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11년

♠♣ 하느님께서 나에게 오시는구나.

김레지나 2011. 12. 8. 00:04

 

하느님께서 나에게 오시는구나.

 

2011년 12월 7일 수요일, 엉터리 레지나의 일기

 

  항암주사 부작용으로 근육통은 많이 줄었는데, 부종은 점점 심해진다. 어제는 3차 항암 후 13일 만에 처음으로 외출해서 많이 움직였다. 미사참례하고 장도 보고 마트에도 다녀왔다. 부종을 줄여보겠다고 식사양을 줄였고, 늙은 호박을 세 번 먹었고, 힘든 것 꾹 참고 걷기 운동 한 시간 했고, 스트레칭 30분 했고, 안 쓰던 발 마사지 기계도 꺼내서 마사지도 했고, 복부 찜질도 했고, 각탕도 했다.

  그런데도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니 얼굴이랑 몸이 부풀대로 부풀어 있었다. 체중을 쟀더니 어제 오후보다 2키로가 더 늘어 사상최고 기록을 갱신했다. 부종 때문에 항암전보다 5~6키로가 늘어난 거다. 혈액종양내과 의사 선생님이 앞으로 더 심해질 거라 하셨는데 걱정이 되었다.

 

  오늘은 L 환우를 만나야 한다. 내일은 성소분과 모임이 있고, 모레는 학교 선생님들을 만나기로 했다. 나는 짜증이 확 나서 예수님께 따졌다. “예수님. 이 꼴로 어떻게 나가요? 저도 좀 봐줄만한 얼굴로 환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요. 예수님은 차림새야 꾀죄죄하셨겠지만 병들어서 지친 모습은 아니셨을 것 같은데... 입장 바꿔서 생각 좀 해보세요. 예수님 같으면 저처럼 퉁퉁 부어서 군중 앞에 서고 싶으시겠어요? 부종 좀 덜하게 해주실 일이지. 복음이고 뭐고.. ‘쉘 위 댄스’고 뭐고 안 할래요.(졸글 ‘폭풍 속에서 춤을’ 참조)”

 

  몸이 땡땡하게 부어 있으니 움직임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나는 속이 상할 대로 상해서 아침을 먹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어제 환우 카페에 알게 된 53세 말기 암환자의 사연이 떠올랐다. 그분은 발병 후 3년 동안 재발을 거듭해서 항암치료를 받던 중에, 온 몸으로 전이가 되었고, 어제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더 이상 쓸 수 있는 항암제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꽤나 명랑하고 유머 있는 글을 올려주시던 분이셨다. 그분의 다른 게시글을 찾아 읽었는데, 생계를 아내에게 맡겨두고 한량처럼 지내던 남편은 아픈 꼴 보기 싫다고 집을 나가버렸고, 딸도 집안 분위기가 싫다면서 집을 나가버렸고, 결혼한 아들은 못 본지 오래 되었다고 했다. 친구들도 하나 둘 떠나버렸다고 했다. 치료 받느라고 집을 판 돈도 다 써버리고 카드로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그분은 치료불가 판정을 받고 나니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이라고 하셨다.

  그분 사연에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쪽지를 보내서 만남을 청했었다. 혼자가 아님을 느끼게 해드리고 싶었다. 개신교 신자라고 하니, 내가 만난 하느님 이야기도 해드리고 싶었다. 그분에게는 조건 없이 사랑해주시고 함께 해주시는 주님의 위로밖에 남지 않았으리라. 나는 누운 채로 그분을 위해 묵주기도 5단을 바쳤다.

 

  부기가 좀 빠지기를 기대하며 각탕을 했다. 땀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나는 또 예수님께 종알거렸다. “하는 수 없지요 뭐. 이 꼴로 나가는 수밖에. 이렇게 우스운 꼴로 나가서 속상한 맘도 봉헌하지요 뭐. 칫!”

  화장하면서 눈썹이 잘 안 그려져서 또 짜증이 나려고 했다. ‘도대체 눈썹은 왜 빠지는 거야?’ 그렇지 않아도 늦었는데.'..., 밖에 나갔더니 아파트 외벽 칠한다고 차가 비닐 옷을 입고 있었다. 벗기는 데 애먹었다. 게다가 모자 속에 두른 손수건의 매듭이 풀어져서 꽤나 시간을 들여서 고쳐 써야 했다. 찡얼대고 허둥대느라 미사에 하마터면 늦을 뻔했다.

