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0일 새벽 3시, 매섭게 몰아치는 찬바람 속에 산을 올랐다. 함께 길을 나선 친구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모두 맨발이 되어
날카롭게 깨진 돌들이 뒹구는 돌산을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며 조용히 걸어 올라갔다.
발바닥이 너무 약한 것인지......
내게는 너무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맨발 산행이었다. 게다가 나는 손전등마저 들지 않았으니 사람들이 많이 디뎌서 어슴프레 허연 색깔을 띤 채 끝이
무뎌진 바위만을 찾아서 한 발, 한 발 내딛는 일 뿐이었다. 몇 번인가 날카로운 돌 끝에 발가락을 베인 친구들의 짧은 신음소리를
들으면서......
아침 6시경, 드디어 산 정상에 세워진 십자가를 껴안고 기도를 드릴 수 있었다. 나는 맑은 영혼으로 주님의
응답을 들었다.
신발을 신고 내려오는 길이 그토록 편하게 느껴질 수 없었다. 나를 지독히도 고통스럽게 했던 날카로운 돌들의 감촉을
신발 밑창을 통해 다시 맛보았다.
주님은 신발 밑창이구나!
날카로운 각을 세운 채 사람들을 대하는 이들은 그 날카로움
때문에 타인들에게 많은 고통을 안겨주기도 한다. 무엇을 위한 날카로움인지, 혹 그것이 정의를 향하고 있을지라도 고통은 여전히 남는다. 그래서
정의는 항상 사랑 속에 있어야 한다. 사랑이 없는 정의는 언제나 자기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독재자의 자기만족과
같다.
이러 저리 채이고 닳아서 무뎌진 채 속이 허옇게 들여다보이는 바위처럼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한 마음으로 일하고 싶다. 힘겨운
삶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맨발을 감싸는 신발 밑창처럼 모든 힘든 영혼들, 특별히 어린 아이들을 따뜻하고 편안하게 보살피는 일을 하고
싶다.
주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일.
주님께서 나를 이끄시는 힘. 아멘! 아멘!
“자, 도공을 보아라, 그는
부드러운 흙을 열심히 주물러서 우리가 쓸 수 있게 갖가지 그릇을
빚어낸다.”(지혜15,7)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http://cafe.daum.net/frchoi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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