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교회법을 공부하고 있는 신부님, 수녀님들의 개강 모임을 준비하기 위해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먼저 수업 시간이 어떻게 짜여졌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우르바노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P신부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P신부님, 여름 동안 잘 지내셨나요? 한국외방선교회 최 강 신부입니다.”
“네, 그런데요?”
안부를 되물으면서 반갑게 대할 줄로 기대를 했는데 불쑥 듣게 된 신부님의 냉담한 반응에 당황해서 ‘혹시 전화 받기가 곤란한 상황인가’ 싶어 얼른 더 친절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물었다.
“신부님, 혹시 지금 전화 받기 곤란하세요?”
“괜찮은데요. 지금 제 방인데요.”
그리고는 대략 5초 정도의 침묵이 흘렀다. 좀 무례하다 싶은 신부님의 반응에 ‘어떻게 다음 대화를 이어가야하나’ 고민하는 그 짧은 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불편함과 어색함은 더해져서 ‘차라리 슬그머니 끊어버릴까’하는 생각까지 미칠 즈음에 신부님의 다음 반응이 어지러운 상황을 종료시켰다.
“저, 그런데 잠깐만요. 한국외방선교회 차장 신부님이 무슨 일로 제게 전화를 하셨지요?”
“네? 차장 신부요? 어쩐지 이상하다 했더니...... 하하하하하.”
어쩌다 ‘최강’이 ‘차장’으로 들렸을까? '짜장'으로 듣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나만큼이나 상황이해가 안돼서 고민하고 있었을 P신부님은 다짜고짜 들려오는 내 웃음소리에 더 어리둥절해져서 아무 말도 못하고 수화기만 들고 있었다.
살다보면 의미전달이 잘 못돼서 불편하고 어색한 경험을 할 때가 있다. 나는 이렇게 말했는데 상대방은 저렇게 알아듣고는 서로 오해하며 불편해 하다가 한참이 지난 다음에서야 진의를 파악하고 허탈하게 웃었던 기억이 있다.
사실 그런 경우 바로 상대방에게 다시 진의를 물어 확인을 하게 되면 헛된 고생을 안 해도 되는데 대개 상대방에 대한 불쾌함이나 섭섭한 감정이 먼저 앞서서 다시 묻는 일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단정 짓고 더 이상의 대화를 끊어버리니 안 해도 좋을 고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혹시 과거에는 ‘썩 좋은 사람이다’ 싶어 절친하게 지냈다가 ‘알고 보니 형편없는 사람이다’ 싶어 지금은 소원해진 관계가 있다면 한 번쯤 시간을 내어 차 한 잔 마시면서 그 사람을 다시 생각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억지로 그 사람에게 다시 다가가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그 사람을 다시 생각해 봄으로서 우리의 인간관계를 되짚어 보자는 말이다. 사실 그 사람은 과거에 당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좋은 사람’도 아니고, 지금 당신이 생각하고 있듯이 ‘나쁜 사람’도 아니다. 그 사람은 그저 ‘그 사람’으로서 항상 당신에게 반응한다.
어쩌면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봐주지 못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판단했던 당신의 마음이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단순함과 명료함 이상의 어떤 기대를 만들어냈고, 어느 날엔가 당신이 만들어 낸 그 가상의 기대치에 못 미친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 당신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만약 그렇다면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변한 것은 그 사람이 아니다. 단지 당신의 마음만이 춤추었을 뿐이다.
흔히 인간관계를 깨뜨리는 오해는 상대방에 대한 그릇된 판단과 기대가 만들어 내는 관계의 무거움에서 비롯된다. 오랫동안 벗으로 남고 싶으면 싶을수록 상대에 대한 어떤 판단이나 기대는 가지지 않는 것이 좋다. ‘좋은 사람’이라는 판단마저도 단순하고 명료한 관계에는 방해가 될 수 있다. 깊어가는 가을만큼이나 우리들의 관계 또한 서로에 대한 그릇된 판단이나 기대들을 다 벗어놓고 성숙하게 무르익어 갔으면 좋겠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희망은 내가 무슨 일에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늘 그러했듯이 지금도 큰 용기를 가지고 살든지 죽든지 나의 생활을 통틀어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1필립,20)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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