 

  오늘 독서말씀은 이사야서 40,25-31이었다. 올해 7월에 동생이랑 갑곶성지에 다녀온 후 하느님의 응답으로 받은 성경구절이어서 반가웠다. (졸글 “곰곰이 생각해보면 하느님은 안 계신 것 같아.” 참조)

  “ 〔……〕

  야곱아, 네가 어찌 이런 말을 하느냐?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 이렇게 이야기하느냐?

    “나의 길은 주님께 숨겨져 있고,

     나의 권리는 나의 하느님께서 못 보신 채 없어져 버린다.”

  너는 알지 않느냐? 너는 듣지 않았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느님, 땅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

  그분께서는 피곤한 이에게 힘을 주시고,

  기운이 없는 이에게 기력을 북돋아 주신다.〔……〕“

 

  복음말씀은 마태오 11,28-30이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

 

  강론 시간에 신부님께서 고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신부님의 부모님께서 당신의 질병과 아들의 사고사라는 큰 고통을 겪으셨지만 그 고통을 극복해보려고 전전긍긍하지 않으셨고 담담하게 견디셨다고 하셨다. 오늘 복음 말씀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고통을 견디어 나갈 힘을 주시겠다는 말씀이라고 하셨다.

 

  미사 후에 L 자매를 만나 점심을 먹었다.

오늘이 두 번째 만남이다. 몇 주 전 수녀님의 소개로 처음 만난 날, 성당 마당에서 두 시간도 넘게 하느님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L 자매의 남편은 뇌수술 후 2년 동안 병원에서 지내다 기적적으로 살아났고, 남편 병 수발이 끝나자마자 암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가 6년 전이니 38세에 암진단을 받은 거다. 수술 후 3년간은 잘 지내다가, 3년 전에 뼈전이가 되었고 항암치료를 하던 중에, 올해 2월에는 뇌전이까지 되었다고 했다.

 

  우리는 죽음을 준비하는 것과 하느님의 위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L 자매가 말했다.

  “ .... 진단부터 수술까지 너무 갑자기 진행되어서 준비가 되지 않았었던가 봐요. 수술장에 들어갈 때도 마취하기 전까지 눈물만 줄줄 흘렸어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하고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지금은 오히려 더 잘 받아들이고 지내요. 돌이켜보면 ‘아, 하느님께서 나한테 오신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미국에 사는 친구가 제가 아프다니까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주고. 여기까지 만나러 와주고. 아무 것도 모르는 저한테 묵주기도 하는 법도 가르쳐주고, 왜 진심은 금방 느껴지잖아요. 미국에서 수녀원에 전화해서 지금 성당에는 안 나오지만 꼭 챙겨주시라고 부탁해주고. 수녀님께서는 본당 성령기도회 소개해주시고. 성령기도회 회원들도 나를 위해서 기도해주고.....미국 사는 친구한테 고맙다고 하면 ‘나한테 고마워할 것 없다.’고 펄쩍 뛰어요.... 전혀 나와 관계가 없었던 사람들도 나를 위해서 시간 내주고 기도해주고.....‘  질병을 통해서, 사람들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나한테 오시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오히려 편안한 마음으로 고맙게 받아들여요. 가끔은 하느님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지만요.“

 

  나는 “하느님께서 나에게 오시는구나.”하는 말에 감동을 받았다.

