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사랑을 담아 바쳐라.
2011년 9월 7일 수요일 (수술 다음 날)
새벽에 수술 후 채혈을 하러 간호사님이 왔다. 왼발에 주사 바늘을 두 번 꽂아서 이리 저리 찔러보았지만 혈관을 못 찾고 실패했다. 미안해하면서 정맥담당 간호사한테 부탁하겠다고 하고 혈압과 체온만 재고 갔다.
아침 8시 즘에 정맥담당 간호사님이 왔다. 보통 주사기를 꽂으려고 하기에 “나비 바늘로 안 해요?”하고 물었더니, “바늘 굵기는 비슷해요.”하면서 그대로 푹 찔렀다. 이쪽으로 찔렀다 저쪽으로 바늘을 돌려 찔렀다 서너 번 찔렀는데도 혈관을 못 찾았다. 무지 아팠다. ‘나비바늘을 써 달라는 부탁을 들어주지 않더니,,,’짜증이 좀 났다. 간호사님이 나비바늘을 다시 가지고 와서 발등에 꽂았다. 처음에 피가 나오지 않아서 또 이쪽저쪽으로 찔러보다가 겨우 채혈을 했다.
채혈하느라고 열두 번 넘게 찔렀으니,,,, 나중에 채혈하고 항암주사 맞고 채혈하고 항암하고 할 텐데, 그때는 어쩌나 싶었다.
문득 입원 전에 내가 썼던 글이 엉터리였기 때문에 이렇게 여러 번 찌르나 보다 하는 생각이 나서 피식 웃음이 났다. “왕주사는 싫어요.”라는 글에서는 왕주사 대신에 작은 주사 여러 번 나누어 맞겠다고 했다가, “하느님은 눈치가 없으시다.”라는 글에서는 주사 맞을 때 한 방에 성공하게 해달라고 했었다. 왕주사 대신에 작은 주사 여러 방 맞겠다고 했더니, 크게 아플 걸 나누어서 아프게 하느라고 주사 바늘 여러 번 찔렀나보다 생각하기로 했다.
‘하느님도 참, 내가 이랬다 저랬다 했지만, 콩떡같이 말씀드리면 찰떡같이 알아들으실 일이지, 헷갈린 척 하시기는........’. 불평하고 싶었지만 속 넓은 내가 이번 한 번만 참아드리기로 했다.
일어나기 힘들 정도로 많이 아파서, 오전 내내 누워서 기도했다. 자비의 기도를 할 때는 “예수님의 수난을 보시고 저희와 온 세상에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기도 말 대신에“저의 수난을 보시고 저희와 온 세상에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기도가 되었다. 내 졸글 “소화 데레사 성녀가 한국에 다녀가셨나요?”에 언급된 대로, 하느님께서는 아주 작은 사소한 일상을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봉헌하는 것을 기뻐하실 것이다.
차동엽 신부님의 책 <행복선언>에 나오는 말씀이 생각난다.
<고통에 사랑을 담아 바쳐라.> p.199
“고통을 소극적으로 당하지만 말고 오히려 봉헌하는 것도 행복의 비결이다. 소화 데레사는 작은 고통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주님 앞으로 가져와 봉헌하였다. 소화 데레사는 작은 고통의 가치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때, 기도하지도 선을 행하지도 못할 때 , 그런 때는 작은 일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그런 작은 일들은 이 세상의 위대한 것보다, 극심한 순교의 고통보다 더 예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소화 데레사는 이 작은 일들을 봉헌하면 예수님이 기뻐하신다고 생각하였다. 그녀가 남긴 마지막 시에는 이런 보석이 박혀 있다.
"사랑하며 고통을 겪는 것은 가장 순수한 행복입니다."
소화 데레사가 성녀가 된 것은 바로 이런 미소한 고통의 봉헌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영성이 오히려 시성에는 걸림돌이 되었다. 소화 데레사를 시성하려고 하자 동료수녀들이 반대 의견을 냈다고 한다.
