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17일 화요일
큰 맘 먹고 조금 멀리 꽃구경 가기로 마음먹은 날이다.
근데 몸이 천근만근 무겁고 다시 더 많이 부어서 차타고 나가는 걸 포기했다.
대신 집 앞에 잠깐 나가서 왼쪽으로 100미터 오른쪽 100미터쯤 걷다가 그냥 들어왔다.ㅎㅎ
20분 남짓 걸었는데도 힘들었다.
신발에 발이 꽉 끼어서 아직 밖에서 오래 걷는 건 무리인 것 같다.
지난 주 목요일에 분과 모임있어서 미사하고 모임하고 회식하고, 금요일에 학교에 다녀오고..
이틀간 넘 무리를 했나 보다. 그 후로 영 맥을 못 추고 집에 콕 박혀서 배실배실 앓고 있다.
한번씩 집밖에 나가려면 조금? 번거롭다.
우선 맞는 옷이 거의 없고 맞는 신발도 다 떨어진 슬리퍼 하나밖에 없고,
가발이나 모자를 써야 하고, 실리콘 인조유방 브래지어도 해야 하고,
이뇨제 먹는 동안 햇빛 조심하라고 해서 마스크나 모자도 써야하고..
가발을 쓰면 챙모자 쓸 수도 없고.. 면모자 쓰고 그 위에 챙모자 쓸 수도 없고.
모자를 어찌 고른다고 해도 겨울도 아니고 등산 차림도 아니어서 어색하고....
햇빛이 따갑지도 않은데 파라솔 쓸 수도 없고.....
잠깐 나가는데 자외선 차단크림 바르기도 그렇고..
눈썹이 아직 없으니까 눈썹 그려야 하고..
기미가 지저분하게 올라오고 얼굴빛이 탁해서 이왕이면 화운데이션도 발라야 하고...
아무리 위장을 해봐도 내 차림을 보면그닥 나가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
엘리베이터에서 사람 만나는 것도 싫고.
더 따뜻해지면 헐렁한 점퍼도 벗어야할 텐데.. 큰 일이넹..
어쨌든 오늘은 집밖으로 나가서 꽃구경을 했다.ㅋㅋ
우와~ 세상에 벚나무가 꽃이 한창인 것도 있었고 벌써 잎이 난 것도 있고..
개나리는 진즉 활짝 피었고.
우리 동 앞 화단에 핀 민들레랑 제비꽃도 한참 구경했다.
을매나 앙증맞고 예쁜지..ㅎ 몸이 붓기 전에는 레지나도 그랬는데.. 헤헤.
이뇨제는 너무 오래 먹어 부작용이 생길 것 같고, 먹어도 그닥 효과도 없는 것 같아서 사흘 전에 끊었다.
안 먹어도 이젠 자연스레 좋아지겠지 했는데, 웬걸.. 그 후로 또 1.5키로나 2키로쯤 다시 불었다.
에효.ㅠㅠ
약 먹는 동안에도 다리는 예전같이 심하지는 않지만 아직 누르면 쑥 들어가서 안 나올 정도로는 부어있는데,
이젠 말랑해지던 종아리부분까지 다시 딴딴해져다.
게다가 가려운 부위가 점점 넓여져서 벌겋게 부었다.
손가락도 다시 퉁퉁 붓고, 특히 아침에 일어나서 손가락을 구부리면 많이 아프다. 낮에도 아프고.
팔은 무거운 것 들고 나서 아픈 것처럼 아파서 세수할 때도 뻐근하게 힘들다.
예전처럼 팔을 들어올릴 수도 없을만큼은 아니지만...
얼굴도 좀 더 부었다.
지난 번 병원에 가서 혈압을 재니, 다리에서 재니까 좀 높다고는 하지만
165 에~ 얼마였던가? 아래 혈압은 기억이 안 나는데,
암튼 혈압이 병원에 갈 때마다 조그씩 올라가던데.
이뇨제를 안 먹어서 혈압이 높아져서 이렇게 몸이 무겁고 피곤한 건지..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머리 속이 막 졸아들고 눌리는 느낌이 든다.
어제 저녁에는 그런 증상이 심해서 베개를 베고 누워도, 베개를 빼고 누워도 뒷골이 조이는 듯 불편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봤더니.. 고혈압과 신장기능이 관련이 있는 것도 같고.. 고혈압에 이뇨제를 처방하기도 한다는데..
아무래도 이뇨제 끊어서 그런가 싶어 오늘 저녁부터 이뇨제 다시 먹기 시작했다.
이뇨제 부작용보다 붓는 게 더 안 좋은 것 같아서... 다리부분 살도 혈액순환이 안되어 썩을 것 같은 생각도 들고...ㅎㅎ
모레 항암 10차 맞으러 가는데, 아무래도 이뇨제를 또 처방 받게 될 것 같다.
오후에는 모처럼 성경을 오래 읽었다.
