼센트 인간이셨습니다.
어제 어느 홈피에서 나누어진 대화를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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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이어의 기적은 님이 말씀하신 대로, 나눔의 기적, 사랑의 기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힘을 강조하시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구요. 어떤 분들은 어린 아이의 순수한 마음, 사랑의 마음, 작은 봉헌이 큰 기적을 이룰 수 있게 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해 송봉모 신부님과 양승국 신부님의 묵상도 나누고 싶어 아래 붙입니다.
=================== 이하 송봉모 신부님 묵상글입니다. 오병이어(五餠二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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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이어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성경 전체를 대하는 태도에서 중요한 것 같아서
두 분 신부님의 묵상글을 올렸는데..
00님 묵상과 차이가 나서 00님이 어찌 받아들이실지 살짝 걱정이 되었었답니다.
괜한 노파심에 덧붙이는 제 말을 두 번이나 고쳤네요.^^
얼마 전에 정진석 추기경님도 오병이어의 기적을 나눔의 기적이라 말씀하셨어요.(그랬다가 극히 일부 개신교 신자들이 유감표명을 했었지요. 기적이 아니라고 하신 게아닌데
.......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불을 놓으시어나눔이 이루어지게 사랑할 수 있게 하시는 분이시고,
그런 나눔도 기적 중의 기적이지요.
고맙습니다.
토마스는 의심을 통해 확신을 얻을 수 있었고, 그래서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을 고백할 수 있었는데,
유아세례 받은 사람들은 확신하기 위한 의심의 과정을 생략하고 그냥 당연히 '우리 모두의 하느님이 계시려니'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저도 예비자 교리부터 들어야겠다 싶어서 몇 번 참석해봤는데, 나중에는 좀 눈치가 보여서 그만 두었네요..ㅎㅎ
지가유.. 성경을 한 번도 통독한 적이 없는 완존 엉터리 신자랍니다
예비자 교리서, 성경 꼭 한 번 제대로 읽어봐야겠습니다.
레지나의 올해 목표입니다.
00님도 레지나도 홧팅!!
빵이아니라 나누려는 마음을 보아야겠지요...
그리고
나눔의 기적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오래동안 눈을 마추고 있읍니다.
빵만이 아니라...
기쁨도.. 아픔도..슬픔도.. 같이 나눌수있는 진정한 크리스챤이 무었인지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동화책을 다시한번 생각해보았읍니다.
이하 2012년 7월 29일에 덧붙입니다.
▥ 열왕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4,42-44
그 무렵 42 어떤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 왔다. 그는 맏물로 만든 보리 빵 스무 개와 햇곡식 이삭을 자루에 담아, 하느님의 사람에게 가져왔다. 엘리사는 “이 군중이 먹도록 나누어 주어라.” 하고 일렀다. 43 그러나 그의 시종은 “이것을 어떻게 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엘리사가 다시 말하였다. “이 군중이 먹도록 나누어 주어라. 주님께서 이들이 먹고도 남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44 그리하여 그것을 사람들에게 내놓으니, 과연 주님의 말씀대로 그들이 먹고도 남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15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 곧 티베리아스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2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라갔다. 그분께서 병자들에게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3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앉으셨다. 4 마침 유다인들의 축제인 파스카가 가까운 때였다.
5 예수님께서는 눈을 드시어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6 이는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
7 필립보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 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8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하나인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9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0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곳에는 풀이 많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쯤 되었다.
11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12 그들이 배불리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13 그래서 그들이 모았더니, 사람들이 보리 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
14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 하고 말하였다.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래전 텔레비전에서 경주의 최 부잣집 사연이 소개된 적이 있었습니다. 최 부잣집 가문의 마지막 부자는 가진 재산을 모두 사회에 내놓았습니다. 그는 어느 노스님에게서 들은 다음 금언을 평생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재물은 똥오줌과 같아서 한곳에 모아 두면 악취가 나서 견딜 수 없고, 골고루 사방에 흩뿌리면 거름이 되는 법이다.” 재물은 쌓아 두면 독이 되지만 나누면 덕이 됩니다.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은 “저의 하느님, 당신께 모든 것을 돌려 드립니다.” 하고 기도했습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하느님께 드릴 것이 없습니다. 단지 돌려 드릴 것이 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느님에게서 선물로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소유자가 아니라 관리자일 뿐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연히 감사하는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그리고 소유의 집착에서 벗어나 나누며 사는 것이 기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자칭 볼수록 빠져드는 매력이 있는' 울 윤성민 신부님께서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는 부분에 대해 강론해주셨어요.(볼수록 빠져든다는 건 레지나도 인정ㅎㅎ)
신부님께서 참 재미있고 쉽게 강론해주셨는데, 제가 그대로 옮겨서 훌륭한 강론을 옮기지는 못하고,엉터리이겠지만 제 나름으로 받아들여 새로 정리해서 써봅니다.
(둘째 아들 녀석이 미사 중 자세가 으찌나 엉망이던지, 강론 듣다가 아들 뒤통수 째려보느라고~ 집중해서 듣지 못했네용.^^)
예수님께서는 분명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하고 물으셨지요.
분명, 우리가', '어디서' 라고 말씀하셨는데, 필립보가 엉뚱하게도 돈계산해서 세속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거지요.
'우리가' - 예수님과 함께
'어디서' - 하느님에게서
이런 대답을 원하셨는데, 제자들은 그 많은 표징을 보고 예수님과 지냈으면서도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대답을 하지 못한 겁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께 구하면~ 우리의 보잘것 없는 능력이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을만큼 발휘될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께 맡기고 답을 청할 줄 알아야 합니다.
드라마에서 보면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이 어떤 장소에서 어떤 상황에 처하면 옛 기억이 돌아오는 일이 있습니다.
오늘 1독서의 말씀을 보면,, 엘리사가 "주님께서 이들이 먹고도 남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라고 합니다
예수님과 지냈던 제자들도 구약의 이야기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셨으니~"하는 엘리사의 말씀을 기억해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