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최 강 신부님

먼지처럼 가볍게

김레지나 2012. 1. 30. 20:17

며칠 동안 비가 내리더니 밤하늘에 별이 총총하다. 제법 늦은 시간 창문을 열어 놓고 한참동안 밤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더니 기억조차 가물거릴 정도로 오래전에는 내가 별자리, 하늘, 우주 공간, 뭐 이런 것에 대해 큰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었다는 것이 문득 떠올랐다. 하긴 그 흔적이 아직까지 남은 탓인지 아직까지도 나는 내 손으로 직접 조종간을 잡고 하늘을 날아보겠다는 꿈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나는 비행기를 탈 때 마다 꼭 창가 쪽 자리에 앉아서 이착륙할 때 점점 멀어져가는 성냥갑만한 집들이며, 아이들 장난감 크기도 안 될 만큼 작아 보이는 자동차들, 그리고 개미만한 사람들의 부산한 움직임을 내려다보는 것을 즐긴다. 높은 데에서 까마득한 저 아래 세상을 내려다보면서 이렇고 저렇고, 지지고 볶고 사는 복잡한 세상사를 생각하면 ‘피식’ 싱거운 웃음이 터져 나온다. 오래 간만에 머리를 좀 써보도록 하자. 저 끝도 없는 듯 새까만 밤하늘은 도대체 얼마나 클까?

현재의 빅뱅우주론(대폭발론), 혹은 팽창우주론에 의하면 현재의 우주는 약 150억 년 전의 대폭발 이후로 끊임없이 팽창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150억 년 전’이라는 시간은 곧 우주의 공간적 크기가 된다. 이 ‘150억 년 전’이라는 시간과 공간 안에는 평균 200백만 광년의 거리를 두고 대략 천억 개 가량의 은하가 존재하고 있고, 한 개의 은하에는 또 대략 천억 개의 별이 있다고 한다. 이를 토대로 단순한 산술적 계산을 해보면 우주에 있는 별의 개수는 천억에 천억을 곱한 숫자가 된다. 이 숫자는 철저히 우리 사고의 한계 밖이다. 우리의 태양계가 속해 있는 은하수milky way의 길이만도 일초에 삼십만 킬로미터를 가는 빛이 십만 년 동안 가야하는 거리라고 하니 우주의 크기라고 하는 '빛이 150억 년을 가야하는 거리' 역시 철저히 우리 사고의 한계 밖이다. 이렇듯 무한한 시간과 공간 안에서 너무나도 보잘 것 없고 가벼운 내 존재는 오늘도 한 올의 먼지처럼 세상 어느 곳을 둥둥 떠다니고 있다.

범위를 좁혀서 생각해 보면 좀 나아질까? 이 셀 수 없이 많은 별들 중에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별은 이론상으로는 6등성으로 분류되는 밝기를 가진 별들인데 그 개수는 대략 6천개 정도이다. 하지만 이 숫자도 언젠가 풀밭에 누워 바라본 적이 있는 파푸아 뉴기니와 같은 오지의 밤하늘과 같이 대기의 명암상태와 오염도가 별을 보기에 최적의 상태일 경우에, 그야말로 밤하늘에 별이 쏟아질 듯 총총 떠 있을 때에 볼 수 있는 것이라서 실제로 우리가 볼 수 있는 별의 개수는 대략 2천 5백 개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볼 수 있는 별’ 말고 실제로 우리가 보고 사는 밤하늘의 별은 몇 개나 될까?

신뢰성에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기는 하지만 방사성 동위 원소 연대측정법의 연구결과를 따르자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대략 45.5억 년 전에 탄생되었다고 한다. 이 영원처럼 긴 시간 속에서 인류가 출현한 시기는 '불과' 300만 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2006년 세계보건기구WHO의 보고서를 따르면 한국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76.9세 이니까, 이를 우주의 나이 150억년, 지구의 나이 45.5억년, 그리고 인류의 역사 300만년과 비교해 보자면 그야말로 찰라지간에 불과하다. 이렇게 우리의 사고의 한계를 뛰어넘는 무한에 가까운 우주적 차원들을 접할 때면 두려움과 함께 절로 겸손한 마음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먼지보다도 가볍고 찰라지간 보다도 짧은 인생을 살다가면서 뭐 이렇게 복잡하고 무겁게들 살아가는지를 생각하면 화도 치밀어 오르기도하고 또 당황스럽기도 하다.

위와 같은 인류의 천문학적인 발견들 앞에서 각자가 생각하는 바가 여럿이겠으나 무엇보다도 먼저 ‘영원’처럼 긴 시간과 ‘무한’과도 같은 넓은 공간 속에서 홀로 서 있는 ‘나’의 존재와 그 의미를 잘 묻고 그로부터 현명한 답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우선은 전체 우주 안에서의 ‘나’라는 존재의 ‘보잘 것 없음’을 통해서 겸손의 미덕을 베울 수 있으면 좋겠다. 또한 그토록 거대한 우주 안에서의 ‘나’라는 존재의 ‘유일무이성’을 통해서는 이 세상에 던져진 ‘나’라는 존재의 가치에 대해 스스로의 작은 깨달음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우연히 눈이 마주친 별 하나가 내게 말을 건넨다.

“가볍게 살아가라. 이 무한한 하느님의 창조계 안에서 한 점 먼지처럼 가벼운 네 존재의 수레바퀴 위에 무거운 세상의 짐들을 가득 실은 채 삐걱거리면서 살아갈 필요가 없다. 가벼워지면 그 만큼 네 삶의 발걸음이 경쾌해 지고 또 그 경쾌함은 네 욕심이 덜어진 그 자리를 툴툴 털어내고 네가 마땅히 서 있어야 할 자리로 기꺼이 떠날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다.

단순하게 살아가라. 찰라지간 보다도 짧은 한 생을 살면서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천 년 뒤의 일까지 걱정하면서 복잡하게 살아갈 필요없다.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지도 말고 다가올 시간을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네게 허락된 지금이라는 바로 이 순간이 네가 보낼 수 있는 마지막 순간임을 염두에 두고 네가 해야 할 일을 단순하게, 그러나 열정적으로 행하는 삶을 살아가라.”

그 별을 바라보면서 자리에 누웠다. 커튼을 치지 않고 오래 동안 그 별을 바라보고 누워있었다. 그리고는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그렇게 죽었다. 나는 그렇게 죽을 것이다.

“주여, 당신은 대대손손 우리의 피난처,
산들이 생기기 전, 땅과 세상이 태어나기 전, 한 옛날부터 영원히 당신은 하느님,
사람을 먼지로 돌아가게 하시며 "사람아, 돌아가라" 하시오니
당신 앞에서는 천 년도 하루와 같아 지나간 어제 같고 깨어 있는 밤과 같사오니
당신께서 휩쓸어 가시면 인생은 한바탕 꿈이요, 아침에 돋아나는 풀잎이옵니다.
아침에는 싱싱하게 피었다가도 저녁이면 시들어 마르는 풀잎이옵니다."(시편90,1-6)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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