6년전부터 눈이 급격히 나빠져서 큰 성경도 돋보기를 쓰고 봐야한다.ㅎㅎ
5년간 먹었던 타목시펜 부작용 중 하나가 시력약화이다. 녹내장도 있고..
올해 항암주사 끝나면.. 다시 5년을 먹어야한단다.. 칫!
고린토 1서를 9장까지 읽었는데,, 진짜 진짜 재미있었다.
주옥같은 유명한 구절이 참 많았지만.. 이번에는 8장, 9장에서 오래 머물러있었다.
"여러분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이들에게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물을 먹든 안 먹든 형편이 나빠지지도 나아지지도 않는다고.. 알고 있다고 해서..
그런 자유가 믿음이 약한 이들에게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믿음이 약한 이들은 우상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정말로 그렇게 알고 먹으니까...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사소한 언행도 조심해야 한다. 믿음이 약한 이들이나 믿음이 없는 이들 앞에서는 약한 사람들의 기준에 비추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서도 안된다. 설령 실제로는 자신의 행위가 성덕과는 상관없는 일임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다. 그러한 앎에서 오는 자유를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믿음이 약한 사람들 앞에서는 그들 수준에 맞추어 언행을 신경써야하는 것이다. 특히 성직자나 수도자나 선교사들이나 남들 앞에서 복음을 전하는 모든 사람들은 더더욱....
또, 우리의 죄나 약함이나 넘어짐같은 인간적인 모습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데 가끔 도움이 된다는 걸, 하느님께 나아가는데 결정적인 장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다고 해서.. 믿음이 약한 사람들 앞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면.. 그들이 성덕을 쌓는데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믿음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사람들에게는 솔직하게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이 그들에게 위안이 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좀 더 생각해봤는데..영적 체험이나 계시도 마땅히 해야 할 사람에게만, 그리고 마땅히 해야 할 때에만 말해야 한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리 좋은 체험이라 할지라도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바오로 사도의 화법에 탄복하면서 읽었다.
9장에서 마음에 남는 부분은
"여러분이 바로 주님 안에서 이루어진 나의 업적이 아닙니까? 여러분이야말로 주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내 사도직의 증표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면서 삯을 요구할 권리가 있지만,, 그러한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것이 자랑거리이라는 말씀,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얻어지는 양식이나 제단 제물이 아닌) 복음으로 생활해야 한다는 것..(9"14)
바오로사도가 받는 삯은 복음을 거저 전하는 것이라는 것.
성직자와 수도자를 비롯하여 교회 안에서 세속적인 풍요나 신자들로부터의 대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바오로 사도가 당신의 삶으로써 뜨거운 호소를 하고 계신다. 사람의 마음 속에 이루어진 업적 말고는 다른 댓가를 바라지 말라고. 행동으로써 하는 말 한마디는 이론으로써 하는 만 마디의 말보다도 울림이 크다
또한 복음을 전하면서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자기의 직분에 대한 정체성이 흔들리는 사람들도 새겨 읽어야 할 부분이다. 다른 보상이 없더라도.. 복음을 전함으로써 위로와 평화와 구원을 얻은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이상의 업적도 그 이상의 보람도 그 이상의 보상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자기의 일이 보람없이 느껴지고 힘들게만 느껴지더라도 주님의 사도라는 자긍심을 가져야한다.
4장에서는
"지금 이 시간까지도, 우리는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맞고 집 없이 떠돌아다니고 우리 손으로 애써 일하니다. 사람들이 욕을 하면 축복해주고 박해를 하면 견디어 내고 중상을 하면 좋은 말로 응답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쓰레기처럼, 만민의 찌꺼기처럼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라고 했다.
바오로 사도는 교회 안에서 물질적인 돌봄을 요구하실 당연한 권리가 있었지만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당신 손으로 애써 일하시면서 복음을 전하셨다.
"나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약한 이들을 얻으려고 약한 이들에게는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합니다. 나도 복음에 동참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달리십시오...... 나는 내 몸을 단련하여 복종시킵니다.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나서, 나 자신이 실격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께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시면서 정작 자신이 실격자가 되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쓰시다니. 나도 더 겸손해지고 더더욱 노력해야겠다.
한 시간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새겨 읽으면서
바오로 사도의 순수하고 뜨거운 열정에 어찌나 가슴이 뜨거워지던지...
진짜 진짜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정성 가득한 선물을 받았을 때와 같은 감동으로 으앙~~ 울어버렸다.
바오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를 이끄시는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에 데이는 행복을 꽃구경에 비할까.
"그대 내곁에 온 순간, 그 눈빛이 너무 좋아~~사랑밖에 난 몰라~~"
힝~~ 훌쩍 훌쩍~~
몸이 불편해서 꽃구경을 제대로 못한다 해도,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내 마음이 이미 화창한 봄인 걸. ㅎㅎ
- 행복한 엉터리 푼수 레지나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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