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26일
항암 주사 6차 맞으러~~
10여일 넘게 이뇨제를 먹었는데 별 차도가 없더니,
신기하게도 밤 1시부터 또 화장실 다니기 시작.. 2키로쯤 빠짐. 발은 여전히 퉁퉁 부어서 헐렁한 슬리퍼도 들어가지 않음.
* 6시 30분 덱사메타손 복용
* 7시 5분에 서둘러 집을 출발.
* 7시 40분 채혈실 도착
- 슬리퍼 안에 발을 억지로 집어 넣고 있었기 때문에 다행히 발의 부기가 발목 위로 올라간 듯, 조금은 납작해짐.^^
바늘로 찌른 후 혈관이 숨어버려서 이리 저리 쫓아 다시 찌르느라고 아팠음
간호사님이 잘 참았다고 칭찬해주심..ㅋㅋ 그저 연신 감사하다고만 말씀드림.
* 남편과 아침 식사 - 유부 초밥과 샐러드, 챙겨 간 간식
* 성체 조배 - 어떤 자매님이 너무나 슬픈 얼굴로 앉아 계심. 남편분이 말기 진단을 받았다고 하심.
고마운 분들, 기도 약속한 분들 이름을 부르고 "00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하고 기도함.
- 생각 나는 분들이 넘넘 많아서 시간이 꽤 걸렸음
* 9시 30분 혈액종양내과 진료
보고내용- 숨 쉬기가 곤란할 정도로 많이 부었고, 어깨 아래로 팔까지 퉁퉁 부어서 옷 갈아입기도 몹시 힘듦.
이뇨제를 꾸준히 먹는 중에도 하루 밤 사이에 2키로가 불기도 함.
일주일 지난 후부터 5일간 열이 37.5도 위아래로 오르락 내리락 했었음
근육통 관절통 말초신경염은 예전과 같았음. 단, 예전가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좀 덜한 느낌이 있었음
피멍든 손톱 보여드림 (의사선생님 반응 없음ㅋ.. 머... 별 증상 아니니까...)
( 설사는 심하지는 않게, 무른 변 정도로 일주일쯤,(이것도 까먹고 말씀 안 드림.. 머.. 별 증상 아니니까...)
(코피가 2주간 났었는데.. 항암 1차 때부터.. 꼭 그것을 잊어먹고 말씀을 안 드림. 머.. 별 증상 아니니까..)
의사샘 말씀 - 이뇨제 먹는 중이라서 그 정도만 부은 거라고..(으악~ㅎㅎ) 다음 주사 때에도 이렇게 부어서 올 거라고..
항암 주사 끝나고 두어달은 지나야 빠지기 시작할 거라고..
누워 있을 때도 숨 쉬기가 곤란했었느냐고 물으셨다.
다른 의사샘에게진료 받기 전, 5차 맞고 일주일쯤 지나서 며칠 동안은 그랬었고,
허셉틴 부작용으로 울혈성 심부전인가 걱정되서 진료 신청했던거라고 말씀드렸음.
다리를 쑤욱 눌러보심 - 들어가서 안 나오니 많이 부었다고 하심.
청진기로 가슴과 목 진찰. - 원래는 다음 항암 때 심장 초음파 하게 할 생각이셨던 것 같은데,
"환자가 정 불편하시다면 오늘 초음파 해보세요." 많이 기다릴 것 같아서 다음에 하겠다고 했더니 "오늘 하세요." ~~ 힝~
* 10시 20분 - 심장 초음파 검사 (20분)
* 11시 10분 - 다시 혈액 종양 내과 진료
항암 전 기록과 별 차이 없음. 주사 맞고 가라고 하심
숨 쉬기가 곤란했던 것은 아마 부어서 그랬을 거라고 하심
* 11시 50분 - 늦게 처방전 나옴, 간호사님이 이뇨제 먹을 때 영양분도 빠져나가므로.. 웬만하면 하루에 한 번으로 줄여도 된다고 함.
* 재빨리 수납(300만원 넘지 않음..ㅋㅋ), 외래 주사실 접수 - 설 연휴로 엄청 많이 기다려야 한다고 함. 2시간 반쯤
* 남편은 외부 약국으로 이주일 분 이뇨제와 덱사메타손 이틀 분 타러 감.