  “맞아요. 마리아 자매님이라는 분과 같은 병실을 쓴 적이 있는데, 임종 전날까지 지켜보았어요. 그분한테 처음 찾아갔을 때, 그분이 그래요. ”오늘 아침에는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어요. 그런 기분은 처음이었는데, 하나도 아프지 않고 너무 기분이 좋아서 왜 내가 여기 누워있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어나려고 했는데 일어날 수는 없었지요.“라고요. 그 자매님은 대세 받고 입원했다고 했는데,.......돌아가시기 수 주 전에 하느님을 용서한다 하셨고, 병자성사까지 받으셨어요. ”하느님 너무하세요. 저 벌주지 마세요. ..죽음이 두려워요.”하고 이야기하시던 분이 병자성사 받으시고 완전히 편안해지셔서, 웃으면서 당신의 영정사진으로 쓸 사진을 가져오라고 하시고 노래도 부르시고.... 형제들이 계모임하는 것처럼 병실에 모여서 왁자지껄 웃고 떠들었다고 해요. 그분은 가족들이 다 모인 가운데 수녀님의 기도를 받으면서 돌아가셨지요.  제가 처음 병실에서 그분을 만난 날, 하느님께서 그분을 찾아가셨던 거예요. 저를 앞세우고. 그래서 그날 아침 그분 기분이 좋았던 것 같아요... 마리아 자매님의 변화를 보고 형제들이 성당에 나가겠다고 했었지요.... 제가 암환자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그분을 위로할 수 있었겠어요.....그렇게 한 사람을 위로할 수 있고, 하느님의 큰 사랑을 알릴 수 있다면 평생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은 채로 지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제 작은 고통이 뭐라고 이렇게 후한 값을 쳐주십니까?하면서 하느님께 고마워서 엉엉 울었어요..... 저는 신이 나서 마리아 자매님에 대한 글을 환우카페에 올렸다가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의 글은 올리지 말라는 주문을 받았어요. 환우들은 재발이나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기 싫은 거지요. 저는 말기암의 고통도 재발에 대한 두려움도 ‘죽음에 대한 바로보기’가 없으면 극복하기 어렵다는 둥, 죽음을 더 일찍이 준비하는 일이야말로 우리들의 마음이 낫는 지름길이라는 둥, 두려워하는 마음이 나아야 하느님의 사랑을 더 많이 깨달을 수 있다는 둥, 답글을 써서 올렸지요. 그때 글 안 내리고 고집 부려서인지 이번에 재발한 후에 다시 카페 들어가서 오래전부터 활동하던 분들 이름 부르면서 인사했는데, 아무도 대꾸를 안하더라구요. 하하하. 제 바로 옆글에는 답글 다셨던데 말이에요.”

 

  L 자매가 말했다.

  “왜요. 환자들은 다 죽음을 생각해보게 되지요. 제 아버지는 50 나이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지금도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가끔 눈물이 날 때도 있어요.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아버지 생각하면서 힘든 걸 보면,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서로 작별인사를 나누지 못해서인 것 같아요.....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은 죽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남겨진 이들을 위해서도 중요해요....... 어찌 보면 우리 같이 아픈 사람들은 죽음을 준비하고 가족들과 이별을 준비할 수가 있어서 복 받은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살려는 희망을 버린 건 아니잖아요. 노력을 안 하는 것도 아니구요.”

 

  내가 말했다.

 “맞아요. 죽음을 잘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해요.... 죽음을 생각도 않으려하고 외면하려고만 하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더 평화로운 마음으로 투병생활을 할 수 있는데 말이에요...... 아까 자매님이 한 말이 넘 좋아요. ‘하느님께서 나에게 오시는구나.’ ......투병생활을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시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고, 그래서 힘을 얻을 수 있는 신앙인들은 얼마나 큰 축복을 누리고 있는지 몰라요. 하느님의 용서의 은총을 거부하고 원망 속에서 죽어가거나, 가족들과 용서를 나누지 못하고 억울해하면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꽤 많더라구요. ......우리가 아프지 않았다면 어떤 방법으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셨겠어요? 하하하. 우리가 하느님께 따지고 매달리고 하느님께 관심을 두니까 만나주실 수 있는 거지요......... 아무리 제가 투병기간에 깨달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떠들어도 아프지 않거나 세상일에 바쁜 사람들은 별로 관심 없어요...부러워하지도 않지요... 보통은 우리가 질병에서 벗어나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그건 아닌데, 그죠? 푸하하.....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 속에서 보면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 계시는 게 분명해요.”

 

  점심을 맛있게 먹고 헤어지면서 L자매에게 김보록 신부님의 책 <묵주기도 묵상>을 주었다.

 

  오늘 하루도 미사 중 말씀을 통해, L자매를 통해 나에게 와주신 하느님께 감사.

  모든 것을 합하여 가장 좋은 것을 이루시는 하느님께 감사.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로마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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