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최 강 신부님

[스크랩] 너무 깊이, 너무 오래 감추지는 마세요

김레지나 2011. 12. 22. 10:23

깜뻬체로 떠나기 위해 짐을 꾸리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뭐든지 미리미리 준비해 두는 편이라서 실제 떠나는 날은 아직 일주일 이상 남아있는 데도 이미 준비모드에 돌입했습니다. 옷장 속에 보관 중이던 여행 가방을 꺼내서 먼지를 털어내다가 그만 마시고 있던 커피를 잔뜩 쏟아버렸습니다. 커피를 닦아내기 위해 가방 속을 한 가운데로 가로지르고 있는 지퍼-이 지퍼는 평상시에는 사용할 일이 없는 내피內皮에 달린 지퍼입니다-를 열어보니 비닐 팩으로 밀봉된 하얀 색 봉투 하나가 철제 버팀목 사이에 끼여 있었습니다.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더니 그 안에는 미화 514달러가 들어있었습니다. 그 돈을 손에 쥐고 혼자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그제야 왜 제가 멕시코에 입국할 때 이 가방만 미국 공항에서 이틀이나 지체된 뒤 부쳐졌었는지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돈은 제가 중국에서 살 때 마땅히 보관할 때가 없어서 가방 속 내피에 달린 지퍼를 열고 보관해 놓은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잘 숨겨놓은 나머지 본인도 까맣게 잊은 채 방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갔는데 우연히 커피를 쏟는 바람에 발견할 수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그 큰돈이 아예 발견되지도 못한 채 수명을 다한 가방을 따라 버려질 수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용돈을 받아 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용돈 대신 저희 집 마루에는 검은 색 ‘일수가방’처럼 생긴 조그만 가방이 금전출납부와 함께 항상 탁자 위에 놓여 있었고 우리 형제들은 그 안에서 필요한 만큼의 돈을 꺼내어 쓰고 그 내용을 성실하게 금전출납부에 기록을 하는 방식으로 살았습니다. 아버지의 그런 방침은 자녀들로 하여금 금전을 사용함에 있어서 정확하고 성실하고 계획적인 자세를 키워주는 좋은 역할을 해 주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 형제들에게는 아니, 적어도 제게는 목돈을 마련해서 한 방에 멋진 것들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몰수당한 느낌이 드는 그런 방식이 썩 달갑지만은 않았습니다. 가격이 제법 나가는 것들은 언제나 생일이나 혹은 크리스마스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었는데 그 기다림이 썩 유쾌한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초등학교 3학년 때의 크리스마스로 기억됩니다. ‘엄마’가 선물을 공개하시는데 저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형님의 선물은 지금도 제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푸른빛이 아름답게 감도는 진짜 가죽 재질의 야구 글러브였습니다. 그에 반해 제 선물은 등에 짊어지는 검은 색 가방이었고요. 생각해 보십시오. 야구 글러브는 백 퍼센트 오락을 위한 도구이고요, 학교 가방은 등교登校에 필요한, 그러니까 없으면 당연히 사주셔야 할 성질의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당시 남학생들 가방에는 당연히 ‘로보트 태권브이’나 ‘마징가 제트’와 같은 위대한 로보트 전사들이 그려져 있어야만 어디 가서도 조금 행세를 할 수 있었는데 엄마나! 세상에나! 엄마가 사 오신 제 가방에는 너구리같은 동물들만 잔뜩 그려져 있었습니다. 당장 엄마에게 그 부당함에 대해 따졌더니 살짝 당황하신 엄마는 귓속말로 제게 ‘바보야! 야구 글러브는 형이 안 쓸 때 네가 쓰면 되지만, 가방은 너 혼자만 쓸 수 있는 거잖아’라고 속삭이시며 그걸 어설픈 위로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참 나! 기가 막혀서! 아니, 형은 왼손잡이고 저는 오른손잡이인데 어떻게 야구 글러브를 함께 쓸 수 있으며, 또 오른손잡이 글러브였다고 가정을 하더라도 하루 일과표가 똑같은 데 형이 안 쓸 때 저보고 쓰라는 말씀은 한 밤 중에 밖에 나가서 체조하라는 말 밖에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제 인생 처음으로 비자금을 모으기로 다짐했습니다. 무슨 애국지사가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듯이 비장한 각오로 야구 글러브를 사기 위한 자금 마련에 들어갔지요. 그 전까지는 친척 분들이나 부모님의 친구 분들이 주시는 용돈을 꼬박꼬박 엄마에게 맡겨 두었었지만 야구 글러브를 사기 위한 거사巨事를 눈앞에 두고 있는 제게 너구리 만화가 그려져 있는 가방을 선물한 엄마는 더 이상 믿을 만한 은행이 못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용돈이 차곡차곡 모여질수록 그 큰돈을 보관할 곳이 마땅치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맨 날 십 원 단위 아니면 기껏해야 라면 두 봉지 값에 달하는 백 원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제게 이만 원이라는 돈은 감당하기가 실로 부담되는 거금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 이만 원을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고 별 고생을 다하던 중에 한 군데 정말로 안전한 곳이 눈에 띄었습니다. 가끔씩 아버지께서 쥐를 잡기 위해 ‘베니어veneer 합판’ 재질의 천장 한 부분을 살짝 들어서 쥐잡이 끈끈이를 놓아두곤 하셨는데 바로 그 생각이 딱 떠오른 것이었습니다. 거금을 손에 쥐고 한 동안 맘고생을 심하게 했던 터라 주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책상 위에 의자를 쌓아놓고 아버지께서 하시던 방법 그대로 천장의 한 부분을 살짝 들어서 그 안에 이만 원을 조심스럽게 놓아두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조만간 진짜 가죽 재질의 야구 글러브로 변신할 거금 이만 원이 놓인 그 천장 부분을 보면서 흐뭇해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거사의 날이 밝았습니다. 어느 날, 드디어 엄마가 시장에 가시는 날 저도 따라나서서 야구 글러브를 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제가 의기양양하게 엄마에게 그 동안 비자금을 숨겨 두었던 장소를 말씀드렸더니 엄마는 일본군 순사처럼 깜짝 놀라는 기색이 연연했습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독립군의 등짝을 매섭게 한 대 때리더니 ‘내가 너 때문에 못산다’를 연발하시면서 천장 속에 손을 넣어 제 비자금을 꺼내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몇 마디를 제게 소리쳐 전해 주셨습니다. “이 바보야! 그 돈이 지금까지 남아 있겠어? 쥐가 기어 다니는 천장에다가 돈을 숨겨 놓으면 어떡하니? 내가 너 때문에 못산다.” 엄마를 내려오게 한 다음 의자를 더 높게 쌓아서 플래시를 비춰가며 제 인생 최초의 비자금을 찾아보았지만 천장 속에는 깜깜한 어둠만이 남겨져 있었습니다. 바로 눈앞에 보이던 광복의 순간이 연기처럼 사라지면서 저는 그 매운 연기에 눈물만 연신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 비통한 눈물 앞에서 ‘깔깔깔’ 웃으셨던 지금의 제 나이보다 훨씬 젊으셨던 어머니는 지금까지도 그 이야기만 나오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뒤로 넘어가십니다.

