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최 강 신부님

성지순례 3 - 눈물

김레지나 2011. 12. 13. 16:23

카파도키아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나는 남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카파도키아에 도착하여 재질이 약한 화산석이 오랜 풍화작용으로 인해 기기묘묘한 형상을 한 채 우리 순례 가족들을 반기고 있는 곳에서도, 초세기 그리스도인들의 생생한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바위를 뚫어 만든 교회 안에 서있을 때도 자꾸만 눈물이 났다.

지난 밤 호텔에서 강론 준비를 위해 눈을 감고 앉아 있을 때 불현듯 수년 전에 보았던 사진 한 장 떠오른 탓이었다. 아무 것도 먹지를 못해 뼈만 남은 앙상한 몸으로 고개를 가눌 힘도 없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한 아프리카 꼬마 녀석과 바로 그 옆에서 그 녀석이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역시 굶주린 독수리 한 마리가 들어있는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보고 크게 충격을 받은 후 나는 그 사진이 뇌리에 떠오를 때마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다.

결국 낮 동안 억지로 참았던 눈물이 땅거미가 질 무렵 바위를 파서 만든 동굴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게 되었을 때 급기야 터지고 말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 어디선가에는 사진 속에서와 같은 어린 생명들이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도 지키지 못한 채 굶주리며 죽어가고 있는데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애써 못 본 척, 모르는 척 외면하며 나와 내 자식, 내 가족의 안녕만을 손이 닳도록 빌고 있는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누구이고 무엇하는 사람들인지 스스로 묻지 않으면 안된다’는 내용의 강론을 하던 중, 우선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눈물로 봉헌하는 미사 중에 하느님께 간절한 기도를 바쳤다. 사제로 살아가는 동안 특별히 어린 생명들을 살리는 일에 써주시기를 청하였다. 또 순례 가족들에게도 너무나도 약하고 부족한 점이 많은 나이지만 성령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데로 순명하며 살 수 있도록, 그리고 내가 생명을 살리는 일, 특별히 어린 생명을 살리는 일에 헌신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청하였다.

나는 내가 이 세상 전체를 바꿀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굶주려 죽어가고 있는 어린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양심은 가지고 있다. 내가 하느님께서 부어주신 이 양심에 따라 한 생명을 살리고 또 그렇게 다시 살아난 생명이 세상을 용서하고 세상과 다시 화해할 수 있다면 적어도 그에게 세상은 철저히 뒤바뀐 것이 될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언제나 우리들 각자에게 들려주시는 하느님의 소리, 양심을 따르는 데서 나온다.

나는 눈물의 정화작용을 믿는다. 눈물은 ‘에고ego’에 가로 막힌 우리들의 영혼과 양심을 다시 하느님께로 흐르게 하는 거센 은총의 강물이다. 눈물 속에서 띄엄띄엄 힘겹게 미사 경문을 읽느라 시간을 많이 지체한 나머지 이미 세상은 깜깜해져 있었다. 하지만 나를 비롯하여 많은 순례 가족들이 흘린 눈물만큼이나 맑고 투명한 빛이 우리들 영혼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어두운 세상을 밝게 비추는 희망이 우리들 눈물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야훼, 내 구원의 하느님, 낮이면 이 몸 당신께 부르짖고 밤이면 당신 앞에 눈물을 흘립니다. 내 기도소리 당신 앞에 이르게 하시고 내 흐느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시편88,1-2)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http://cafe.daum.net/frchoi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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