* 암센터 지하과 본관 지하 미용실에 들러 인모 가발을 몇 개 써봄. 70만원쯤...- 넘 비싸서 움직일만 하면 동대문 시장에 가서 사서 쓰기로 함
* 점심 식사 - 짜장면과 고등어 구이 정식
* 2시 반 ~ 6시 반 - 항암 주사 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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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 주사실에서
이번에 들어간 주사실은 침대도 좁고 보호자 의자도 등받이 없는 의자이고, 환자끼리 손을 잡고 누워있을 수 있을 정도로 침대간격이 좁음.
그 덕에 환자와 보호자들 간에 이야기를 나누기 쉬웠음.
옆 침대에 잘 차려입은 품위 있는 부부가 들어 옴. 60쯤 되어 보임
갑님(환자) : "연휴가 끼면 병원에서 알아서 수급 조절을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환자들을 세 시간씩이나 기다리게 해."
간호사 : 저희도 어쩔 수 없어요. 호호호.
하루에 180명 정도가 외래치료실에서 항암주사를 맞으시는데, 이틀 연휴니까 360명이 이번 주에 다 맞으셔야 하니까요.
갑아내 : 어휴, 그래요. 이것만도 감사하지. 감사합니다. (겉치레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말이라는 것이 느껴짐)
갑아내 : 그럼요. 감사하지요.
그 옆 침대에 내 나이 또래쯤 되는 부부가 들어 옴.
을님(환자) : 어휴, 정말 많이 기다렸네.
을아내: 이번에는 빨리 끝나겠다 했더니, 울 남편은 주사 맞으면서 부작용이 나서 두 시간 맞을 걸 여섯 시간에 걸쳐 맞아요.
갑님 부부와 을님 부부의 대화를 들어보니,
갑님은 암 발병 후 최소한 7년쯤 되었음 (환자 등록번호가 나보다 더 빠른 것으로 보아)
대장암과 간 전이로 수술 - 항암 - 폐 한쪽 끝 전이, 절제 가능함, 다른 한 쪽 끝 전이 - 수술, 항암, - 직장, 복막, 담낭 등으로 전이 -
지금 세 번째 항암주사 맞는 중 (6회 맞으면 된다고 함)
을님은 직장암 수술 - 후유증이 심하다고 함. 항암 8회 맞는다고 함.
두 부부는 무엇을 먹어여 하는 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
신앙 이야기로 옮아감. 두 부부다 열심한 개신교 신자라고 함.
갑부부는 범상치 않은 평화로운 분위기를 풍김, 을부부 또한 보통 환우들과는 달리 평온함.
갑아내 : 죽고 사는 것은 이미 우리 손을 떠났잖아요. 우리가 쥐고 싶다고 쥘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놓고 싶다고 놓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갑님 : 이 세상 누군가는 고통을 당해야 해요. 내가 고통을 당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내 대신에 고통을 당해야 할 거고...
을아내 : 저는 그렇게 다 받아들이고 있지는 못해요. 예전에는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힘든 일 다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갑님 : 이 세상에서부터 천국을 살 수 있어야,, 지금 이 상태 그대로 천국에 가는 거예요.
천국을 죽어서나 가는 곳으로 가르치는 교회가 있다면 잘못된 거예요.
고통에 관한 갑님의 견해는 천주교식 통공교리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기에는 부족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병 목사님에 관한 이야기를 몇 년 전에 지인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병 목사님 교회에는 작은 소그룹 신도 공동체가 있는데, 병 목사님 왈, "'각 공동체에 암환자는 웬만하면 넣지 말라. 그의 쾌유를 위해서 기도하다가 그 환자가 죽기라도 하면 다른 구성원들의 신앙이 흔들린다."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 목사님은 신앙을 현세에서만 끝나는 것으로, 기복적인 것으로만 이해하고 가르친 것이다. 그 이상을 설명할 수 없는 종교라니....
제대로 된 부활신앙을 갖고 계신 분이었을까?
갑님은 달랐다. 고통의 학교에 입학한 지 7년이 넘으셨을 테니, 그동안 기적적인 치유도 무던히도 구했을 것이고, 많은 기도를 받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세 번 수술을 하고 암은 계속 전이되면서.. 신앙 안에서 그 과정의 의미를 묻고 받아들이고..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고 지내셨던 것 같다. 갑님 부부의 온화하고 평화로운 태도에서 고통의 학교에서 배운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
갑님 부부와 을님 부부는 한참을 이야기 나누었다.
갑님 부부는 먼저 주사를 다 맞고, 일어나기 전에야, 갑아내님이 갑님은 은퇴하신 목사님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더니 을님 부부에게 안수를 해주라고 갑님에게 권하였다. 어쩐지 말씀하시는 게 예사롭지 않더라니.....
