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최 강 신부님

팩하는 신부

김레지나 2012. 1. 7. 20:05

내가 어렸을 적에는 엄마와 누나들이 꼭 한 날을 잡아 얼굴 ‘팩’을 하곤 하셨는데 나는 언제나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렸었다. 어느 날이든 엄마나 누나들이 머리 위로 수건이 돌리고 앉아 있는 날이면 얼른 그 가운데로 쏙 끼어들어가 자빠지면서 맨 먼저 내 얼굴에 팩을 하는 액체를 발라달라고 조르기 일쑤였다.

투명한 액체가 얼굴에 닿을 때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도 좋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얼굴피부가 땅겨오는 느낌도 신기했고, 웃으면 안 된다면서도 쉴 새 없이 옆구리를 찔러대는 엄마나 누나들의 장난도 꽤나 즐거웠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얼굴 팩의 재미는 마치 티비 드라마에서 악당이 가면을 벗는 것처럼 천천히 하얀 꺼풀을 벗겨내는 것이 압권이었다.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얼굴 팩을 즐겨온 탓인지 나는 요즘도 가끔씩 팩을 한다. 요즘에는 황토 팩이니, 한방 팩이니, 마스크 팩이니, 뭐니, 뭐니 해서 종류도 많지만 나는 맨 마지막의 그 가면을 벗는 듯한 재미를 도저히 포기할 수 없어서 줄기차게 ‘PEEL-OFF’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얼굴 팩을 하면 피지皮脂와 피부 각질 등이 제거되고 보습, 미백 효과를 주는 등 피부의 노화를 방지하는 여러 가지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이런 소리를 자주 듣는 편이다.

“신부님, 피부‘는’ 좋으시네요. 호호호.”

그런데 신부新婦에게라면 모를까, 신부神父에게 피부 좋다는 말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나는 사실 피부가 좋다는 말보다는 마음이 ‘좋다’, ‘선하다’, ‘순수하다’는 말을 들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다. 우리들 마음은 존재의 저 깊고 깊은 곳 어딘가에 담겨져 있지만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저런 영적 불순물이 축적되어서 원래의 보들보들하고 착하고 순수한 성질이 감춰지기가 십상이다. 마치 우리들의 피부에 ‘때’가 끼면 그렇듯이 말이다.

이렇게 내 마음에 축적되는 영적 불순물들이 교회에서 가르치기를 그 스스로 죄이면서 다른 여타 죄들을 낳게 하는 근원이라고 하는 칠죄종七罪宗, 즉 교만驕慢, 인색吝嗇, 음욕淫慾, 분노忿怒, 탐욕貪慾, 질투嫉妬, 그리고 나태懶怠라는 것들이다. 나는 이러한 죄의 근원들 중의 근원은 결국하나, ‘욕심慾心’이라고 생각한다.

교만은 자기 자신을 남에게 과하게 드러내 보이고 싶어 하는 욕심이고,
인색은 정당한 이유나 목적 없는 세상 재물에 대한 욕심이요,
음욕은 사람과 사랑에 대한 빗나간 욕심이다.
분노는 쓸데없이 다른 사람을 이기려고 하는 욕심이고,
탐욕은 먹고 사는데 필요한 이상으로 쌓으려는 욕심이고,
질투는 부당한 방법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는 욕심이요,
나태는 이 세상을 나 혼자 편하게만 살려는 욕심이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니 환절기라고 벌써 하얗게 뭔가가 일어나고 윤기가 없이 건조하고 까칠하다. 팩 할 때가 됐나보다.

하느님께서 주신 양심의 거울에 나를 비춰보니 교만, 인색, 음욕, 분노, 탐욕, 질투, 그리고 나태, 이런 저런 욕심으로 가득하다. 욕심 때문에 양심이 가려져 잘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다. 이제 막 시작된 사순기간 동안 날마다 복음서를 봉독하면서 진리의 말씀으로 내 마음의 팩을 좀 해야겠다. 한 꺼플 벗겨내고 나면 다시 촉촉하고 부드럽고 상쾌해 지겠지......

“사람이 자기 욕심에 끌려서 유혹을 당하고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가져옵니다.”(야고1,14-15)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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