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조영대 신부님

욥의 고뇌

김레지나 2010. 8. 13. 11:24

욥의 고뇌는 바로 인간 전반의 고뇌요,

따라서 우리 자신의 고뇌이기도 하다.

 

 

욥은 큰 소리로 하느님을 부르지만

그분은 아무런 대답도 않으시고 침묵을 지키신다.

 

 

 

욥은 오직 그분을 직접 마주 대하여

그분의 해명을 요구하고 싶은 한 가지 염원만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가망 없다는 것,

하느님은 인간적 이해를 훨씬 벗어나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욥이 하느님께로 접근하는 것을 가로막는

하느님의 이 불가해성(不可解性)이

본래 그의 육신의 괴로움을 더욱 견딜 수 없게 만드는 더 큰 고통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부재를 느낀다는 점에서가 아니라 ,

오히려 그분의 침묵을 체험한다는 점에서 욥은 오늘날 우리와 비슷하다.

 

 

인간을 외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큰 소리를 지르려 한다.

 

 

그러나 하느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신다.

 

 

하느님 앞에서 인간은 하느님과 대화를 하지 못하고

독백만 하게 된다.

 

 

 

그리고 이 독백은

한번도 하느님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같고

 

 

또 그분을 움직여 어떤 반응을 보이게 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아예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 같다.

 

 

 

"그가 어디 계신지 알기만 하면,

당장에 찾아가서

나의 정당함을 진술하겠네.

 

 

변증할 말도 궁하지는 않으련만.

그가 무슨 말로 답변하실지를 꼭 알아야겠기에

 

 

그 하시는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어야겠네." (욥기 23,3-5)

 

 

 

욥은 그 시련의 끝에 가서야

비로소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물음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만약 하느님이 매번 변명을 해야 한다면

하느님이 아닐 것이다.

 

 

 

성경은 가까이 계실 뿐아니라

멀리 계시기도 하고,

 

 

말씀을 하실뿐 아니라

침묵을 지키시기도 하고,

 

 

자신을 드러내실 뿐 아니라

자신을 숨기시기도 하는....그런 하느님을 알고 있다.

 

                                                               

                                                                              - 헤르버트 하크-

 

 

 

한동안 글을 쓸 수 없었습니다.

너무도 가슴 아픈 일들이 많았기에..

 

 

욥처럼 착한 지인들이 왜 고통을 당해야만 하는지.....

 

 

고난은 절망이 아니라 돌아가는 길이라지만, 

그 돌아가는 길이 끝이 보이지않으니..

 

 

하지만 이 고난은 하느님의 나라를 

잘 받아들일 준비를 시키고, 

 

 

또 "하느님의 일"과 "하느님의 영광" 및

"성자의 영광"을 드러나게 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왜  착한 그들이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를 져야만 하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