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자뻑공주가 감사하는 법
교우들의 모임에서 신앙체험 나누기를 할 때, 드물게 하느님께서 나를 만나주신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아주 조심스럽다. 내 부족함을 기억하고 있거나 앞으로 내가 부족한 모습을 보게 될 분들이 ‘별 것도 아닌 것이’라고 혀를 차면서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못마땅하게 여길까봐 걱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걱정 때문에 하느님의 사랑 이야기를 해야겠다 싶은 순간에 입을 다문 적은 없다. 내가 누구인가. 자타가 공인하는, 스스로 자, 뻐길 뻑, 자뻑공주가 아닌가. 하느님께서 나같은 자뻑공주를 동네방네 당신의 사랑을 떠들고 다닐 이로 선택하신 것은 참으로 잘하신 거다. 소심한 사람들 같았으면 받은 은총을 몰래 간직하고 겸손의 덕만 찾으려고 해서, 가끔은 은총광고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속을 태우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꽤나 심각한 자뻑증상이기는 하다.^^)
학생들이 처음 내게 ‘자뻑공주’라는 별명을 지어주었을 때는 약간 억울한 감도 있었다. 학생들은 내가 뻐길 때마다 기겁을 하며 말리곤 했다. 나는 그런 반응이 재미있어서 굽히지 않고 능청스럽게 “나같은 미모의~~”라는 등의 발언을 꾸준히 했었다. 아무리 그랬기로 그 별명은 내게 부당한 거라 생각했었다. 어쩐지 ‘잘난 척하는 사람’이라거나 ‘주제를 모르는 푼수’라는 부정적인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엔 ‘자뻑증’을 신앙적인 면에서 약간 색다르게 조명해보게 된다. ‘신앙적인 자뻑증’은 아마 '자신이 훌륭한 존재로 창조되었음을 깨닫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보면 ‘신앙적인 자뻑증’이야말로 신앙인들에게는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자질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나는 ‘자뻑공주’라는 별명을 좋아하기로 했다. 가끔은 신앙적인 면 말고 다른 일에서도 발동되어 하느님 마음에 들지 않는 생각과 행동을 할 때가 있어서 탈이기는 하지만.
나는 10여년의 냉담 끝에 암에 걸린 후, ‘아, 하느님께서 나를 이토록 뜨겁게 사랑하시는구나’하고 느꼈던 적이 있다.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기뻐서 그때 죽으면 의심할 여지도 없이 바로 천국에 들 줄로만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가당치도 않은 확신이지만 그 당시는 분명 그랬었다. 내 죄와 허물은 물론이고 곧 겪어야할 고통도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내가 당시의 체험을 이야기하면 몇 분은 이렇게 묻는다.
“그래, 그런 체험을 하는 것이 죄 없이 잘 살았다는 증거라는 거지? 그래서 바로 천국에 들 줄 알았다는 말이지?”
나는 펄쩍 뛰며 대답한다.
“아이고, 아니오. 죽으면 바로 천국에 들 것 같았다는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에요. 내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만 제 마음에 온통 가득 차게 되었다는 거예요. 하느님의 사랑이 제 허물 따위는 문제 삼을 필요도 없을 만큼 크다는 걸 느낀 거지요.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 보면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와 용서를 청하기도 전에 이미 용서하고 기다리고 계시잖아요. 그런 하느님의 사랑을 철썩 같이 믿게 되어버린 거지요. 엄마 품에 안긴 아기들은 자기 부족함이고 아쉬움이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마냥 행복하잖아요. 정말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엄마처럼 아빠처럼 사랑하시니까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세례 받은 신자라면 누구나 나처럼 ‘내가 하느님의 사랑받는 귀하디귀한 자녀이구나.’하는 느낌을 갖고 있을 것이다. 아마 내가 워낙 못나서 하느님께서는 좀 특별한 방법으로 당신 사랑을 알려주셔야만 했던 것 같다. 사실 영적인 체험은 우리가 잘 살았다고 해서 받게 되는 상이 아니다. 大데레사 성녀의 말씀에 의하면 ‘죄도 아니고 공도 아닌 것’이다. 신앙의 열매와는 당연히 상관없는 것이다. 그러니 똑같은 사랑을 실천했다면 별난 영적 체험 없이 잘 해낸 사람들 쪽이 훨씬 더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신앙적인 자뻑증’은 공이 될 수 없는, 거저 받은 은총에 불과하다. 그래서 거기서 그치면 안 되고 공을 쌓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자뻑증’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그 발전된 자뻑증을 내가 ‘거룩한 자뻑증’이라 이름 붙여 보았다. ‘신앙적인 자뻑증’이 ‘우리의 허물도 문제 삼지 않으시고 사랑해주시는 하느님을 아는 것’이라면, ‘거룩한 자뻑증’은 ‘성인이 되기 위해 완덕을 쌓으려 애쓰는 것’이리라 생각해 보았다.
