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11년

♣♣ 수술 전 사흘 - '공감'은 사랑의 증거

김레지나 2011. 9. 18. 17:29

'공감'은 사랑의 증거

 

2011년 9월 3일 토요일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의사 선생님이 내 기록을 보시더니 MRI와 PET를 찍어야한다고 하셨다면서 예정보다 하루 먼저 입원하라고 했다.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

 

사진관에 가서 정식으로 사진을 찍었다.

어떤 선생님이 내가 “영정사진이나 준비해둘까?”라고 했더니, “선생님은 가족들에게 미안하지 않으세요?”하고 물었었다.

음~~ 뭐 어떤가? 만일의 경우에 준비 안하고 있는 것보다는 낫겠고만...^^

항암치료 다 끝나고 나면 영영 폭삭 늙을지도 모르는데..

아나운서 오영실은 갑상선암이었는데도 영정사진도 준비하고 유서도 준비했다던데..

또 유지니오 눈높이 선생님도 난소암 0기였는데 베개 밑에 유서를 써두었다던데..

전에 마리아 선생님 영정사진이 꽃밭에서 환하게 웃는 사진이었는데, 그렇게 환한 게 마음에 들었었다.

그래서 나도 옷을 아주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색깔로 골랐다.

얌전한? 내 이미지에는 맞지 않지만...ㅋㅋ.

5년 전에도 수술 전에 사진을 찍었는데,, 그 사진사는 파일을 안 주었었다.

이번 사진사 아저씨는 즉석에서 작업해서 사진을 파일로 주었다.

5년 전 사진과 비교해보니 참 많이도 퍼졌다.~

원판이 달리 보이면 안된다고 포토샵 작업을 그닥 안 해주기는 했지만

2주일을 집에서 쉬었더니 부기가 많이 빠져서 괜찮아보였다.

살짝 미소 짓는 표정이 그렇게 마음에 들 수가 없다.

히야~~모나리자가 울고 갈 정도다.

사진이 잘 나와서 입원 걱정도 잊어버릴 정도로 기분이 엄청 좋아졌다. 헤헤..

다음에 살이 좀 더 빠지면 사진사 아저씨가 권한 대로 정장을 하고 찍어야겠다.

동생이랑 K샘이랑 L님이랑 아빠 신부님께 사진을 보냈다.

이쁜 레지나 얼굴 보시면서 기도해주시라공...우하하.

 

서둘러 챙겨서 특전미사에 갔다.

이번에 서품 받으시고 본당에 새로 오신 보좌신부님이 미사를 집전하셨다.

미사 후에 새 사제로서 신자들에게 특별히 안수를 해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렇지 않아도 미사 끝나고 안수를 청하고 싶었는데 잘 되었다.

보좌 신부님께서는 정성껏 마음을 다해 안수해주셨다.

쑥스러워서 평소에는 수녀님께 인사도 잘 하지 않았는데. 따로 따로 인사드리면서 “저 내일 입원하거든요. 기도해주세요.”하고 부탁드렸다.

새로 오신 주임신부님께도 기도를 부탁 드렸다. 만난 지 얼아 안 되어서 염치없었지만 ^^

내가 너무 활짝 웃으며 부탁드렸나 보다. 주임 신부님께서 “누가 입원해요?”하고 확인하셨다.

 

 

 

2011년 9월 4일 일요일

입원실을 배정 받고 짐을 푼 다음 간호사로부터 입원에 관련된 여러 설명을 들었다.

오른쪽 팔에 환자번호와 이름이 적힌 팔찌를 채워주었다.

2인실에 들어갔는데, 옆의 환자는 갑상선암 수술을 하러 왔다고 했다.

초기라서 목에 흉터가 남지 않는 로봇수술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특별히 힘든 일이 없을 것 같아서 남편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간호사가 MRI 부작용에 대해 설명하고 동의서를 받아갔다. MRI를 찍으면서 조영제를 주사해야 한단다. 수술까지 쓰일 정맥관을 다리에 꽂았다. 정맥을 따라 손가락 길이만큼?의 실처럼 얇은 관을 집어넣는 주사이다. 한 번 꽂아두면 나중에 살을 찌르지 않고도 그 관에 주사바늘을 찌르면 아프지 않아 좋다. 대신 처음 맞을 때는 많이 아프다.

