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16주일(가) 강론 - "자비와 회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 성장과 관련하여 ‘자비하신 하느님’에 대한 비유로서 ‘가라지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원수가 밀농사에 해를 끼치고자 밀밭에 가라지 씨앗을 뿌려놓고 갔습니다. 종이 ‘가라지를 뽑아버릴까요?’ 하고 묻자 주인이 이르기를 ‘아니다.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라. 수확 때까지 내버려 두었다가 수확 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여라.’ 하였습니다.
저는 오늘 복음의 가르침을 두 가지 측면에서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로, 예수님께서는 가라지 비유를 통해 밀을 염려하여 가라지 뽑기를 미루는 주인처럼 하느님께서는 심판을 미루시는 자비의 주님이심을 일깨우고자 하셨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 의하면, 하느님은 정의의 하느님이지만 한없이 관대하시어 우리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 하느님께서 정의롭지 않아서 심판을 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너무나 자비롭고 관대하셔서 심판을 미루시고 회개의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심판을 미루시지 않고 정의대로 판결하시고 처벌하셨다면 우리는 여기 성하게 살아남아 있지 못할 것입니다.
(ex. 벼락 -> 병신들)
그러므로 하느님의 자비, 관대하심에 감사하면서 한시 바삐 회개해야 합니다. 가라지는 밀이 될 수 없어도 가라지 같은 사람은 밀같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서 자신이 혹시 가라지 같은 모습이지 않았는지 반성해봐야 하겠습니다. (ex...)
자기가 가라지 같은 모습을 지닌 지도 모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여기 우리 체험자들은 자신의 모습을 겸허히 진단하셨을 것이니 만일 자신이 가라지 같은 측면을 지니고 있다면 이젠 달라져야 합니다. 꾸르실료를 받았으면서도 여전히 성질 나쁘게 쓰면서 가라지 같이 굴어서야 되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가라지는 결국 뽑혀 불구덩이에 던져진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가라지의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언젠가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를 입은 사람답게 다른 이웃에게도 자비로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똥 묻은 개 재 묻은 개 나무란다듯이, 들보든 눈으로 티든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듯이 우리 형제들을 판단하고 험담하고 단죄하려 들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빚쟁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만 달란트를 탕감 받고서도 백 데나리온을 빚진 친구를 무자비하게 대한 못된 종과 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 빚 갚는 마땅한 길은 이웃을 자비롭고 관대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속해 있는 공동체들 안에서 가라지 같은 사람들이 뽑혀지기를 바라지 맙시다. 오히려 인내와 애정의 덕으로 더 기도해주고 사랑해 주고자 노력한다면 그 가라지 같던 형제 자매가 밀 같은 사람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제2독서의 말씀대로, 그것은 능하신 성령의 힘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나를 가라지 상태에서 밀의 상태로 변화시켜 주실 성령께서 그 자매도 변화시켜 주실 수 있습니다.
저희 안에 사랑으로 현존해 계시는 성령님, 당신은 저희를 속속들이 잘 아십니다. 저희 안에 가라지 같은 결점들을 제거해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다른 형제 자매들의 가라지 같은 모습들에 대해서는 인내와 관대의 마음을 가지게 해 주소서. 나약한 저희, 성령님의 전능하신 힘에 의탁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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