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 이야기, 우리의 위안
3월 막바지라 봄이 한창일 텐데 여러 달째 항암 부작용 때문에 움직임이 불편해서 꽃구경은커녕 집안에서 한두 시간 움직이는 것도 힘겹습니다.
오늘은 아홉 번째 항암주사를 맞았습니다. 채혈을 하고 나서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두 시간 기다려서 혈액종양내과 진료를 본 다음, 다시 외래 항암치료실 순서를 한 시간쯤 기다렸다 주사를 맞습니다. 기다리는 시간에는 보통 식사를 하거나 암병동 지하 성당에서 성체조배를 합니다.
남편이 처방받은 이뇨제를 사러 약국에 간 사이에 잠시 성당에 들렀습니다. 부종을 일으키는 주사약을 마지막으로 맞은 지 9주가 지났는데도 그다지 나아지지 않아서 속상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이틀 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몹시 울적했습니다. 몇 가지 일로 화가 나고 억울해서 아들 앞에서조차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혼자 있고 싶었는데, 다행히 성당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암병동 성당은 본관 성당과 달리 한적해서 좋습니다.)
성당 문을 열면서부터 ‘주님,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세요.“하고 청했습니다. 자리에 앉아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주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제 모습이 부끄럽고 속상합니다. 하지만 정말이지 용서하기 힘들어요. 제 십자가가 너무 무거워요. 그래도 이건 불의잖아요......아니에요. 주님. 아무리 그래도 제가 그렇게 못나게 굴지 않았어야 했는데. 잘못했습니다. 저한테 실망하셨지요? 예수님을 안다고 할 자격도 없네요. 용서해주세요.’
용기를 내서 고개를 들고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예수님의 오른편 십자가에 매달린 우도의 외침이 떠올랐습니다.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루카 23:41)”
제 마음이 급작스럽게 평안해졌습니다.
“예수님. 저는 제 죄 때문에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만, 예수님은 오직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 매달려 계시는군요. 그 고통스런 십자가상에서 우도같은 죄인에게 구원을 약속해주시다니... 그 엄청난 죄를 용서해주시다니......... 우도의 이야기가 제게 이토록 큰 위안을 줄 수 있다는 걸 전에는 미처 몰랐네요.”
곧 울음이 터졌습니다.
“우도가 다른 지독한 죄인이 아니라 바로 저로군요...아, 예수님. 잘못했어요.... 저도 감히 부탁드립니다. 저를 모른다고만 하지 말아주세요..... 저도 미움과 부족함 때문이 아니라 오직 사랑으로만 고통을 겪고 싶은데....... 부쩍 자주 형편없이 넘어지고 맙니다.”
한참을 십자가만 바라보고 있노라니 주님께 깊은 감사가 터져 나왔습니다.
“우도를 용서해주시고 구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도가 있었던 것도 고마운 일이구요. 우도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게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성당을 나서기 전에 그렇게 감사를 드리면서 제대 위에 있는 성경을 펼쳐보았습니다. 집회서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모든 것은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계약의 글이다. (………)
주님 안에서 끊임없이 강해지고
그분께서 너희를 강하게 하시도록 그분께 매달려라.
전능하신 주님 홀로 하느님이시고
그분 말고 아무도 구원자가 될 수 없다.(집회 23:23~24)“
저는 더 깊숙이 환해진 마음으로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우도의 이야기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계약의 글이구나. 그래, 주님께 매달리자. 마음이 괴롭다고 해서 기도를 걸러서는 안 되겠다. 나를 위해서, 미운 그를 위해서, 더 열심히 기도하자..... 내 부족함만 들여다보며 슬퍼하지 말고 주님께 매달리자. 끊임없이 강해지도록.’
“우도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정말 고맙습니다.”
2012년 3월 29일, 엉터리 레지나 씀
“재난이 닥칠 때 허둥대지 마라.
주님께 매달려 떨어지지 마라.
네가 마지막에 번창하리라.
너에게 닥친 것은 무엇이나 받아들이고
처지가 바뀌어 비천해지더라도 참고 견뎌라.
금은 불로 단련되고
주님께 맞갖은 이들은 비천의 도가니에서 단련된다.
질병과 가난 속에서도 그분을 신뢰하여라.
그분을 믿어라. 그분께서 너를 도우시리라.
너의 길을 바로잡고 그분께 희망을 두어라.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그분의 자비를 기다려라.
빗나가지 마라. 넘어질까 두렵다.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그분을 믿어라.
너희 상급을 결코 잃지 않으리라.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좋은 것들과 영원한 즐거움과 자비를 바라라.
그분의 보상은 기쁨을 곁들인 영원한 선물이다.
지난 세대를 살펴보아라.
누가 주님을 믿고서 부끄러운 일을 당한 적이 있느냐?
누가 그분을 경외하면서 지내다가 버림받은 적이 있느냐?
누가 주님께 부르짖는데 소홀히 하신 적이 있느냐?
주님께서는 너그럽고 자비하시며
죄를 용서하시고 재난의 때에 구해 주신다.“(집회 2:3~11)
암병동 지하 성당 사진입니다. 제대 위에는 성경이 늘 펼쳐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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