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마지막 날이다.
왜 사람들은 매일 같은 날을 한 주, 한 달, 일년, 십년, 세기, 밀레니엄...
등으로 귀찮을 정도로 나눠놨을까? 그리고 이런 구분은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닐까?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시작을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 같은 날을 획을 그어 놓고
'오늘부터는 어제와는 다른 새로운 날'로 여기고 싶어한다. 뒤를 돌이켜보면
항상 오점 투성이인 과거들과 함께 가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영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심리적인 이유말고도 좀 더 그럴싸한 다른 종교적, 문화적 이유가 있지만 말이다...
실제로 세계에는 여러가지 달력이 존재하고 있다.
종교적 이유나 문화적 이유 때문에 그들은 자기 고유의 달력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새 천년이 시작된 2000년 1월 1일은 율리우스력으로는 Anno Domini(그리스도 기원) 1999년 12월 19일,
유대력으로는 Anno Mundi(세계 기원) 5760년 4월(테베테) 23일,
이슬람역으로는 헤지라(이슬람 기원) 1420년 9월(라마단) 24일,
중국력으로는 기묘년 11월 25일,
힌두력으로는 사카기원 1921년 마르가시라 25일이 된다.
이런 이유로 내게 날짜의 구분은 숫자 놀음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며칠 전 미사를 끝내고 로만칼라를 한 복장 그대로 동네 담배가게에 가서 담배 한 갑을 샀다.
그런데 담배를 파는 사람이나 그 가게에서 커피를 마시던 사람들의 시선이 영 곱지가 않았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곳처럼 담배를 피워대는 나라에서도 사제들이 공공연하게
사제 복장을 하고 담배를 피우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피운다면 혼자서 자기 방에서나 피운다. 아닌게 아니라 지금까지 한국신부님들을 제외하고는 담배 피우는 신부님들을 본 적이 없다.
한국에 있을때는 가끔 술 마실때나 한대씩 피우던 담배를 이곳에와서는
거의 3일에 한 갑을 태우고 있다. 초반에 자취하면서 함께 살던 애들이 뻑뻑 피워대는 담배 연기에 스트레스를 받을때 시작한 것이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담배가게에서의 그 곱지 않던 시선을 뒤돌이키면서 '다시 담배를 끊어볼까'하는 생각을 몇번했지만 나한테도 뭔가 구실이 필요했다.^^
"그래, 새해를 맞아 뭔가 한 가지 결심은 해야겠고 담배를 한 번 끊어보자...."
라는 식의 결심도 새해를 맞는다는 기분으로 막 하게 되는게 사람이다.^^
그래서 내일 밝아 올 새해 첫날이 단순히 숫자 놀음에 지나지 않더라도
실제적으로 새로운 시작의 희망을 안겨 주고 있다.
희망이 있으면 되지 않겠는가?...... 희망이 있다는 것에서 각자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며 살아가면 그걸로 족하지 않겠는가?
새해는 첫날은 매일 같은 날 중 한날이지만 또한 분명히 다른 날이다.
새해에는 거추장스런 옷을 한 겹 더 벗어내고 더 적나라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서 살아가고 싶다.
아직도 자꾸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포장지에 싸서 주님 앞에, 혹은 타인 앞에 나서고자 하는 욕심이 내게는 너무나 많다.
새해에는 그냥 투박한 종이상자인 모습 그대로의 나를 주님께, 타인들에게 선물로 나누어 주고 싶다.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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