갑 목사님은 을님에게 큰 소리로 안수기도를 해주셨다. 구구절절 기가 막힌 말씀이었는데, 하도 빨리 말씀하시는 바람에 기억에 남는 말씀이 없다. 보통의 안수기도에서처럼 "나을 것을 믿쓥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날지어다.."뭐, 그런 말씀은 안 하셨다. 대신 받아들이고 가족들이 고통을 통해서 서로 사랑할 수 있고... 뭐,, 그런 말씀을 많이 하셨던 것 같다.
나는 생각했다.
'그래, 사람들이 이 장면을 보면 뭐라고 할까? 많이들 웃겠지. 재밌는 장면이라고 할 거야. 기적을 얻는 데 실패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치유를 위해서 기도하다니.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 '네가 진정 하느님의 아들이면 자신이나 구하라지...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지'고 하고 비웃던 군중들처럼 굴 거야.'
나는 안다.
갑 목사님 부부가 누리는 평화야말로 진정한 기적임을....
예수님께서 상처받은 치유자이시듯이, 우리도 우리의 고통과 상처를 통해 다른 이들을 치유할 수 있고 축복할 수 있음을...
그런 깨달음이 고통의 학교에 입학해서 6년간 내가 배워야 했던 '사랑하는 한 가지 방법' 중 하나였다.
우리가 사랑을 담아서 행하는 모든 행위는 그것이 행복이든 고통이든, 작은 미소이든 불편한 희생이든, 넘어짐이든 일어섬이든, 다른 사람들을 위한 축복이고 기도이고 봉사가 된다는 것, 내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깨달음이다.
내가 겪는 모든 일에 사랑을 담을 수 있다면...어쩌면 힘든 고통일수록 더 큰 사랑과 의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갑님 부부가 치료실을 나가고 그 침대로 정님이 들어오셨다.
정님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신다는 60세 되신 여자분이시다.
그분은 많은 말씀을 하셨다.
유방암 환우이셨는데, 덩어리가 커서 수술 전 선항암을 받는 중이었다.
정님 : "아이고. 내가 어쩌다 이렇게 몹쓸 병에 걸려서.. 지금까지 감기 한 번 제대로 앓은 적이 없어서 더 놀라고 억울해요.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살면서 남들한테 다 좋다는 이야기만 듣고 살았는데...왜 암에 걸렸을까....
우리 형제들은 나만 보면 맨날 울고..... 집에도 못 가고 아이들 집에서 지내요....
도저히 창피해서 밖에 다닐 수가 없어서 가발을 얼른 사서 썼어요.
나와 을님 부부는 '그런 생각은 도움이 안돼요.'하면서 간단히 위로해드렸다.
정님이 내 나이를 묻더니 "50되얐소?"하셨다. "어머나. 제가 그렇게 보여요?" 으악~~ 막강 동안 미모가 엄청 망가졌구나..'
내가 네 시간 주사를 다 맞고 병실을 나서기 전에 면모자에서 보통 모자로 바꾸어쓰고 있으니까
정님이 말씀하셨다. '아이고, 머리가 다 없어도 얼굴이 이쁭께 괜찮네에~"
나는 계속 싱글거리면서 "칫, 아까는 50으로 보인다더니, 안 믿어용..하하하..머리 빠진 것보다 더 충격이어요. 50이라고 하셔서...하하하.. 마음 편히 드시고 잘 이겨내세요.~"
을아내님이 "아이들도 아직 어리겠네요."라고 물었다.
"예. 6년 전에는 아이들이 중학생만 되어도 좋겠다 싶었지요."
사실,, 내게 제일 힘든 일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었던 것 같다. 고통도 아니었다.
아직 어린 아들들이 엄마 없이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 생계유지도 불투명하다는 것,
그런 걱정, 헤어짐에 대한 슬픔.. 그것이 가장 힘든 일이었다.
항암주사실에서 잠을 제대로 못 잤지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는 게 재미있었다.
세 가지 한꺼번에 맞는 주사는 이번으로 끝이다.
암튼 기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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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항암 받을 때는,,, 암센터 생기기 전이라서 침대와 침대 간격이 넓지 않았다.
그래서 항암치료실에서 꽤 많은 이야기를 듣고 나누고 했었다.
중환자실에서 있다가 나온 사람으로부터는.. 남편은 의식 없이 죽어가는데, 병실 밖까지 새 남자 데려온 아내 이야기
죽음을 못 받아들이는 사람들 이야기....별별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세상과의 인연을 놓는 연습을 하는 것, 임종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어쩌면 그렇게 제각각인지......
아마 백인백색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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