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을 지내고 28일까지 사흘 간 한 해를 마무리하는 피정을 가졌다. 한국에 있었다면 아마 이런저런 연말 모임에다 여러 행사들이 겹쳐 연말에 이토록 조용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새벽에 집 근처에 있는 양로원에 미사를 다녀오는 것을 제외하고는 일체 두문불출하고 책상에 앉아 있었다. 유서를 쓰기 위함이었다. 한국외방선교회 회원 모두는 2년에 한 번씩 유언장을 갱신, 본부에 보관하고 있다가 불의의 사고로 인하여 하느님 품으로 돌아갔을시 총장신부님께서 그 유언장의 내용대로 처리토록 해야 한다.
사실은 이미 지난 여름에 작성을 마쳤어야 했었던 일인데 내게는 유서를 작성하는 것이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라서 차일피일 미룰 때까지 미루다가 사무처장님의 독촉장을 받고서야 겨우 다시 꺼내 놓았다.
쓸 말이 많아서 힘든 것이 아니다. 나는 유서를 쓴다고 하얀 종이를 놓고 앉아 있으면 딱 할 말이 없어진다. 마음 같아서는 ‘잘 놀다 갑니다’라는 짧은 글 하나 남기고 가면 그만이겠는데 그것은 이래저래 회원으로서 해야 하는 마지막 의무를 소홀히 하는 셈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리 하지도 못하고......
며칠을 백지 상태로 놓고 있다가 겨우 작성을 마치고 우체통 앞에 섰는데 바로 그 순간 처음 쓸 때부터 고개를 연신 저었던 유서의 한 부분이 마음에 걸려 다시 우두커니 한참을 서 있었다.
오늘은 그냥 이대로 발송하고 2년 뒤 다음 유서를 쓸 때 정정하면 되지 않느냐는 유혹이 솟구쳤지만 2년 뒤까지 틀림없이 살아있을 수 있다는 보장이 어디 있단 말인가. 누가 보장을 한 단 말인가.
다시 방에 돌아와 다른 백지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앉아있다. 아직 내가 살아있으니 이렇게 내 죽은 다음에 일까지도 이러쿵저러쿵 다시 쓸 수 있지만 막상 내가 죽은 다음이면 살아생전 내가 했던 일 눈곱만큼이라도 어찌할 수 있을까. 아직 고칠 수 있다는 것, 즉 다시 살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사는 것이 죽는 것 보다는 쉬운 일이구나!
그릇된 생각이 있으면 바로 ‘지금’ 바꾸고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면 바로 ‘여기’가 돌아서야 할 곳이다. 죽고 나서는 생각을 바꿀 수도 길을 돌아설 수도 없다. 말로는 쉬운 이 단순한 것을 ‘지금 그리고 여기’서 몸으로는 행하지 않고 우리는 항상 나에게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내일만을 말하며 막상 삶의 본질적인 부분은 놓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토록 바라고 기다리는 ‘하느님나라’는 또 무엇이겠는가?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 육에서 나온 것은 육이며 영에서 나온 것은 영이다. 새로 나야 된다는 내 말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요한3,5-7)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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