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조영대 신부님

가을, 돌아감의 계절

김레지나 2010. 11. 7. 18:59

가을, 돌아감의 계절

 

- 광주가톨릭대학교 평생교육원장 조영대 신부

 

 가을바람이 지나가더니 푸르렀던 나뭇잎들이 빨갛게 노랗게 물들어 온 산야를 아름답게 꾸며주고 있습니다. 여름에는 푸름으로 우리의 마음에 활력을 안겨주더니 가을에는 땅으로 돌아갈 날을 곧 앞두고도 이토록 화려한 색들로 우리 눈을 즐겁게 해주는 나뭇잎들의 사랑에 고마움과 함께 절로 반성의 마음도 갖게 됩니다. 나는 지난 한 해 이웃들에게 얼마나 활력과 기쁨을 주며 살아왔는가, 나는 나를 비우며 다른 이들을 얼마나 사랑했는가 반성해 봅니다.

 들판은 가을걷이로 쓸쓸히 비어있고, 논두렁에는 하얗게 핀 억새들이 여름철 수해와 갑작스런 냉해로 큰 수심에 잠겨있는 농민들의 심정을 애통해하듯 바람에 하늘거립니다. 빈 들판을 바라보며 또 반성해 봅니다. 내 삶의 수확은 어느 정도일까... 씨앗들이 제 주인에게 나름의 수확으로 돌아가듯 나는 내 주인인 분께 무엇을 어느 정도 수확하여 바쳐 드리고 있는가...

 쌀쌀한 가을바람을 타고 오래된 중국 영화 ‘스잔나’의 주제가가 떠오릅니다. “해는 서산에 지고 쌀쌀한 바람 부네. 날리는 오동잎, 가을은 깊어가네. 꿈은 사라지고 바람에 날리는 낙엽, 내 생명 오동잎 닮았네. 부는 바람을 어이 견디리. 지는 해 잡을 수 없으니, 인생은 허무한 나그네. 봄이 오면 꽃 피는데, 영원히 나는 가네.” 백혈병으로 인해 죽음을 앞두고 있는 스잔나가 바람에 떨어지려고 하는 오동잎을 바라보며 자신의 서글픈 운명을 눈물로 노래한 것입니다.

 야속한 가을바람에 휘날리는 낙엽은 우리의 인생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생을 마감하고 우리의 본고향으로, 우리 생명의 원주인에게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고인의 명복(冥福)을 빌면서 사후(死後)의 삶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그저 결국 사라지고 말 세상 것들에만 마음을 쓰고 사는 사람들의 모순... 가요 ‘하숙생’이라는 곡에서도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마음 두고 살아야 할지를 깊이 생각하게 해주는 곡입니다. 유럽 어느 공동묘지 비문에 이런 글귀가 쓰여 있다고 합니다. “오늘은 내게, 내일은 너에게!” 인간은 누구나 반드시 죽는다는 점에서 죽음보다 더 확실한 사건도 없습니다. 그러나 죽음보다 불확실한 사건도 없습니다. 우리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반드시 죽을 우리들... 얼마나 오래 사느냐 하는 것보다 어떻게 살다 죽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인생의 대진리, 너무나도 상식적인 그러나 쉽게 잊어버리고들 사는 이 진리를 되새기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시간을 좀 더 알차고 성실하고 더 아름답게 엮어가야 됨을 이 가을에 빈 들판에서, 발끝에 차이는 낙엽에서 새롭게 배웁니다.

 시인 조태일님은 “가을엔”이라는 시에서 “가을은 나를 인간으로 돌아가게 하는 계절입니다. 인간은 울면서 태어나 울면서 돌아갈 운명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웃고 돌아갈 수 있도록 예쁘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낙엽 태우는 향기 그윽한 이 가을에 우리네 인생살이 돌아갈 곳과 돌아갈 때를 생각하며 지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