"소화 데레사는 별 업적도 없는데 왜 시성하려고 합니까?"
이에 대한 교황 바오로 6세의 답변은 오늘 우리를 향한 매력적인 초대다.
"성녀는 지극히 작고 평범해 보이는 일에도 큰 사랑을 담아 실천했습니다. 이것이 소화 데레사를 시성한 이유입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셔서 모든 것을 어린이처럼 의탁하시고, 사소한 일들에서부터 커다란 고통까지 모두 사랑으로 봉헌하실 수 있었을 것이다. 성녀께서는 하느님 사랑의 크기를 우리보다 더 많이 헤아릴 줄 아셨다. 바로 그 점이 그분을 위대하게 한 것이리라.
데레사 성녀의 그 작은 봉헌들을 대단하게 여기셔서 성녀가 될 수 있게까지 은총으로 이끌어주신 하느님께서 그럼 엉터리 레지나도??? 크하하하하...(멋쩍어서 웃는 소리임 ㅋ) 그래, 가당치도 않은 희망사항이기는 하다. 그래도 나는 죽는 순간까지 성인을 흉내 낼 수 있기를 꿈꿀 것이다. 그런 바람이 오히려 나의 '겸손'이고 나를 지으신 하느님께 대한 '감사'이다.
5년 전에는 수술 부위에 붕대를 감고 나왔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가제를 대고 테잎이 붙여져 있다. 간호사님이 와서 그 위로 서지브라를 입혀주었다. 누워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착용하고 있으라고 했다.
폐에 마취가스가 남아있으면 안되니까 심호흡을 하라고 했다. 너무 많이 하면 어깨가 결릴 수 있으니까 15분마다 10번씩 하라고 했다. 가래가 나오면 꼭 뱉어내라고도 했다.
오후에 아빠가 오셨다. 아빠는 모레 동생과 함께 미국에 가신다. 한 달간 계실 계획이란다. 내 상태가 전보다 훨씬 나아보여서 반가워하셨다. 저녁에 동생과 아빠는 조카를 맡겨놓은 대전 남동생 집으로 갔다.
죽을 한 끼 먹고 밥을 먹는데, 위가 꼼짝도 안 하는지, 명치가 답답하고 아파서 먹기 힘들었다.
청소하시는 분은 하루에 몇 번씩 병실을 들락거린다. 병원건물이 공기 정화가 잘 되어서 음식냄새도 화장실 냄새도 남아있지 않다.
항생제 주사는 오늘 하루만 세 번 맞는다고 한다.
저녁에도 미열이 났다. 폐에 마취가스가 남아있어서 그렇다면서 복도에서 천천히 걸어보라고 했다. 발목 근처에 꽂힌 정맥주사관이 막힐까봐 걱정되었지만, 일어나서 좀 걷기로 했다. 5년 전에는 수술 후 사흘만엔가 처음 일어났을 때, 목 아래쪽부터 가슴 전체의 살점이 쏟아져 내릴 듯이 아팠었는데, 이번에는 움직일 만했다.
병실 복도에서 다른 유방암 수술환자들을 만났다. 내 것보다 작은 림프액통 두 개를 달고 나온 사람도 있었고, 방사선 치료를 위해 심장박동기를 옮길 수가 없어서 그냥 전절제를 했다는 분도 있었다. 같은 병실에는 12시간 동안 유방성형수술을 한 환자가 혈관 하나가 막혔는지 얼굴에 멍이 들어서 다시 두 시간 재수술 한 환자가 있다고 했다. 어휴. 무서워라. 재건수술 안 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가 큰 어떤 환자는 “나는 수술하고 나왔는데, 하나도 안 아팠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 아팠다는데.. 내가 수술한 사람 맞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라고 했다. 아무리 부분절제했다지만 그러는 수도 있나 싶었다. (대신 그 환자는 내가 퇴원할 때까지 림프액 양이 줄지 않아서 퇴원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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