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에서 앙카라를 거쳐 시리아의 안티오키아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순례를 시작하기 전날 밤, 나는 순례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동방정교회와 로마 가톨릭교회와의 차이점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대화는 두 교회의 교리 상의 차이점에 관한 것으로 흘러 들어갔고 차차 논쟁의 분위기로 바뀌어갔다. 이렇게 된 데는 내가 다시 순례 가족들에게 던진 질문이 도화선이 되었다.
“여러분은 성모님의 승천 교리를 어떻게 받아들이시나요? 문자 그대로 성모님께서 마치 구름이라도 탄 듯 지상에서 하늘(天)로 오르신(乘) 것으로 받아들이시나요?”
그 자리에 참석한 순례 가족 대부분은 이 질문 자체에 대해 다소 혼란스러워 하거나 불쾌감을 나타냈고 어떤 형식으로든지 교리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자체를 매우 싫어하는 나는 스스로의 경솔함을 통회하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으나 허사였다.
성모 승천교리가 우리 가톨릭 신앙의 핵심도 본질도 아니기 때문에 성모승천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동방정교회를 이단시하거나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지 말고 우선 그들의 삶과 영성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정리를 하고 싶었지만 순례 가족들의 관심은 성모님이 진짜 하늘에 오르셨는지, 아닌지에 온통 쏠려있었다.
다소 불편한 분위기로 그 자리를 파하고 이튿날을 맞았다. 오전 일정은 사도 바울로가 처음으로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세운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에서 십 여 명의 로마 가톨릭 신자들과 생활을 하고 있는 도메니꼬 신부님을 방문하여 이 곳 교회의 실정에 대해 설명을 듣는 것이었다.
“이 곳에서는 매년 부활절 미사를 우리 가톨릭 신자들과 동방정교회 신자들이 공동으로 봉헌하고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지난 번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서거하셨을 때에는 이 곳의 이슬람 신자들까지 우리 성당 마당에 함께 모여 촛불을 켜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처음 세워진 이 곳 안티오키아에서는 이제 다시 초대 교회 공동체의 모습처럼 로마 가톨릭이나 동방정교회의 구분이 넘어서 다시 하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도메니꼬 신부님의 통역을 맡았던 나는 지난 밤 우리들의 대화에 대한 결론을 기대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드렸다.
“로마 가톨릭 교회와 동방정교회 사이에는 교리상의 차이점이 분명히 있는데 혹시 그 교리상의 차이로 인해서 겪는 어려움은 없을까요?”
“교리상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합니다만 우리는 우선 함께 길을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서로 나란히 같은 길을 걸어가다 보면 주님께서 진정으로 우리에게 바라시는 당신의 뜻이 무엇인지, 우리의 신앙생활의 본질이 무엇인지가 자연스럽게 밝혀지게 마련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사랑과 일치라는 것에는 서로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교리상의 차이라는 것이 사실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또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지요.”
도메니꼬 신부님의 실제 삶이 생생하게 증언해 주는 이 말씀에 순례 가족 모두는 주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는 진정한 주님의 뜻을 새기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어떤 경우에도 교리를 놓고 서로 다투는 그 순간 이미 양쪽 모두는 진정한 주님의 뜻과는 멀어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절대이자 영원이신 진리를 짧은 인간의 언어에 가둘 수는 없음이니 어차피 교리 논쟁은 애초에 인간들의 싸움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진정 주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자라면 쓸데없는 논쟁에 끼어들기 보다는 하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삶을 땅에 바치며 묵묵히 정진하는 것이 옳다. 신앙생활의 본질은 이렇게 전 존재를 하느님의 뜻에 투신하며 스스로를 변화시켜가는 삶, 즉 회개요 구원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교리를 놓고 다투지 말 것이다. 행여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상대방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그래도 지구는 돌아가니까...... 그래도 진리는 변하지 않을 테니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완전한 본질은 그리스도에게 기꺼이 주시고 그리스도를 내세워 하늘과 땅의 만물을 당신과 화해시켜 주셨습니다.”(골로1,19-20)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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