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미사>
JUST BE THERE!
“Father, is there anything that I can bring with for the hospital ministry tomorrow?”
(신부님, 내일 병원사목 갈 때 모 준비해 갈 거 있을까요?)
“Agnes, just be there at 10:30. Your presence is just a gift!”
(아녜스, 열시 반에 오기만 하세요. 그 곳에 당신이 있다는 것 자체가 선물입니다.)
어제 밤 Father Allen 과 주고 받은 문자내용이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아침 일찍부터 몸과 마음을 준비했다.
그동안 요양병원으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방문은 해보았지만 오늘처럼 병원사목의 일환으로
그 곳에서 미사를 드리시는 신부님을 assist 하러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무엇이든 처음 해 보는 일은 약간의 설레임과 긴장을 동반한다.
일어나자마자 오늘 내가 가는 발걸음이 주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이 되게 해주십사 기도를 올리고
비록 큰 일은 하지 않더라도 내가 거기에 ‘가 있다는 것’ 자체가 앨랜신부님이 말씀하시듯이 선물이 되고
주님 맘에 들었으면 좋겠다고 말씀 드렸다.
이 곳은 주로 치매 환자 노인들이 계시는 요양병원이었다.
짐작은 하였지만 막상 들어가니 눈에 밟히는 모든 것이 힘들고 아팠다.
대부분 정신줄을 놓은 것처럼 보였고 어떤 분은 심하게 기침을 계속 하고 어떤 분은 몸을 똑바로 세우지 못해
휠체어에 비스듬히 쓰러질 듯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아니.. 지금 이 분들과 미사를 봉헌한다는 건가? 미사성제가 올려진다는 것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알고나 계시는 것일까? 이런 상태로 성체를 영하실 수는 있을까? ……..
수많은 분심이 머리 속을 휘젓고 다니는 동안 미사를 위한 제대를 준비하였다.
동그란 탁자에 흰 천을 덮고 초 두 개 켜놓는 것이 다였다.
그 위에 신부님이 가져오신 미사도구들이 올려지고 미사는 시작되었다.
간혹 초점 없던 눈에 기운이 생기는 듯 신부님을 바라보는 분도 계셨지만
대부분은 고개를 떨구고 있거나 잠을 주무시고 계셨다.
그래도 미사는 계속되었고 한 분 한 분의 이마, 손바닥에 HOLY OIL (성유)로 ANNOINTING 하고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해 주는 신부님의 모습은 너무도 정성스럽고 거룩하였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아… 이렇도록 아름다운 미사성제에 초대받은 나는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인가.
혹 오늘의 영성체가 마지막이 될 분도 계시겠지….
혹 다시는 휠체어 앉아서라도 미사에 참여할 수 없게 되는 분도 계시겠지….
혹 다시는 한 사제의 정성과 사랑이 담긴 손끝으로 전해지는 성유를 받지 못하게 될 분도 계시겠지….
지금 이렇게 감사하고 소중한 이 순간에 내가 ‘있다는’ 것은 다른 누구에게가 아닌 나 자신에게 얼마나 큰 선물인가.
<요양병원 전경>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어제 신부님이 주신 문자가 다시 생각났다.
“Just be there! Your presence is just a gift!”
내가 ‘어디에 있는가’는 때로 멈추어 잘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미사보를 덮고 초 두 자루 켠 일뿐이 없는데도 선물이 되는 자리가 있고
아주 큰 열정과 사랑을 다하여 머물러도 선물이 되지 않는 자리가 있다.
이제 내일은 또 모레는 그리고 내년에는 난 어느 자리에 있을 것인가?
주님은 어느 곳에 내가 ‘있는 것’만으로도 선물이 되는 자리를 허락하실 것인가?
오늘 잠언 말씀이 유난히 가슴을 채워 온다.
'사람 마음 속에 많은 계획이 들어 있어도
이루어 지는 것은 주님의 뜻 뿐이다.' (잠언 19,21)
'Many are the plans of the human heart,
but it is the decision of the LORD, that endures.' (Proverbs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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