5년 전에는 정맥주사 맞으면서 “벌써 아프잖아욧!”하고 하느님께 소리 질렀었는데...

그때 생각하면 내가 참 우스웠지 싶다.

 

새벽 1시에 MRI를 찍으러 갔다. 그 전에 그에 관한 설명 등을 하느라고 간호사가 여러 번 다녀갔다.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정맥관이 다리 접히는 부분에 꽂혀 있어서 움직일 때마다 아팠기 때문에 이송담당 아저씨가 휠체어에 태워서 핵의학 검사실로 데려다 주셨다.

전에 MRI를 찍을 때 간호사가 귀마개를 깜박 잊고 안 주는 바람에, 통 속에 들어가서 총쏘는 것 같은 소리를 듣느라고 고생했던 기억이 나서, 귀마개 달라고 두 번 이야기 했다가 간호사한테 ‘자세 먼저 잡고요.’하고 핀잔을 들었다.

20분인가 25분인가 정확한 시간은 잊어버렸는데, 꽤 오랫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엎드려 있으려니까 명치끝이 답답하게 아파서 혼났다. 종일 엎드려 지내야하는 환자나 호흡이 곤란한 환자는 얼마나 힘들까 싶었다. 찍는 중에 조영제를 주사 맞았는데, 몸이 화끈거리면서 불편했다.

끝나고 추운 대기실에서 한참을 기다려서야 이송담당 아저씨가 와서 병실로 데려다 주셨다.

 

밤에 간호사가 여러 번 들렀고 MRI 찍느라고 깊은 잠을 못 잤다.

PET CT 촬영을 위해서 12시부터 물도 먹지 않는 금식이다.

 

 

2011년 9월 5일 월요일

 

수술 하고 나서 예전처럼 참을 수 없이 아프면 옆 환자에게 방해가 되겠다 싶어서 1인실로 옮겨 달라고 했다. 수술 후 사흘만 있을 거다. 옆 환자가 내일 수술이라서 밤새 간호사님이 들락거리면 나도 잠을 제대로 못 자겠다 싶기도 했다. 어차피 입원 보험비로 해결할 거니까 병실료 비싼 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또 엄마랑 동생 율리아도 같이 자야하니까~~

 

수술 전 채혈을 했다. 간호사가 놀랍게도 왼팔에서 단박에 피를 뽑았다. 팔에서 혈관을 찾는 간호사는 거의 만나본 적이 없었는데.

 

PET CT 예약이 안되어 있었던 터라서 오늘 찍게 될지 알 수 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른다면서 링겔을 맞으라고 했다.

왼쪽 발에 꽂았던 정맥관이 어찌된 일인지 막혀버려서 한참을 시도해보아도 링겔액이 들어가지 않았다.

다시 정맥주사 담당 간호사가 와서 오른쪽 발 복사뼈 반대편 쪽에 정맥관을 새로 꽂았다. 무지 아팠다. 어휴~~ 내가 몬 산다... 정맥관을 뽑은 왼쪽 발에서는 피가 많이 났다.

금식했기 때문에 식염수와 함께 제산제를 맞았다.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기도하면서 비몽사몽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있는데, 어떤 분이 불쑥 들어오셨다. 천주교 원목실에서 기도 봉사 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셨다. 어떻게 알고 오셨느냐고 했더니, 모든 환자들을 다 돌아본다고 했다. 잠깐 기도를 해주었고, 내가 두 번째 수술이라고 하니까 걱정이 되었던지, 병자성사를 청할 거냐고 물었다. 이번에는 신부님 바쁘실까봐 원목실에 연락하지 않으려고 했었다고 말하니까, 수술 시간이 잡히면 전화달라고 했다. 신문을 주고 가셨는데 바빠서?? 읽지 못했다.

 

오후에 엄마가 병간호를 위해 짐을 싸들고 오셨다.

엄마는 올해 일흔 넷이시다.

