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12년

외과 정기검진 다녀왔습니다.

김레지나 2012. 3. 23. 20:53

2012년 3월 22일

 

저는 어제 외과 정기검진 받고 왔습니다.

벌써 수술한 지 6개월이 되었네요.

일주일 전에 했던 검사들의 결과는 이상 없다고 하구요.

6개월 후에 다시 보자고 하셨어요.

유전자 검사 상담도 다시 받았어요.

연구에 참여할 건지 그냥 보험처리만 할 건지 결정하라고 하는데..

몇 달 후에 검사해보겠다고 했네요.

피를 너무 자주 뽑는 것 같아서요.~

 

진료실 앞에서  수술방 동기인 마산 언니를 만났어요.
그분은 1기였는데, 삼중음성이라서 정기검진 결과를 걱정하시더라구요.
참 좋은 분과 수다를 떨 수 있어서 좋았어요.
부작용 이야기도 하고,,서로 다육이 사진도 보여주면서 자랑도 하고..


마산 언니는 항암 치료 후에 방사선 치료 때문에 병원에 입원해 계신대요.

같은 병실의 환우는 부종이 심했는데, 이뇨제 처방받아 먹고는 사흘만에 10키로가 빠졌다고 해요.
그 이야기 듣고 살짝 삐칠라고 했네요. 저는 넉달째 이뇨제 먹고 있걸랑요.ㅠㅠ
작은 일에도 비교하는 마음이 일어나니.. ㅎㅎ온전히 '야훼 이레' 하는 게 힘들지요?ㅎㅎㅎ

 

진료실 앞에서는 늘 눈물을 훌쩍이는 사람이 한 명씩 있게 마련인데..
어제도 우리가 수다 떨고 있는데, 앞에 계신 어떤 분이 계속 울고 있더라구요.
머리가 빠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암진단이나 재발 진단 받으신 분 같았어요.
잠시 그분을 위해서 화살기도 했네요.

처음으로 혼자 장거리? 운전을 했더니, 많이 피곤해서 오후 내내 자고 쉬었어요.

 

 

 

2012년 3월 23일

 

비가 와서 그런지 몸이 천근만근이라 미사에 갈까 말까 꽤 망설였는데...

이뇨제 먹고 사흘만에 10키로 빠진 사람도 있다는데, 저도 지금쯤은 좀 빨리 빠져서 어느 정도 활동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간만에 온전히 제 부작용이 빨리 사라지도록 기도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좀 무리해서 미사 가기로 했지요.ㅎㅎ

미사 후에 십자가의 길 기도도 했어요.

다리가 아파서 거의 앉아서 기도했네요.

(14처가 성당 뒷편에 주로 있어서 교우들과 마주보고 있게 되어 난감했어요..ㅎㅎ)

 

십자가의 길 기도하는데... 자꾸 어떤 신부님이 걱정이 되는 겁니다.

기도 지향을 어쩔 수 없이 바꾸었어요.

"제가 더 오래 부어서 불편하게 지낼게요. 대신 그 신부님이 주님께~~~하게 해주세요."

오늘만은 온전히 제 자신을 위해서, 부작용 치유를 청하려고 마음 먹었었는데..

우찌 우찌 하다보니.. 도로 더 아파도 좋겠다고 기도해부렀네요.

엉터리 레지나가 참 잘해다는 생각이 듭니다..ㅎㅎ(자뻑~~ ㅋㅋ)

신부님들은 제가 사랑하는 주님의 일등 일꾼이시니까...^^

물론 더 아프고 싶다는 게 아니고,

두 가지 지향 중 한 가지만 선택하라면 당근 제 회복을 포기하겠다고 맘 먹었다는 겁니다.

 

조금 전에 파티마의 메시지라는 소책자를 읽었어요.

성모님께서 발현증인들에게 이렇게 물으시지요.

"너희는 하느님의 마음을 상해드린 죄의 보속과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보내시고자 하는 고통을 기꺼이 참아 받겠느냐?"

증인들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자

"그럼 가거라. 너희는 많은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위로해주실 것이다."라고 하시지요.

 

다른 소책자에서 읽은 기도문인데요.
"주님, 저희가 치러야할 고통으로 저희도 주님 십자가를 함께 지고 있는 셈이 되는 것이라면,
그것으로 이미 위로입니다."

 

기분이 이렇게 좋아진 걸 보면

이미 위로받은 것 같아요.

보잘 것 없는 고통에 후한 값을 쳐주시는 주님께서 제 기도를 들어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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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 정기검진 한 후에 적었던 졸글 하나 붙입니다.

그때는 병원 다니려면 기차타고 전철타고.. 7시간도 더 걸렸었어요..

