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11년

수술 받은 날과 그 다음날의 기록 (발표용)

김레지나 2011. 9. 24. 20:17

수술 받은 날 하루의 기록 중 일부입니다.^^

(앞부분 생략)
회복실에서 의식이 돌아왔다.

(5년 전에는 너무나 아파서 눈을 뜰 수도 없었고, 회복실 나갈 때까지 “아파요.”소리만 반복했었다. 상담 간호사님의 말로는 그때의 수술은 림프절을 다 들어내고 근육층까지 건드리는 대수술이었다고 한다. 그땐 정말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팠었다.)

의식이 돌아오자마자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저번보다는 덜 아프다.’였다. 물론 전절제했기 때문에 부분절제한 것보다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아프지만, 5년 전에 비하면 분명 덜 아팠다.  (중략)


넓은 회복실에 몇 명의 환자들이 수술을 마치고 누워있었고, 수술을 막 마치고 나온 환자 곁에는 간호사들이 여럿 있었다. “일어나지 마세요. 그러다 침대에서 떨어져요.” 등등의 소리가 들렸다.(중략)

간호사 한 명이 와서 “많이 아프세요?”하고 물었다. “예.”하고 대답했더니, “병실에 가서 진통제 더 맞으세요.”라고 했다. (중략)
 

 

병실로 왔다. ‘이동식 침대에서 병실 침대로 어떻게 옮기지? 전에 어떻게 했더라?’ 하고 걱정하고 있는데, 두 사람이 와서 이동식 침대와 병실 침대 높이를 맞추더니 이동식 침대에 깔려있던 시트를 그대로 옆으로 밀어서 간단히 옮겨주었다.

간호사가 "많이 아프세요? 진통제 더 놓을까요?”하고 물었다. ‘5년 전 회복실에서는 “자꾸 아프다고 하니까 진통제 맞고 잠만 주무시잖아요?”하면서 진통제를 더 주지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더 맞아도 되나?’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진통제를 더 맞을까 말까 잠시 망설였다. 회복실에서 진통제 맞았다는데, 그 약기운이 떨어져서 참을 수 없으면 맞기로 하고 일단은 참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아니요. 안 주셔도 돼요. 더 아프면 그때 말씀 드릴게요.“라고 대답했다.

  내 딴엔 영웅적인 선택이었다. 우하하하~~. 입원하기 전에 어떤 신부님께 “제가 00님과 00님을 위해서 수술 받는 고통을 봉헌하면서 기도할 테니까, 힘내시라고 전해주세요.”하고 큰소리쳤었다. 그분들을 위한 진심어린 각오였고, 오래 전에 하느님께 드렸던 약속이었다.

다행히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프지는 않으니까, 그 정도의 아픔쯤은 그분들을 위한 기도로 봉헌해야 될 것 같았다.

  하느님만 아시는 기특한 봉헌을 하고 싶었는데, 그래야 내 공이 될 텐데, 그 바람을 포기하고 이렇게 공개하는 것도 내 딴엔 영웅적인 선택이다. (호호호.)

  그리스도 신앙인이라면 이 기록을 읽고, 이왕에 견뎌내야 할 고통이라면 ‘선한 의지’를 갖고 자신이 겪는 고통을 ‘사랑의 기도’로 바치는 것이 구체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음을 다시금 생각해보기 바란다.

 (엉터리 레지나가 조금 확대해서 설명해 보겠다. 엉터리 설명이 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어떤 고통을 겪을 때, 그 고통을 잊으려고 아무 목적도 없이 긴 시간 텔레비전을 본다든지, 술이나 담배에 빠진다든지, 오락을 과하게 한다든지 하는 것은 고통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고요한 침묵 속에서 직면한 고통을 받아들이는 작업을 하지 않으면, 언제든(임종 전에라도) 그 고통과 다시 마주하게 될 때, 더 큰 파괴력을 가진 것으로 자라난 고통이 우리를 덮칠 지도 모른다.

  요란하게 고통을 잊으려 애쓰지 않고, 침묵 중에 그 고통을 그대로 느껴보고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은 후에는. 고통이 우리를 상하게 하지 않도록 그 고통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긴 그 의미가 도저히 파악이 안 되니까 고통이기는 하겠다. 고통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다면,) 우리는 교회에서 배운 대로 그 고통의 의미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의 고통에 의미를 입힌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고통에 우리의 보잘 것 없는 고통을 합치시키기로 마음먹는 일이다. 예수님의 고통이 바로 우리를 향한 사랑이듯이, 우리도 이왕에 겪는 고통에 사랑의 의미를 부여하기로 마음먹는 일이다.

  우리 힘만으로 우리의 고통에 사랑의 의미를 부여하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우린 그저 사랑의 의미를 부여하기로 결심만 하면 된다. 그 다음에는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고통을 사랑으로, 기도로 바꾸어 줄 것이다.

 

  입원하기 전에 내가 아들들에게 부탁한 게 있다. “니들 엄마를 위해서 기도하는 셈치고 나쁜 습관 하나씩 고치면 좋겠다.”라고. 사실 내 맘속으로는 ‘저런 버릇은 고쳐야하는데.’하고 바랐던 게 있어서 한 말이었다. 무엇을 고치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스스로 판단해서 엄마를 위해서 작은 습관 하나라도 고칠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일석이조로 고마운 일일 것이다.

 

  돌아가신 마리아 선생님은 시한부 선고를 받으신 후에 남편과 아들이 담배를 끊어 준 것이 굉장한 에너지를 주었다고 하셨다. 그 이야기는 <TV동화 행복한 세상>에서 에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방송되기도 했다. 큰 사랑이 있다면, 절제하는 것을 넘어서 무언들 못하겠는가.)
 