엄마는 올해 들어 동생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입원해 있을 때 병간호하셨고,

제부가 미국에 간 뒤로 혼자 남은 동생네에서 한 달 같이 사셨고,

동생 집이 나간 뒤로는 어린 조카랑 동생이랑 같이 사시느라 고생하셨고,

최근에 조카가 폐렴으로 입원해서 신경 쓰셨고,

이번에는 내 입원 수발까지~~ 아무래도 쓰러지시겠다 싶었다.

다행히 엄마의 컨디션은 그럭저럭 좋아보였다.

 

링겔을 꽂고 침대에 누워서 사제들을 위한 기도 등을 하고 있을 때,

원목실의 수녀님이 오셨다.

아무래도 신부님이 바쁘셔서 병자성사는 주시기 힘들고, 대신 기도해주시러 오신 것 같았다.

수녀님은 이것저것 자상하게 물어보셨다.

나는 밝은 표정으로 대답을 잘 했다.

수녀님이 아이들은 몇 살이냐고 물어보셨고, “중 1, 고 1이에요.” 하고 대답했더니, 수녀님이 “아직 어리네요.”라고 하셨다.

“네. 그래도 예전에 수술 받을 때보다는 컸지요. 그때는 너무 어렸었는데.”라고 말하다가 나는 그만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수녀님이 “아이들 생각하면 힘들지요?”,.... “예수님이 손잡아 주실 거예요. 예수님 얼굴을 상상해보세요. 어린 아이들이 입원하면 꼭 예수님 얼굴을 상상해 봐라. 예수님 눈은 어떻게 생겼니? 웃고 계시니?.... 하고 물어봐요. 수술이 끝나고 예수님은 지금 뭐하고 계시지? 하고 물어보면 아이들은 제 손을 꼭 잡고 계셔요.하고 대답하더라구요. 자매님도 예수님 얼굴 상상해 보셨어요?”

나는 울먹이느라 대답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수녀님도 참, 괜한 걸 물어보셔서 스따~일 다 구기게 하신다.

나는 “예, 저는 예수님 본 적이 없는데, 엄마는 보셨대요.”라고만 했다.

옆에 계시던 엄마가 말씀하셨다.

“얘 수술장에 들어갔을 때, 예수님을 세 번 봤어요. 한 번은 양 팔을 벌리고 눈을 감고 계셨고, 한 번은 아래를 보면서 손짓으로 바쁘게 일하고 계셨고, 한 번은 바위 위에 앉아서 편안히 쉬고 계셨어요.”

수녀님이 그래서 기분이 어떠셨느냐고 물으셨다.

엄마는 “예수님이 편안히 쉬고 계시니까 저도 편안해지더라구요.”라고 대답하셨다.

나는 5년 전에 엄마의 말을 듣고 하느님께 오히려 삐쳤던 이야기를 수녀님께 간단히 해드렸다. 또 수술 후 퇴원해서 “내가 너에게 의지를 주었다. 그것도 내가 준 것이다.”라는 말씀을 들었던 이야기도 했다.

그런데 눈물이 자꾸 나서 말이 자꾸 끊겼다.

“어, 이거 아주 아주 신나는 이야기인데, 울면서 이야기 한 적이 없었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네요.”

수녀님이 조심스럽게 물으셨다.

“그럼, 자매님은 하느님이 사랑하시면 고통을 안 주셔야한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아니요.”

그건 분명 아니다. 그래서 우는 건 아니다.

가끔은 주님의 사랑을 믿을 때 오히려 고통이 견디기 힘들 때가 있다는 걸 말씀 드리고 싶었다. 아이들이 넘어졌을 때, 엄마가 곁에 없으면 눈만 꿈벅꿈벅하면서 제법 의젓하게 아픔을 참고 있다가, 엄마가 눈에 보이면 그만 앙~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것과 같은 이치일 거다.

하지만 나는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그만 입을 다물었다.

수녀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마 성령님께서 느끼시는 마음을 자매님이 같이 느끼는가 봐요.”

수녀님께서는 내 두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해주고 가셨다.

 

수녀님이 가시고 나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니, 수녀님 말씀이 참으로 맞다.

