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먹은 게 뭐야? 아~해봐! 뭔데?~"
- 광주가톨릭대학교 평생교육원 원장 조영대 프란치스코 신부
보성에서 사목하던 1년 전 미사 중에 있었던 일이다. 영성체 하는 엄마에게 3살배기 아이가 큰 소리로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엄마, 먹은 게 뭐야? 아~해봐! 뭔데?~" 계속해서 크게 물어오는데 애 엄마가 “쉬! 쉬” 할 뿐 입에 있는 것이 무엇이라고 가르쳐 주거나 나눠 주지도 않으니 아이는 울면서 더 크게 물어대는 것이었다. 신자들이 모두 그 장면을 보며 웃음을 그치지 못했다. 나도 참지 못하고 결국 웃고 말았다. 아이 엄마는 하는 수 없이 아이를 데리고 성당 밖으로 나갔다. 그래도 우리의 웃음은 한동안 그치지 않았다.
영성체 후 성작을 닦으면서 그 아이의 질문에 생각이 모아졌다. 우리가 모시는 것이 무엇인가, 아니 우리가 모시는 분이 누구이신가를 알고나 영하는가? 우리 하느님이신데... 우리 사랑, 우리 생명, 우리 행복이신데... 나를 위해 목숨을 내놓은 분이신데...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 먹히기를 간절히 원하시는데... 제대로 알고나 영하고 있는가 반성했다.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는 사제들이 사제가 무엇인지 깨닫는다면 죽고 말 것이라 했다. 그렇듯 우리가 성체가 무엇인지 제대로 깨닫는다면 가슴이 벅차올라 쓰러지고 말 것이다. 나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성체 찬미가’(Adoro te devote)를 바칠 때마다 성체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어쩌면 이토록 아름답고 절절하게 고백해낼 수 있었을까 탄성이 절로 나온다.
과연 예수 그리스도께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참으로 살아 계신다. 영성체 때 우리 손 위에 놓이고 우리 입 안에 들어오는 것은 그냥 빵과 포도주가 아니라 분명 우리 주님의 몸이며, 사실 우리 주님, 예수님, 하느님이시다.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절정인 이 절대 진리에 대한 믿음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능한 것이다. 하느님의 은총 없이는 성체의 신비를 결코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 성체의 신비에 대한 믿음은 겸손하고 간절하게 바치는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가장 가슴 벅찬 하느님의 은총이다.
성체는 하느님 사랑의 결정체이다. 예수님은 죄와 죽음의 사슬에 묵인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세상에 사람이 되어 오시어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고, 그것도 부족하여 당신의 살과 피를 영원한 생명의 양식으로 우리에게 내어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먹히는 방법을 통해 우리와 하나 되고자 하셨다. 영성체는 우리 인간이 하느님과 하나 될 수 있는, 즉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일치와 친교를 위한 최고의 방법이다. 얼마나 우리 인간을 사랑하셨으면, 얼마나 우리 사람과 하나 되고 싶으셨으면 그렇게 먹히는 방법까지 택하셨을까?
그런데 그토록 은혜로운 성체를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모시고 있는가? 성녀 힐데가르트가 본 환시에 의하면, 사람들이 성체를 모시려고 사제에게 나아갈 때 다섯 부류의 서로 다른 모습의 사람들이 있다. 하나는 빛나는 몸에 불타는 영혼, 두 번째는 그림자같이 희미한 몸에 어두운 영혼, 세 번째는 산발한 머리에 인간 악행의 온갖 더러움으로 가득 차 있는 영혼, 네 번째는 날카로운 가시에 둘러싸여 있는 몸에 나병에 걸린 영혼, 다섯 번째는 피 흐르는 몸에 썩어가는 시체처럼 악취를 풍기는 영혼이다.
과연 우리는 어떤 몸과 영혼을 하고 영성체를 하러 나가는가? 성체에 대한 진정한 믿음과 흠숭, 갈망과 사랑으로, 두려움과 떨림, 송구스러움과 감사함으로 영성체하고 있는가? 우리의 죄 많은 탐욕의 손과, 험담과 거짓으로 깨끗하지 못한 입과, 교만과 미움의 가시가 돋쳐있는 마음 안에 주님을 모시는 모령성체를 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태리에서 생긴 일이다. 생쥐가 감실을 뚫고 성체를 먹어버렸다. 그러면 생쥐가 먹은 것은 성체일까, 아닐까? 이 사건으로 심각한 신학논쟁이 벌어졌다. 수많은 각론을박 끝에 ‘성체는 분명 성체이나 생쥐가 믿음을 가지고 영했으면 성체의 효과를 볼 것이고 믿음이 없었으면 성체의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다.
우리는 성체의 효과를 충분히 얻을 만큼 성체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지니고 있는지 반성해 봐야 한다. 건성과 무감동으로 영성체 행렬에 끼는 우리가 되지 않기를...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엄마 입 속에 든 것이 무엇이냐며 다그쳐 물어대는 그 어린이의 해맑은 모습이 떠올라 다시금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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