 시간이 지나서 진통제 기운이 떨어질 때가 되었지 싶은데, 더 아프지는 않았다. 감사할 일이다. 아파서 잠이 쉽게 오지는 않았지만 참을 만했다.
 

“하늘나라의 평화를 얻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우리의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선한 의지’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질 수 없다면 우리는 십자가의 무게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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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다음 날의 기록 중에서 일부 싣습니다.

2011년 9월 7일 수요일 (수술 다음 날
)

 

 

  새벽에 수술 후 채혈을 하러 간호사님이 왔다. 왼발에 주사 바늘을 두 번 꽂아서 이리 저리 찔러보았지만 혈관을 못 찾고 실패했다. 미안해하면서 정맥담당 간호사한테 부탁하겠다고 하고 혈압과 체온만 재고 갔다.

 

 

  아침 8시 즘에 정맥담당 간호사님이 왔다. 보통 주사기를 꽂으려고 하기에 “나비 바늘로 안 해요?”하고 물었더니, “바늘 굵기는 비슷해요.”하면서 그대로 푹 찔렀다. 이쪽으로 찔렀다 저쪽으로 바늘을 돌려 찔렀다 서너 번 찔렀는데도 혈관을 못 찾았다. 무지 아팠다. ‘나비바늘을 써 달라는 부탁을 들어주지 않더니,,,’짜증이 좀 났다. 간호사님이 나비바늘을 다시 가지고 와서 발등에 꽂았다. 처음에 피가 나오지 않아서 또 이쪽저쪽으로 찔러보다가 겨우 채혈을 했다.

채혈하느라고 열두 번 넘게 찔렀으니,,,, 나중에 채혈하고 항암주사 맞고 채혈하고 항암하고 할 텐데, 그때는 어쩌나 싶었다.

문득 입원 전에 내가 썼던 글이 엉터리였기 때문에 이렇게 여러 번 찌르나 보다 하는 생각이 나서 피식 웃음이 났다. “왕주사는 싫어요.”라는 글에서는 왕주사 대신에 작은 주사 여러 번 나누어 맞겠다고 했다가, “하느님은 눈치가 없으시다.”라는 글에서는 주사 맞을 때 한 방에 성공하게 해달라고 했었다. 왕주사 대신에 작은 주사 여러 방 맞겠다고 했더니, 크게 아플 걸 나누어서 아프게 하느라고 주사 바늘 여러 번 찔렀나보다 생각하기로 했다.

‘하느님도 참, 내가 이랬다 저랬다 했지만, 콩떡같이 말씀드리면 찰떡같이 알아들으실 일이지, 헷갈린 척 하시기는........’. 불평하고 싶었지만 속 넓은 내가 이번 한 번만 참아드리기로 했다.

 

 

  일어나기 힘들 정도로 많이 아파서, 오전 내내 누워서 기도했다. 자비의 기도를 할 때는 “예수님의 수난을 보시고 저희와 온 세상에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기도 말 대신에“저의 수난을 보시고 저희와 온 세상에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기도가 되었다. 내 졸글 “소화 데레사 성녀가 한국에 다녀가셨나요?”에 언급된 대로, 하느님께서는 아주 작은 사소한 일상을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봉헌하는 것을 기뻐하실 것이다.

 

 

  차동엽 신부님의 책 <행복선언>에 나오는 말씀이 생각난다.

  <고통에 사랑을 담아 바쳐라.> p.199

“고통을 소극적으로 당하지만 말고 오히려 봉헌하는 것도 행복의 비결이다. 소화 데레사는 작은 고통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주님 앞으로 가져와 봉헌하였다. 소화 데레사는 작은 고통의 가치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때, 기도하지도 선을 행하지도 못할 때 , 그런 때는 작은 일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그런 작은 일들은 이 세상의 위대한 것보다, 극심한 순교의 고통보다 더 예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소화 데레사는 이 작은 일들을 봉헌하면 예수님이 기뻐하신다고 생각하였다. 그녀가 남긴 마지막 시에는 이런 보석이 박혀 있다.

"사랑하며 고통을 겪는 것은 가장 순수한 행복입니다."

소화 데레사가 성녀가 된 것은 바로 이런 미소한 고통의 봉헌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영성이 오히려 시성에는 걸림돌이 되었다. 소화 데레사를 시성하려고 하자 동료수녀들이 반대 의견을 냈다고 한다.

"소화 데레사는 별 업적도 없는데 왜 시성하려고 합니까?"

이에 대한 교황 바오로 6세의 답변은 오늘 우리를 향한 매력적인 초대다.

"성녀는 지극히 작고 평범해 보이는 일에도 큰 사랑을 담아 실천했습니다. 이것이 소화 데레사를 시성한 이유입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셔서 모든 것을 어린이처럼 의탁하시고, 사소한 일들에서부터 커다란 고통까지 모두 사랑으로 봉헌하실 수 있었을 것이다. 성녀께서는 하느님 사랑의 크기를 우리보다 더 많이 헤아릴 줄 아셨다. 바로 그 점이 그분을 위대하게 한 것이리라.

데레사 성녀의 그 작은 봉헌들을 대단하게 여기셔서 성녀가 될 수 있게까지 은총으로 이끌어주신 하느님께서 그럼 엉터리 레지나도??? 크하하하하...(멋쩍어서 웃는 소리임 ㅋ) 그래, 가당치도 않은 희망사항이기는 하다. 그래도 나는 죽는 순간까지 성인을 흉내 낼 수 있기를 꿈꿀 것이다. 그런 바람이 오히려 나의 겸손이고 나를 지으신 하느님께 대한 감사이다.

 (후략)

 

   - 2011년 9월 23일 엉터리 레지나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