내가 운 것은 내 마음이 괴롭거나, 고통이 두렵거나, 암이 재발한 것이 억울하거나, 죽음이 두렵거나... 뭐 그런 이유 때문은 분명 아니었던 것 같다. 내 맘 속의 평화는 언제나 제 자리에 흔들림 없이 있는 것 같다.

다만 나를 지켜보고 계시는 성령님의 마음, 나를 애잔하게 여기시는 마음을 나도 나누어 느꼈나 보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순간에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의 작은 한숨까지 같이 느끼신다.

아빠처럼 연인처럼~

공감.

공감이야말로 사랑의 증거 아닌가.

나자로의 무덤 앞에서 나자로가 살아 나오게 될 줄 아시면서도 나자로와 가족들의 아픔을 같이 느끼시고 눈물을 흘리셨던 예수님처럼.

그리고 내가 깔깔거리며 전화를 해도 마음 아파하면서 울먹이던 친구들의 마음처럼.

그 사랑이 느껴지면 그만 나도 울게 된다.

(내가 잘 이겨낼 거라고 걱정이 안 된다고 하신 분이 계셨는데, 음~~ 그럼 그분은 왜 그러시지?? 좀 수상하시넹....삐쳐버릴까?ㅋㅋ)

 

동생, 율리아가 왔다.

남편이 가져다 준 매트를 바닥에 깔고 병실에서 같이 자기로 했다.

동생은 9일 미국으로 출국한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연골이 찢어진 것 같다고 해서 병원에서 진료도 받았다.

유방외과 진료도 내일 받는다.

연골은 수술하기에는 어중간한 정도라고 한다.

닳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고 했다.

 

저녁이 다 되어서야 침대 머리맡에 있는 스피커로 PET CT를 하게 되었다는 방송이 나왔다. 이송담당 아저씨가 휠체어를 태워 옮겨주었다.

핵의학 검사실은 기계 때문에 냉방이 아주 세다. 추웠다.

남자 간호사가 방사성 약품을 주사하러 왔다. 오른발에 꽂은 정맥관이 시원찮게 보였던지 다리 이곳 저곳을 살펴 보았다. 나는 “또 새로 뚫어요? 이쪽이 두 번째인데..”하고 겁내는 소리로 물었더니, “그래요? 그럼 여기 한 번 맞아볼까요?”하면서 무슨 기계로 주사약을 천천히 집어넣었다.

50분간 약품이 온 몸에 퍼지기를 기다리면서 추운 방에 이불을 덮고 누워있었다.

그리고 나서 PET CT 기계 속에서 25분간 누워 있었다.

감기 때문에 기침이 나서 사진이 잘 나올까 염려되었지만, MRI 촬영보다는 덜 힘들었다.

머리도 찍느냐고 물었더니, 촬영하시는 선생님이 머리 아랫부분도 포함된다고 하셨다.

의사 선생님이 뇌전이를 알아보려고 그런 처방을 내리신 것 같았다.

촬영이 끝나고 휠체어를 타고 기다리고 있으니, 남편이 와서 병실로 옮겨주었다.

 

PET를 찍고 나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환자 식사가 보험이 되어서인지, 5년 전 만큼 식사가 훌륭하지는 않다. 보호자 식사는 신청하지 않았다. 한 끼에 만 원이라 비싸기도 하려니와, 내가 보통 3분의 1공기밖에 먹지 않기 때문에 반찬만 더 있으면 두 사람 식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내일 수술을 위해서 밤 12시부터는 다시 금식이다. 정맥주사는 내일 아침에 다시 꽂기로 하고 뽑았다.

 

늘 웃으시는 의사 선생님이 회진을 오셨다.

이번에 자리 잡은 암은 예전 것보다 예후가 훨씬 나쁜 놈이라고 했다. 호르몬 수용체도 없고 HER 2 양성이라고 했다.

들은풍월로, “그럼 허셉틴을 맞아야겠네요? 요즘에는 허셉틴이 보험이 되나요?”하고 물었더니, 1센티가 넘어야 보험이 적용된다고 했다. 보험 적용이 안되면 수천만원이 들어가는 주사약이다. 이번 놈은 초음파 결과는 7밀리인데, 어제 찍은 MRI 상으로는 1.4센티라고 했다. 암세포가 크기를 바라야할지 작기를 바라야할지 모르겠다 싶어서 웃었다.

