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이탈리아 커피 맛에 아주 익숙해 져서 기름진 식사를 마치고 나면 꼭 진한 에스쁘레쏘를, 그것도 더블로 마셔야만 그 느글거리는 느낌을 빨리 지울 수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이 곳을 떠나는 한 친구로부터 오리지날 한국식 다방커피 맛의 진수를 보여주는 ‘커피믹스’를 넘겨받은 뒤로는 4층에서 1층까지 내려가는 것이 귀찮아서 요즘에는 그냥 방에서 물을 끓여 커피믹스를 타먹고 있는 중이다.
오늘 아침의 일이다. 머그 컵에 커피 믹스와 끓는 물을 넣고 저어야 할 순간, 마침 티스푼이 전날 마시다 남은 보이찻잔 속에 씻겨지지 않은 채로 담겨져 있었다. 아주 잠깐 고민하다가 뜯겨지지 않은 쪽의 커피 믹스 봉지로 커피를 젓고 나서 입에 넣어 한 번 쭉 빨고는 휴지통에 버렸다.
커피를 마시고 있는 데 갑자기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커피를 준비해 주실 때마다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나으 모친!(나는 가끔 어머니를 이렇게 부르곤 했다.) 집에서 마시는 거니까 잔 받침은 뺍시다.”
“손 한 번 더 쓰고 몸뚱이 한 번 더 움직이는데 사람의 품위가 달라지는 거야. 그런 것이 귀찮으면 차라리 커피를 마시지 말든가.”
누가 그랬던가! 반복 학습은 곰이 재주를 넘게 하고 돌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벌써 몇 십 년이 흘러간 과거의 어머니 말씀이 티스푼 하나 씻기 싫어서 비닐봉지로 커피를 젓고 있는 나의 나태함을 꾸짖었다. 그 당시에는 커피를 마실 때마다 듣는 어머니의 잔소리쯤으로 여기고 흘렸으련만 어머니의 말씀은 내 귀에 못처럼 박혀 있다가 꼭 필요할 때마다 나를 바로잡아 주는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세대 간의 갈등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요즘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갈등을 피한답시고 각 세대가 마땅히 해야만 되는 역할을 경시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부모는 마땅히 부모로서 합당한 말과 행위로 스스로 모범을 보이면서 끊임없이 자녀들을 가르쳐야 하고 자녀들은 마땅히 그 모범적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 그것이 부모의 입장에서 당장은 아무런 결실이 없는 듯 보여도, 그것이 자녀의 입장에서 당장은 죽기만큼 싫은 잔소리처럼만 들린다 해도 진정으로 그 가르침의 언행이 옳은 것이라면 언젠가는 빛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자녀에게 꼭 가르쳐야겠다고 여기는 좋은 삶의 가치들이 있다면 부모들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말과 행위로 자녀들의 눈과 귀에 못을 박아두는 것이 좋다. 이때 주의해야할 것은 절대적으로 가르치는 자의 말과 행위가 그 가르침에 합당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말 다르고, 몸 다른 어른들의 삶의 방식을 너무나 혐오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가르쳐서 무엇인가 소중한 것들을 깨닫게 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 세상에 있을까. 내가 행하지 못하는 것은 아예 가르치려 들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그것은 애초 불가능한 일이다. 자녀들에게 꼭 가르치고 싶은 삶의 가치들이 있으면 비록 커피 한 잔 마시는 일조차도 내가 먼저 온 몸으로 깨닫고 그것을 천 번, 만 번 행해야만 하니 세상에 자식을 가르치는 일보다 어려운 일이 또 있겠느냐 말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 자세를 바로 하고 차 한 잔 끓여 마시며 앉아 있자니 새삼 이 세상에서 부모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시는 모든 분들께 가없는 존경의 마음이 일어난다.
고맙습니다. 당신들은 진정 하느님과 닮았습니다.
“지혜는 어미처럼 자녀를 키워 주고 자기를 찾는 사람들을 보살펴 준다.”(집회4,11)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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