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드레 초이, 내 동생을 위해서 기도를 부탁해도 되겠나?”
“왜? 무슨 일 있어?”
“오늘 밤 미얀마를 떠날 거야. 일단 산을 타고 타일랜드로 밀입국했다가 거기서 다시 말레이시아로 가려는 계획을 세웠나봐.”
미얀마 출신인 쿠이싱링 신부가 불쑥 꺼낸 말이었다. 이미 결혼을 해서 아이를 둘 두고 있는 그의 둘째 동생이 일자리를 찾아 위험을 무릎 쓰고 그들의 조국 미얀마를 불법탈출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의 첫째 동생도 이미 몇 해 전에 같은 방법으로 미얀마를 떠나 이리 저리 헤매다가 지금은 노르웨이에서 일하면서 얼마간의 돈을 본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송금하고 있다고 한다.
“가족들을 두고 그토록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탈출을 해야 할 정도로 자네 조국의 상황이 좋지 않은가? 그래, 자네 생각은 어떤가?”
“생각해 보게. 수 십 년 동안의 군부 독재 정권, 그것도 미국과 사이도 좋지 않은 썩어빠진 독재정권 하에서 무슨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어디를 가서 살아도 여기보다는 낫겠지’라는 희망을 가지고 떠난다는데 난들 뭐 할 말이 있나. 부모님만 따로 떨어져 사셔야하니까 그게 좀 맘에 걸리긴 하지만......”
“그래, 최종 목적지는 어디래?”
“자네 나라, 한국으로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쉽지는 않은가봐.”
“뭐? 한국?”
나도 모르게 깜짝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한국에 있을 때 만났던 동남아 출신 노동자들의 얼굴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쿠이싱링 신부의 동생이 그의 ‘희망’대로 한국에 가게 된다면 그토록 먼 길을 돌아서 도착한 한국이라는 땅에서 그는 어떤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백인에게가 아니라, 가난한 동남아시아 출신 노동자에게 한국사회는 어떤 희망을 줄 수 있을까?
한 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 중 하나는 ‘그 사회가 얼마나 인종, 피부색, 성姓, 종교, 혹은 재산 등과 같은 외부 조건들로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평등한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가’라는 아주 기본적인 ‘인권’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역으로 생각해 보면 만약 이러한 외부 조건에 의해서 사람들을 차별대우하는 사회는 덜 성숙된, 아직 후진성을 벗지 못한 사회라고 여길 수 있다.
이런 외적 조건들로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평등의 문제는 역시 한 개인의 인격적 성숙도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 성숙한 인격자는 결코 사람들을 외부 조건에 따라 차별하지 않는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점심이나 저녁을 차려 놓고 사람들을 초대할 때에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잘사는 이웃사람들을 부르지 말라. 너는 잔치를 베풀 때에 오히려 가난한 사람, 불구자, 절름발이, 소경 같은 사람들을 불러라. 그러면 너는 행복하다.”(루가14,12-14)
우리들의 신앙은 결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언제나 ‘주님의 말씀을 얼마나 생생하게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살아내는가’라는 삶의 문제이다. 잔치를 베풀 때에 부자보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을 초대하라는 말씀, 그러면 행복할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은 가난한 사람들은 물론 행복한 삶을 바라는 우리들 모두의 희망이다. 그러나 그 희망은 여전히 멀리 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듯(요한1,14)’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생생하게 살아나서 우리들 스스로가 가난한 이들의 희망이 될 때, 그때서야 가난한 자들의 희망은 현실이 되고 우리가 고대하는 하느님 나라는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가난 때문에 온 가족이 세상 속에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만 하는 쿠이싱링 신부의 가족과 세상의 모든 이주 노동자들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 성체 앞에 앉아 있을 때 내 귓전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과연 교회는 가난한 자들의 희망인가?”
“과연 성직자들은 가난한 자들의 희망인가?”
“과연 그리스도인, 당신들은 가난한 자들의 희망인가?”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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