'보험이 다 되게 해주지 이런 경우도 있네.'

의사 선생님이 “부분절제를 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하구요. 전절제를 하면 방사선 치료를 안 받아도 되구요. 어떻게 하시겠어요?”했다.

“남은 조직에서 또 재발할까 계속 마음 졸여야하잖아요? 그냥 전절제 해주세요.”

의사 선생님은 내 선택에 안심을 하는 눈치였다.

(울 학교 선생님의 아버님이 올 해 돌아가셨는데, 사인 중의 하나 유방암 방사선 치료로 인한 폐손상이었다고 한다.

부분절제 하는 것과 전절제 하는 것은 재발률에서 거의 차이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나처럼 다시 암이 생긴 경우에는 사정이 좀 다르다.)

 

나는 웃으면서 의사선생님에게 부탁했다.

“저 예전에 수술할 때 오른팔이 이상하게 꺾였었는지 등 근육이 꼬여서 너무나 아팠거든요. 이번에는 팔 올릴 때 살살 올려주세요. 수술 잘해주세요.”

의사 선생님이 알았다는 듯이 웃고 나가셨다. “예”라고 하셨던 것도 같고...

사실 마취상태에서는 팔을 꺾을 때 저항하는 근육이 없어서 이상하게 꼬이는 게 당연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내일 수술을 하게 된 유방암 환우들 여러 명을 모아서 간호사님이 수술 전 교육을 했다.

수술 시간은 평균 마취 30분, 수술 2시간, 회복 1시간쯤 걸린다고 했다.

병실에서 잠시 쉬었다.

 

주치의 선생님의 교육이 있었다. 수술 부작용 등에 대해 설명한 후에 림프절 생검을 해야하는 환자들만 남겨놓고 림프절 생검에 대한 설명을 했다. 수술 후 림프액이나 진물을 담는 통을 달고 나오게 되는데, (큰 통이 있고 작은 통이 있다고 한다.) 혹시 색깔이 선홍색이면 수술 부위에서 출혈이 있는 거니까 다시 수술을 해야 된다고 했다. 수술하면서 신경이 다치면 어깨뼈가 튀어 나오는 등의 장애가 남을 수 있다고 했고, 수술장에서의 림프절 생검 결과 이상이 없어서 림프절을 들어내지 않았는데, 최종 조직검사에서 미세하게라도 림프절 전이가 있는 것으로 판명되면 재수술을 해야한다고 했다.

그런 수술 부작용만 없어도 좋겠는데....

설명이 끝난 후 수술 동의서, 유전자 검사 동의서 등을 썼다.

 

림프절이란 림프액이 흐르는데 정류장 같은 역할을 하는 곳으로 정화장치나 면역소와 같은 곳이란다. 5년 전에는 처음부터 액와림프절과 목으로 올라가는 림프절까지 다 들어내는 수술을 계획했었기 때문에, 림프절 생검을 위한 절차를 밟지 않았었다. 대신 왼쪽 부분절제를 위해서 종양을 염색하기 위해 꽤 아픈 주사를 맞았던 기억이 난다.

수술장에서 암세포 부위에서 가장 가까운 림프절을 한두 개 떼어내서 즉석으로 전이여부를 검사한 다음 이상이 없으면 림프절 절제를 하지 않는다.

 

림프절 생검 준비로 다시 핵의학 검사실로 휠체어를 타고 이동했다.

먼저 방사선 동위원소와 초록색 염색약을 종양이 있는 부분에 넣어서 어떤 림프절에 먼저 도달하는지 염색을 해야 했다. 주사는 물론 아팠다.

주사를 맞은 후에 약품이 퍼지기를 기다렸다가 어떤 통 속에 들어가서 또 사진을 찍었다. 기체 상태의 약품인 것 같았는데 몸 형태에 맞추어 그리듯이 뿌렸다. 기계가 가슴 왼편으로 돌아가자 이번에는 이마에서부터 몸 가운데로 무언가를 뿌리고 사진을 찍었다.

 

휴~

오늘 밤에는 푹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