지금은 이사 와서 가까워졌지만요

 

저는 다음 주에 항암 9차 합니다.

요즘에는 이 글을 쓸 때와는 달리 멍~하고 무디어진 마음이 된 것 같아 반성하고 있습니다. ㅎㅎㅎ

 

우리 앞에 마셔야할 고난의 잔이 있다면...
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빌지만... 피할 수 없다면 순명하겠다는 의지를 갖는 것은
참 많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낫기를 원하지만 불가피할 때는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겠지요.
하느님께서 우리의 한 걸음 한 걸음 넘어질세라 살펴주시고 계시니
기냥~ 에라 모르겠다~다 맡겨버리는 겁니다.ㅎㅎ

 

 

 

                                  다시 ‘모리야산’을 다녀와서


  저는 3년 반 전에 유방암으로 수술을 했습니다. 림프절 전이가 되어서 항암치료를 받았구요. 그 후로 5년간 먹어야하는 약을 먹고 있습니다. 3개월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다가 이제는 6개월에 한 번씩만 검진 받습니다. 일주일 전에 외과, 산부인과 검사를 했고, 어제 진료 받고 6개월치 약을 받아 왔습니다. 의사선생님께서 검사 결과 이상 없다고 6개월 후에 검사하라 하셨습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주님께서 주신 생명이니 주님 뜻대로 하세요. 어떤 결과이든 받아들이겠습니다.”하고 의지적으로 애써 기도하곤 합니다.


  기차로 내려오는 긴 시간 동안 주님께 기도하면서 지나간 일들을 되새겨보았습니다. 제가 얼마나 큰 은총 속에 살고 있는지, 그 고마움에 눈물이 났습니다. 또 다시 6개월을 선물 받은 것이 기뻐서만은 아니었습니다. 병원진료 결과를 기다리면서도 평화가 흔들리지 않을 만큼 제 믿음이 자라도록 이끌어주신 하느님께 고마워서 목이 메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어린 보살핌이 제 영혼 안에서 놀라운 일을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사악을 바치라는 하느님의 이해할 수 없는 명령에 순종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면서 3일 동안을 걸어서 모리야산에 도착했습니다. 치열한 갈등과 고통과 의문 속에서 아브라함은 그동안 하느님께로부터 받았던 사랑의 기억들을 총동원해서야 선하신 하느님을 믿고 순종하려는 결단을 내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저도 지난 3년 동안 여러 번 모리야산을 올랐습니다. 제가 바쳐야할 ‘이사악’은 ‘건강’이기도 했고, ‘사랑하는 가족과의 이별’이기도 했고, ‘관계에서 오는 고통’이기도 했고, ‘목숨’이기도 했고, 심지어 ‘하느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 열망’이기도 했습니다. ‘제 이사악들’을 주님께 봉헌하려고 모리야산을 오르면서 하느님께 고통의 존재이유를 따져 묻기도 했고 힘들어하고 슬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제게 베풀어주신 사랑의 기억들이 얼마나 진하고 얼마나 많았는지, 이젠 하느님께 섭섭한 마음도 없이 평화로운 마음으로 모리야산을 오릅니다. 제 믿음이 그동안 부쩍 자란 것입니다. 제게 믿음은 하느님이 주신 사랑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과연 고통은 믿음을 굳건히 하고 “야훼이레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게 하는 은총입니다.


  우리는 크고 작은 고통을 만날 때마다 오직 선하신 하느님께만 시선을 두고 세속적인 애착을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과거의 기억들, 현재의 행복, 미래의 계획들까지 다 내려놓은 후에 “야훼이레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면, 우리 마음 속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자유와 평화가 가득 채워질 것입니다.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하느님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지혜와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주위 사람들은 제가 성격이 밝고 살려는 의지가 강해서 행복하게 투병생활을 하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절대 죽는다는 건 생각하지 마. 오래 살 거라고 믿어야 해. 희망을 가져.”라고 응원해주곤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낫게 해주셨다는 거야? 그렇게 믿는 거야?”하고 묻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누리는 기쁨과 평화는 앞으로 건강해질 거라고 하느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더 살고자 하는 욕망까지 내려놓고 하느님께 의탁하는 법을 <조금은> 배웠기에, 문제와 고통의 한 복판에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제게 허락된 여생이 6개월이든 60년이든 하느님과 함께 걸으며 사랑을 나눌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는’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6개월 후에 다시 한번 모리야산을 오를 때에는 더 많은 사랑의 제물도 같이 드릴 수 있도록 매 순간 애써야겠습니다. 


“아빠, 하느님,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은총만으로도 넘치도록 넉넉합니다. 제게 어떤 것을 허락하신대도 고맙습니다. 당신께서 주신 사랑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2009년 8월 11일  엉터리 레지나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