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음설비가 잘 되어 있지 않는 이 곳 로마 건물들의 특성 상, 이웃하고 있는 방을 쓰는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의자를 끄는 소리며 문을 여닫는 소리, 알람시계 소리, 전화 신호음 등 여러 가지 소음에 민감한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특히 이른 아침에는 다른 사람들의 잠을 깰 수도 있으므로 다들 주의를 하는 편이라서 좀처럼 아무 소리를 들을 수 없는데 요즘 며칠 동안 아침 6시가 되면 어김없이 모차르트의 레퀴엠requiem이 속삭이듯 조용하게 들려온다. 아마 같은 층을 쓰는 어느 신부님이 알람시계 대용으로 저절로 레퀴엠이 흘러나오도록 자신의 오디오를 조정해 놓은 모양이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이른 아침 시간의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전혀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죽은 영혼들을 위한 진혼곡鎭魂曲을 들으면서 하루의 삶을 다시 시작하는 아이러니 속에서 나 또한 머지않아 깊은 잠에 빠진 채 모차르트와 같은 천재들을 통해 위로를 받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특별한 의지 없이도 거룩한 마음의 십자성호十字聖號가 저절로 그어진다.
한 때는 꼭 이 음악을 들으면서 잠자리에 들었던 때가 있었다. 또 내 주위의 가까운 몇몇 친구들에게 내가 죽거든 땅에 묻히는 순간까지 이 음악을 들려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었고,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것이 내 유언의 유일한 내용이기를 바라고 있다. 앞으로 살면서 기껏해야 음악을 몇 곡 더 추가하는 정도면 모를까 이것저것 복잡한 유언을 남겨야만 하게끔 살고 싶지는 않은데 어쩔지 모르겠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 남기신 유언이라고 하는 것이 흙으로 빨리 돌아갈 수 있도록 관을 쓰지 말고 곧바로 흙에 묻어달라는 것과 죽은 자의 행렬이 산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도록 사람들의 통행이 가장 적은 길을 택해서 장지까지 가라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생전에 당신이 조금 가지고 계셨던 재산에 대해서는 아무런 집착도 없으셨고 당연히 그것들에 대해서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철저히 무관심하셨던 분이셨다.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옆 산에 소풍이라도 가시듯 초연하게 이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신 모습만큼은 철저하게 내 아버지를 닮고 싶다.
잘 죽기 위해서 잘 살고 싶다. 하느님과 다른 사람들 앞에 진실하고(眞), 착하고(善), 아름다운(美) 삶을 살아가고 싶다.
삶이 단순해야 한다. 주변이 시끄럽고 어지러우면 마음을 모으기가 어렵다.
삶이 가벼워야 한다. 가진 것이 많으면 말도, 탈도 많아지고 마음까지 무거워 진다.
삶이 겸손해야 한다. 교만은 하느님의 은총을 거스르는 마음의 독毒이다.
눈을 감고 앉아서 자신의 이 생애 마지막 순간을 미리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하루 하루를 더욱 거룩하고 은혜롭게 지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 당장 차 한 잔 끓여 책상 위에 올려놓고 위령미사곡을 들으면서 유언장을 쓴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오늘 밤부터는 다시 레퀴엠을 들으면서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매일 그렇게 하다보면 이 생의 마지막 날 듣게 되는 레퀴엠도 너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들려오겠지. 나는 언제나처럼 다시 눈을 감고서 깊은 잠에 빠져 들고......
“사람을 먼지로 돌아가게 하시며 "사람아, 돌아가라" 하시오니 당신 앞에서는 천 년도 하루와 같아 지나간 어제 같고 깨어 있는 밤과 같사오니 당신께서 휩쓸어 가시면 인생은 한바탕 꿈이요, 아침에 돋아나는 풀잎이옵니다.”(시편90,3-5)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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