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최 강 신부님

교회 안의 직무

김레지나 2012. 1. 30. 20:16

두 달쯤 전이었을까, 교황청 외방선교회 총장직을 맡고 있는 잔끼Zanchi 신부님과 같이 한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나는 그에게 별 깊은 뜻 없이 가볍게 한 가지를 물었다.

“곧 총회가 시작될 텐데 이번에 또 총장으로 선출되면 총 몇 년째 이탈리아에 머무르게 되는 거죠?”

잔끼 신부님은 6년 임기의 총장으로 선출되기 전에 부총장으로 또 6년을 봉사했었으니까 만약 재선출 되는 경우 너무나 오랜 기간 동안 본국에서 근무를 하게 되는 터라서 은근히 그 분의 반응이 어떨까 궁금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잔끼 신부님은 농담으로 시작은 했지만 내 예상대로 상당히 진지하고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잘 생긴 이탈리안 선교사 하나가 갑자기 세상을 떴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싶다면 그렇게들 하겠지. 내 나이 이제 육십 대 중반이야. 이제는 내 자리로 돌아가야 할 때지. 지금 다시 방글라데시로 돌아가지 않고 여기에서 또 육년을 지내면 선교지로 돌아갈 때 그 곳 형제들에게 너무 미안하잖아. 한참 일할 수 있을 때 20년 가까이를 내내 밖에서 지내다가 나이 칠십이 넘어서 지치고 늙은 몸으로 선교지로 돌아가서 그 곳 형제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아.”

그랬던 그가 얼마 전 폐막된 삐메P.I.M.E. 총회에서 6년 임기의 총장직에 재선출 되었다. 새로 구성된 참사회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 속의 잔끼 신부님은 딱딱하게 굳은 채 아무 표정도 없이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낡은 잠바를 걸치고 다들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에서 혼자 무표정하게 서 있는 그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마치 토라진 어린 아이 같은 귀여움이 물씬 느껴져서 한참을 웃을 수 있었다. 하느님께서 보시기에는 또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새로 총장직을 맡은 잔끼 신부님에게 가장 먼저 도착한 소식은 필리핀의 민다나오 섬에서 그의 소속인 한 선교사제가 이슬람 무장 세력에 의해 납치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지금쯤 이탈리아 외교부로, 교황청으로, 그리고 필리핀으로 납치된 회원의 석방을 위해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서 본국에서 일을 하는 것이, 그것도 교황청 설립 선교회의 총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더 의미 있고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는 방글라데시의 찢어질 듯이 가난한 현실 속에서 그곳의 형제들과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도 힘들 수 있다. 그에 비해 사제 회원 수만도 육백 명이 넘는 거대한 선교회의 책임을 맡는 일은 훨씬 무게감이 느껴진다. 또 그런 만큼 그 직무를 통해 어떤 의미와 동기를 부여받는 정도 역시 대단히 클 것이다. 일반 사회인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는 다르다. 아니, 달라야 한다. 교회 안에서는 더 큰 책임을 맡는 일이 사회에서처럼 단순히 승진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 교회 안에서 장상의 자리를 맡은 이들은 더 큰 봉사의 직무에로 초대된 사람들이지 결코 군림하는 위치에 오른 사람들이 아니다. 나는 특별히 선교사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일반 사람들이 느끼는 직무에 대한 생각과는 확실히 다른 교회의 고유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선교사제는 두 번 성소를 받아야 한다. 한 번은 사제로서 죽을 때 까지 살아갈 수 있는 부르심을 받아야 하고, 또 한 번은 선교사로서 기꺼이 떠나갈 수 있는 부르심을 받아야 한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기꺼이 자기가 태어난 조국을 떠나서 (ad exteros), 그들의 생명이 다할 때 까지 (ad vitam) 낯선 이방인 형제들과 함께 (ad gentes)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기쁨과 평화를 나누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었다. 우리의 서울 대교구만한 규모의 교황청 설립 선교회의 총장직을 20년 가까이 수행하고도 다시 지구상에서 최빈국 중의 하나로 분류되는 나라의 조그만 시골 본당으로 돌아가 그 곳의 형제들과 함께 빵 한 조각을 나누면서 살아가고자 하는 늙은 선교사들의 삶에서 느껴지는 인생의 의미가 참으로 깊고 크다.

몇 해 전, 도시의 대형 본당 신부에서 시골의 조그만 본당 신부로 전임 발령을 받은 어느 신부님과 마주 하는 자리가 있었다. 나는 몹시 화가 내며 막말을 쏟아내는 그 분을 보며 몹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또 어느 가톨릭계 신문에서 새로이 주교직에 불림을 받은 어느 신부님이 환호하는 신자들의 무등을 타고 두 팔을 펼쳐 든 채 크게 웃고 있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그때 그 사진 위로 십자가 위에 못 박힌 채 고개를 떨구며 ‘이제 다 이루었다’(요한19,30)고 말씀하시는 예수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씁쓸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 사진 한 장의 포즈로, 또는 불같이 화를 내는 그 한 번의 모습으로 그 분들을 경솔하게 판단해서는 안 될 일이다. 실제로 그 분들은 지금 너무나 겸손하고 훌륭한 모습으로 본당 신부와 교주장 주교직을 수행하시면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시는 분들이다.

나는 어느 다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향해 이 글을 쓰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 어느 한 구석에서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힘없이 앉아 있는 작은 아이들이 있다. 다른 어떤 일 보다도 그런 작은 아이들 몇몇을 만나서 그 놈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 내 선교사제로서의 최고의 사도직이자 내 삶의 마지막 자리가 되기를 정성들여 빌어 본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요한10,11)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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