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한 달 동안 시험을 치르느라 수업을 안 듣다가 2학기가 시작되어 다시 강의실에
앉아 있자니 영 적응이 안 되고 있다. 특히 월요일과 화요일 오후 6, 7, 8, 9교시, 학생들은 듣던지 말던지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그저
혼자서 라틴말 반, 이탈리아말 반씩 섞어 중얼거리시는 할아버지 신부님들의 형법과 혼인법 시간이 되면 얼마나 시간이 안 가는지 강의실 바닥을
떼굴떼굴 구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기까지 한다.
그럴 때 나는 가끔씩 요리를 하는 상상을 한다. 매운 고추기름을 속이 깊은 중국
요리팬에 흠뻑 두르고 달군 뒤 고추, 파, 생강을 함께 볶는다. 거기다 얇고 길게 썬 돼지 고기와 고춧가루를 넣어 다시 볶은 뒤 양파, 당근,
죽순, 물에 불린 목이버섯, 큼직하게 썬 배추 등의 채소와 예쁘게 칼집을 넣은 오징어, 홍합, 새우 등의 해물을 넣는다. ‘치이~~~
치이~~~칙’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다 볶아지면 적당한 양의 물을 붓고 소금으로 간을 한 뒤 센 불에서 한참 끓인다. 내가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음식 중 하나인 짬뽕국물이다. 나는 요리를 할 때 스트레스가 풀리고 행복해진다.
며칠 전,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더니 큰누님이
반찬을 가지러 집에 들렀다고 하셨다. 시집을 간지 얼마나 오래 됐는지 이제 몇 년 뒤면 당신 딸 시집보내야 할 판인 큰누님은 아직까지도 김장은
물론 일용할 반찬까지도 친정에서 나르고 있는가보다. 아니, 온갖 재밌는 것들로 꽉 찬 시장에 가서 재철 식재료들을 사다가 이런 저런 음식 만드는
재미를 왜 포기할까? 더군다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늘같은 서방님과 토끼 같은 자기 새끼들 입 속으로 자기가 만든 음식이 쏙쏙 들어갈 때의 그
희열을 왜 외면하느냐 말이다.
인생 참 희한하고 복잡하고 알 수 없는 것이 그렇게 음식 하는 것은 죽어라 싫어하시는 큰누님이 그
동안 너무너무 하고 싶었던 ‘심리학’공부를 뒤늦게 다시 시작하기로 하셨단다. 그것도 자기 아들 또래의 학생들과
함께......
로마에 까지 와서 공부하고 있는 사람은 제발 공부 빨리 끝내고 어느 선교지에든 가서 얼큰한 짬뽕국물 만들어서 어린
애기들 배불리 먹이는 상상을 하면서 흐뭇해하고 있는데 정작 짬뽕국물 만들어서 자기 새끼들 배불리 먹는 모습 보면서 흐뭇해해야 할 사람은 솥뚜껑
대신 펜 잡으러 다시 대학을 간단다.
이렇듯 사람들은 서로 다르다. 한 배에서 나온 형제들도 이렇게 다른데 전혀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이야 말해 무엇하랴.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살아가면서 생기는 이런 저런 인간관계의 문제들이란 바로 이런 ‘서로 다름’에 대한
이해 부족인 것 같다.
인조인간人造人間이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사람들끼리 똑같을 수 있겠는가? 또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다
똑같은 사람만 있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지루하고 따분하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상대에게 ‘나와 같아질 것’을 은근히 기대하고 강요한다. 좀 심한
경우에는 나의 이러한 기대와 강요에 대한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그 사람이 좋은, 혹은 나쁜 사람으로 결정된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일을 항상 ‘내가 옳거나 아니면 네가 옳거나’라는 ‘or’의 전쟁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우리는 서로 다를
뿐 나도 옳고 또한 너도 옳다’는 ‘and’의 게임으로 받아들이는 지혜와 여유를 가진다면 우리 삶은 지금보다 훨씬 행복해 질 것임에
틀림없다.
어쩌면 사랑은 서로 닮아가면서 동시에 서로 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인정해가는 두 개의 자비로운 마음이 아닌가 싶다. ‘서로
다름’을 인정해 주도록 하자. 거기에 너그러운 인간관계의 열쇠가 있다.
“큰누님, 열공(열심히 공부)하시오. 나는 열반(열심히 반찬
만들기)하겠소.”
“당신은 관대하시고 지극히 자비로운 분이시니 우리에게 관용을
베푸소서.”(2다니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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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