만약 누군가가 “나는 성인이 되고 싶어.”라고 말한다면 곧 많은 핀잔을 듣게 될 것이다. 그는 “네 주제를 알아야지. 거룩한 척하려고? 피곤하게 살지 마라.”라거나 “성인이 아무나 되는 건 줄 알아? 그분들은 우리와 종이 다르다고.”하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자신이 성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능력만으로 모든 일이 되는 줄로 착각하고서 하느님의 손발을 묶어 놓는 것이다. 우리 자신이 하느님과 힘을 합하여 최고의 것을 이루어낼 수 있는 훌륭한 존재임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 부족함에 머물러 있으려고 한다면 우리가 교만하거나 게으른 탓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거룩해지려고 마음먹지 않는다면 마치 등을 갖고 있으면서도 가진 등에 불을 붙이기만 하면 주위를 밝힐 수 있다는 것을 잊고 지내는 것과 같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힘으로 우리가 생각하거나 청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더 풍성히 이루어주실 수 있는 분(에페 3:20)”이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겨자씨만한 바람으로도 큰일을 이루어내는 분이시다. 분명 성인이 되기로 결심한 사람을 보고 기뻐하시면서 어떻게든 성덕으로 이끌어주시려고 갖은 은총을 베풀어주실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하느님께로부터 최고의 은총을 바라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완덕을 이룰 수 있는 훌륭한 존재로 창조되었음을 믿고,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성인이 되려고 애쓰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훌륭한 존재로 지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한 방법일 것이다.
나는 암이 재발해서 지루한 항암을 앞두고 있는 중증환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거룩한 자뻑증’도 중증으로 앓고 있다는 것이다. 벌써 수술을 받고 나서 성인들 흉내를 내보려고 서투른 폼을 잡고서 이왕에 겪는 고통을 사랑의 기도로 봉헌해 보기도 했다. 그렇게 해보았더니 정말로 내 보잘 것 없는 고통이 아름다운 빛깔로 채색되는 것 같아 마음속에 잔잔한 기쁨이 일었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이지만 그런 자잘한 ‘성인 흉내내기’야말로 지금 내가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감사이리라 생각한다.
앞으로 일 년 동안 항암주사를 맞아야한다는데, 내 ‘거룩한 자뻑증’이 더욱 중증이 된다면 ^^ 잘 견딜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고통을 겪으면서 성인들 흉내를 내다보면, 하느님의 품에 안길 마지막 준비를 할 때쯤에는 C급 짝퉁 성인이 되어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엉터리 자뻑공주의 감사기도
“하느님
제가 못났다지만 하느님께는 잘난 딸이에요. 그죠?
제 허물이 많고 많지만 성인들이라고 허물이 없으셨겠어요?
저도 용기를 내서 그분들을 흉내내보고 싶어요.
항암치료가 힘들어서 하느님께 불평하고 싶어도 아닌 척 참아보려고 해요.
아픈 것은 싫지만 하는 수 없이 겪어야 한다면 이왕이면 사랑의 빛깔을 입히고 싶어요.
그렇게 결심하고 나니까, 힘든 항암치료가 무섭도록 겁나지는 않네요.
제가 이렇게 결심하니까 기쁘시지요?
또 하느님께서 제 그런 결심을 기뻐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기특하지요?
성인을 닮기로 결심하고 거룩해지려고 애쓰는 것이
저를 애초에 훌륭하게 만들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방법이에요.
저 잘 알고 있죠?
제게 특별과외 해주신 보람이 있지요?
제가 생각해도 저 자신이 대견하다니까요.
행여 제가 가끔씩 투덜거리거나 부족한 짓을 하게 되더라도
그래도 하느님은 저를 사랑해주실 거라는 것도 알아요.
하느님의 그런 약점을 잘 알고 있으니까 눈치 안 보고 계속 잘난 척 할래요.
제가 진짜로 잘난 줄 알고 까불다가 잘못된 길로 빠질까봐 걱정하지는 마세요.
성인들 흉내를 내보겠다는 거지, 제 주제를 착각하겠다는 뜻은 아니니까요.
제 자뻑증이 좀 더 심해져서 죽는 순간까지 거룩한 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고마워요.
사랑하구요.
- 2011년 9월 26일 하느님께서 자랑스러워하시는? 엉터리 자뻑공주 레지나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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