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로마 유학을 시작했던 한 친구가 한 학기도 채 끝내지 못한 채 귀국하게 되었다. 더 이상 학업을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어버린 셈이다.
그의 착하고 겸손한 성격이 맘에 들어서 오래 두고 천천히 사귀고 싶은 친구였기 때문에 안타까움이 더 컸다. 그냥 보낼 수가 없어서 ‘빠르미지아노(파마산) 치즈’를 한 덩어리 사서 억수처럼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그가 머무르던 기숙사를 찾아갔다.
짐을 싸느라 몹시 분주했던 흔적이 역력한 그의 방에서 짧은 시간 동안 이별을 해야만 했는데 그의 표정이나 말씨가 여느 때처럼 차분하고 담담해서 함께 있던 나를 오히려 편안하게 해 줄 정도였다.
“좋은 친구를 만났다 싶었는데 이렇게 빨리 헤어지게 되다니 너무 섭섭하네.”
“로마와 저와의 인연이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서울에서 다시 뵙지요. 하하하”
나는 그 말을 할 때의 그의 얼굴 표정과 눈빛을 보고 그의 정신이 대단히 건강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 같으면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서 중간에 포기를 해야만 하는 유학생활을 저렇듯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마 실패했다는 자괴감에 빠져 몹시 괴로워하지 않았을까? 물론 그 역시 속마음 깊은 곳에는 아픔이 있었겠지만 그는 편안하게 내게 귀국 사실을 알려주었고 떠나기 전에 나를 보고 싶어 했다. 나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일까?
바로 전 날, 누군가와의 몹시 불편한 전화 한 통화 때문에 마음속에 잔뜩 화를 담고 있었던 내게 그는 짧은 이별을 통해 긴 묵상거리를 남기고 떠났다.
왜 항상 시간은 내가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야 하는가?
왜 항상 나는 모든 일에 성공해야만 하는가?
왜 항상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어야만 하는가?
엄청난 착각 속에 빠져 살아가고 있는 내게 얼른 깨어나라고 소리치기라도 하듯 떠나면서 서울 연락처를 적어서 내게 준 그의 서품 상본에는 다음과 같은 성구가 적혀 있었다.
“그 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3,30)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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