 

하느님과의 더 깊고 성숙한 만남을 위해 지금 잠시 하느님을 마음 속 어느 조용한 방에 꽁꽁 숨겨두신 형제, 자매님들과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제 어린 시절의 쓰라린 추억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냉담자冷淡者라는 싸늘한 이름으로 여러분을 부르고 싶지 않습니다. 실제로 제 주변에는 어느 열심하다는 신자보다도 더욱 뜨거운 신앙의 삶을 살아가면서 하느님을 마음속의 깊은 곳에 숨겨 놓고 계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런 분들은 대부분 따뜻한 마음으로 신부인 저를 만나면 예의를 갖추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부님! 이제 많이 쉬었으니 금방 다시 나갈게요.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다시 화답해 드립니다. “몇 년이나 쉬셨어요? 삼년요? 에이~~~ 한 번 큰 뜻을 품고 기왕 쉬신 거 십 년은 채우셔야지요.”

 

많은 교우들이 지상교회의 현실과 한계에 대한 회의 때문에, 혹은 본당 신부나 동료 교우들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에 교회를 떠나 마음 속 깊은 곳에 하느님을 감추어 두고 살아가는 경험들을 하곤 합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대부분의 신자들은 다시 교회를 통해 하느님과의 화해의 삶을 회복하고 기쁘고 평화로운 신앙생활을 지속해 나가지만 어떤 분들은 영영 교회를 등지고 떠나가기도 합니다. 저는 결코 일곱 가지 성사로 이루어진 가톨릭교회 안에 머물러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다른 종교를 가지신 분들이, 또는 종교라는 이름 없이도 더욱 더 복음적인 삶을 살아가시는 많은 분들을 이미 잘 알고 있기에 저는 아집과 독선으로 가득차서 무슨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듯이 공격적이고 맹목적인 선교를 행하는 일부 집단에 대해서는 오히려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다만 저는 지난 수 천 년의 역사 속에서 때로는 부끄러운 침묵으로, 과도한 욕심으로, 방탕한 탕자의 모습으로 하느님의 뜻과 백성들의 목소리로부터 멀어지기도 했던 가톨릭교회가 한편으로는 그 유구한 역사 속에서 수많은 성인들의 빛나는 신앙의 모범과 거룩한 전통 안에서 꾸준히 하느님 뜻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고자 하는 피나는 쇄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꼭 강조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거룩한 미사성제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을 모시는 감격 안에서 실제적인 기쁨과 평화의 삶을 선물로 받으면서 매일매일 변화해 가고 있는지, 이것은 사목의 현장에서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수 있는 것들임을 또한 고백합니다.

 

이 천년의 교회 역사 안에는 수 없이 많은 성인들의 이름이 수놓아져 있습니다. 저는 성인들의 신앙의 모범을 보고, 듣고, 생생하게 따를 수 있다는 것 하나 만으로도 가톨릭교회의 사람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집니다. 성체와 성혈을 영하면서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기념할 수 있는 미사성제 안에서 저는 가톨릭교회의 사람이라는 사실에 깊은 감사와 만족을 느낍니다. 물론 이 모든 자부심과 감사와 만족은 결국 제 몸뚱이를 통해 증거되어야 함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마음 속 깊은 곳에 꽁꽁 숨겨 놓은 채 더 이상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지 않는 교우 분들께 이 편지가 오늘 제 가방 위에 엎질러진 커피 한 잔의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이 편지를 읽으시고 단 한 분이라도 어떤 이유에서든지 마음 속 깊은 곳에 꽁꽁 감추어 놓은 하느님의 이름을 다시 찾으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깊어 감추어두고 또 그 시간이 너무 오래 가면 쥐가 물어가서 영영 찾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여러가지 이유들과 복잡한 이해들은 잠시 내려놓으십시오. 일주일에 한 번쯤 우리들의 영혼을 위해서 텅 빈 성당 안에 조용히 눈을 감고 앉아서 다시 주님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것은 참 행복한 일입니다. 눈을 감아야 비로소 볼 수 있는 주님의 현존現存과 귀를 막아야 비로소 들을 수 있는 주님의 음성이 지금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멘! 

출처 : 최강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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