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최 강 신부님

사람 욕심

김레지나 2011. 12. 31. 23:10

어느 새 올 한 해도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성탄을 지낸 뒤 며칠 동안 지나간 시간들을 찬찬히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 해를 떠나보내는 마음이 서운함으로 가득한데 모두가 집으로 떠나가고 고요만이 흐르는 집 분위기는 쓸쓸함까지 안겨주고 있다.

한국에 머물면서 사람 만나는 일로 정신없이 바쁘게 지냈던 지난 여름이 가장 오래토록 마음 속에 머물렀다. 그야말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아침, 저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는데도 결국은 여러 사람들로부터 서운하다는 말을 듣고 다시 로마로 돌아올 때 결국 내 ‘사람욕심’이 너무 과한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은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 무엇인가를 나누는 관계에서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하지만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나도, 그리고 너도 함께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해야만 하는 내 몫을 성실히 수행해야만 한다. 내 게으름 탓으로 내 몫을 남에게 떠넘기는 민폐를 끼치거나, 혹은 내 분수를 넘어 남의 몫까지 넘나드는 설레발을 치다보면 나와 상대의 행복은 깨질 수밖에 없다. 또 그렇게 되면 필시 어떤 문제가 발생하게 마련이다.

선교사로서 어차피 사람들을 만나야만 하는 사람이지만 내 ‘사람욕심’을 채우기 위해 내 몫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또 내 분수를 넘는 줄도 모르고 이리 저리 바쁘게 돌아다니는 꼴이 스스로에게 향하는 ‘이게 뭐냐?’라는 핀잔을 피해갈 수가 없을 지경에 이르른 것 같다. 내 ‘사람욕심’이 아니라 그 분의 ‘부르심’을 따라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내 분수에 맞게 만나는 것이 또한 앞으로의 내 사제 삶에 있어 큰 희생이 되겠다.

간디의 무덤 앞에는 그가 생전에 말했다는 ‘나라를 망치는 일곱 가지 사회악’이 적혀 있다고 하는데 그 중 하나가 ‘희생 없는 종교’라고 한다. 그렇다면 종교를 망치는 것 중 하나는 ‘희생 없는 성직자’라고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사랑과 자비의 실천을 위한 희생이 종교의 ‘존재의 이유’를 떠받히는 중요한 요소라고 할 때 신도들에게 있어서 모든 생활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성직자들의 희생적 삶은 바로 성직자 자신들의 존재의 이유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정결을 지키며 가난하게 살면서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뜻을 품고 출가한 성직자의 생활이 혼인을 통하여 가정을 이룬 사람들보다 더 화려하고 요란하다면 그는 정녕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해야하는 사람인지를 스스로에게 깊이 물어야 할 것이다.

너무나 복잡하고 요란했던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며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해야하는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나간 날들, 내가 바친 하느님과 이웃들을 향해 바친 희생이 과연 무엇이었냐고 물어본다. 하느님과 하느님께서 내게 보내주신 모든 인연들에게 부끄럽고 죄스럽다.

새해에는 단순한 삶과 기쁜 희생 그리고 마음의 평화!

“밭이랑에 물 대시고 흙덩이를 주무르시고 비를 쏟아 땅을 흠뻑 적신 다음 움트는 새싹에 복을 내리십니다. 이렇듯이 복을 내려 한 해를 장식하시니 당신 수레 지나는 데마다 기름이 철철 흐릅니다.”(시편65,10-11)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