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부터 시작됐던 것 같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확실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무튼 지난 봄 언젠가부터 목걸이가 그렇게 하고 싶어졌다. 그때까지는 남자들이 장신구를 하고 다니는 것에 오히려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내 자신에게도 약간은 의외였다. 하물며 신부에게 목걸이라니......
하지만 목걸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쉽사리 머리 속에서
떠나가질 않았다. 오히려 로마시내에 즐비한 악세사리 가게를 지날 때마다 유리창 너머로 한참 동안 구경하고 서 있기가 다반사였다. 어떤 날은 낮에
본 목걸이 하나가 저녁 기도시간 내내 떠올라서 허탈한 웃음을 지은 적도 있었다.
결국 지난여름에 단순한 디자인이 맘에 쏙 드는
목걸이 하나를 사서 목에 걸었다. 그리고는 가을을 지나 겨울이 올 때까지 거의 다섯 달 동안 단 한 차례도 내 목에서 풀어놓지 않고 잠을 잘
때도, 샤워를 할 때도, 수업을 들을 때도, 그리고 심지어는 주교님을 만날 때도 걸고 다녔다.
가을이 거의 지나가고 겨울이
시작되려는 즈음, 목걸이를 하고 찍은 내 사진을 본 어떤 사람의 반응이 이제는 한 몸처럼 편안해진 그 목걸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 주었다.
“신부님이 목걸이도 다 하시고, 멋쟁이 신부님이네!”
나는 어쩌면 목걸이 자체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이와 같이 ‘신부가 목걸이를 다 하네’라는 의외성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즐기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멋쟁이 신부’라는, 어쩌면 그 사람은
별 다른 뜻 없이 가볍게 던졌을 말 한마디가 나를 너무 괴롭히고 있었다.
어떤 이들의 삶의 일면에서 보여지는 ‘의외성意外性’은 삶의
또 다른 면에서까지의 예측 불가능성을 동시에 던져주면서 사람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 ‘뜻 밖’이라는 의미의
‘의외성’은 그 자체로 일반적이거나 평범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의외성’은 언제나 그 안에 내포하고 있는 ‘참신斬新함’ 때문에
‘괴퍅乖愎함’과는 또 다른 성질이 된다. 정리하자면 ‘참신한 의외성’이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어필될 수 있는데 이것은 다른 사람이 따라 할 수
없는 그 존재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고유한 것이어야 한다.
한 선교사제의 삶에서 나올 수 있는 ‘참신한 의외성’은 결국
‘선교사제’라는 그 존재와 이름에서 우러나올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는 말이다. 사제라는 존재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아무나 걸고 다닐 수 있는
목걸이 하나 하는 것이 그 사제의 삶에 있어서 ‘의외’로 비추어질 수 유일한 것이라면 참으로 곤란하다. 그것은 참신하기는커녕 오히려 괴퍅한
취향에 가깝게 느껴질 수 있다. 그걸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있었던 사람들은 그 동안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지난 다섯 달 동안이나
한 몸처럼 내게 붙어있으면서 결국 작은 깨달음을 전해 준 정든 목걸이를 벗어놓자니 맘 한편으로는 서운함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내
삶 안에서, 또 내 성향 안에서 봄꿈같은 한 가지 허상을 벗어놓는 후련함 또한 크다.
‘선교사제’라는 내 존재와 이름으로부터
고유하게 우러나올 수 있는 ‘참신한 의외성’이 기다려진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매력이 아닐 것이다.
“그는 메마른 땅에 뿌리를
박고 가까스로 돋아난 햇순이라고나 할까? 늠름한 풍채도, 멋진 모습도 그에게는 없었다. 눈길을 끌 만한 볼품도
없었다.”(이사53,2)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http://cafe.daum.net/frchoi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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