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는 반항의 장소
우리가 보살핌의 얼굴을 보지 않고 고통의 얼굴만을 바라본다면 불평과 불만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삶을 기록한 출애굽기 15-17장이나 민수기 11-18장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끊임없는 불평과 불만이다.
거의 매 구절마다 하느님께 반항하고 모세를 원망하고 반항하는 소리가 나온다.
이름한여 광야는 반항의 장소이다.
도대체 무엇이 이스라엘 백성 안에 있길래 그들은 하느님의 돌보심의 얼굴은 보지 못하고 고통의 얼굴만을 쳐다보면서 반항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먼저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원망하는 말을 들어보자.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에 막 들어섰을 때 이집트 병사들이 뒤쫓아오자 이스라엘 백성은 다음과 같이 아우성친다.
"이집트에는 묻힐 데가 없어서 우리를 광야로 끌어내어 여기에서 죽이려는 것이냐? 우리가 이럴 줄 알고 이집트에서 이집트인들을 섬기게 그대로 내버려 두라고 하지 않더냐? 이집트인들을 섬기는 편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다고 하지 않았느냐?" (출애 14,11-12)
어느 정도 광야길에 들어선 뒤 마실 물이 떨어지자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대들었는데, 얼마나 대들었던지 그 장소 이름이 '대들다, 반약하다'란 뜻을 지닌 '마라'이다(출애 15,22).
신 광야에서는 먹을 것이 없다고 하느님을 원망하는데 그 원망이 얼마나 노골적이고 배은망덕한지 보자.
"차라리 우리가 이집트 땅, 거기 고기가마 곁에 앉아 배불리 음식을 먹던 그때에 누가 우리를 주의 손에 넘겨서 죽게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그런데 너희들은 지금 우리를 이 광야로 끌로 나와 굶어 죽게 하고 있다." (출애 16,3)
방금 읽은 인용구문에서 매번 반복되는 단어는 이집트이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고통의 얼굴만을 쳐다보는 것은 이집트 때문이다.
이집트를 결코 놓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스라엘이 광야생활을 못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하느님을 원망하고 반항하는 것은
단순히 물과 음식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광야 삶에 대해 근본적으로 회의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삶의 의미를 보지 못한다.
해방도 좋고, 약속의 땅도 좋지만 그렇게까지 고생하면서 획득할 마음은 없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십자가 없는 부활이면 몰라도 십자가가 동반된 부활은 싫은 것이다.
하느님은 자유를 주시려고 광야로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었는데
그들은 인간적인 안위가 없는 광야가 싫은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을 원망할 때마다 매번 이집트를 그리워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하느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마련해 놓으신 약속의 땅, 자유인의 삶까지 포기하고 다시 돌아가고 싶어하는 이집트는 과연 무엇을 상징할까?
이집트는 세속 도시문화의 상징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못 견디게 그리워한 것은 세속적인 도시문화이다.
고기도 구워먹고, 술도 마시고, 한바탕 즐기고, 금송아지 앞에서 춤도 추는 그런 삶이다.
그들은 그런 삶을 그리워한 것이다.
그 증거는 다음 구절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줄까?(분명 하느님은 메추리 고기를 먹여주었건만)
이집트에서 생선을 공짜로 먹던 것이 기억에 생생한데. 그 밖에도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마늘이 눈에 선한(부추와 마늘이 정말 필요한 것인가?). (그런데)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이(놈의) 만나 밖에 없으니. (이놈의) 만나 때문에 입맛마저 떨어졌다."
(민수11,4-6)
얼마나 도시문화 중독이 무서운지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만나 때문에 입맛마저 떨어졌다고 불평한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었더니 보따리 내놓으란다고, 하느님께서 굶어 죽지 않도록 만나를 내려주었더니 그 만나 때문에 입맛마저 버렸다고 원망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하느님께 끊임없이 반항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은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자가 그 중독의 사슬을 끊지 못하는 것과 같다.
40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이집트라는 세속 도시문화에 철저히 중독된 야곱의 후손들이기에 광야가 자유인이 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광야가 주는 고통을 받아들이기보다는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 고기가마 곁에 앉아 떨어지는 음식을 주워 먹는 노예가 되기를 원한다.
자유인이 되기 위한 광야의 삶보다는 이집트의 삶이 훨씬 더 익숙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쾌락. 학벌. 명예 등 세속무노하 가치에 중독되어 살아가고 있다.
우리 대부분은 광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반항하면서 살아간다.
덧없는 것에 목숨을 걸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 대부분은 변화를 두려워한다.
우리가 있는 자리에 익숙해 있어 그 자리가 아무리 우리를 구속하고 비참하게 만든다해도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려고 한다.
광야를 지나는 동안 겪게 되는 고통이 싫어서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겠다고 발버둥치는 이스라엘, 곧 우리의 모습은 다음 이야기에 나오는,
줄에 묶였다 풀린 메추리 모습과 똑같다.
한 농부가 메추리를 팔고 있었다. 농부는 메추리의 발목을 가느다란 실로 묶고 그 줄을 막대기의 동그란 쇠에다 매어놓았다. 메추리들은 마치 방아를 돌리는 노새처럼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어떤 사람이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농부에게서 메추리를 모두 샀다. 그러고는 농부에게 새 발목에서 실을 풀어주라고 했다.
농부는 놀랐지만 하라는 대로 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메추리들은 날아가기는커녕 계속해서 그 자리에서 돌고 있었다. 할 수 없이 그 사람은 손을 휘저어 그 새들을 날려 보냈다. 하지만 메추리들은 얼마쯤 날아가는 것 같더니 다시 둥글게 앉아 도는 것이었다.
우리의 자유를 옭아매고 정신과 영혼 세계를 파괴시키는 중독증세에서 헤어나려면 몇 가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첫째, 자신의 광야, 즉 자기를 노예화시키는 중독증의 정체를 알아야 하고,
둘째, 그것이 나를 옭아매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인정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1960년대 유럽에서 유명했던 샹송가수 뤼시앵 뒤발은 예수회 신부이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로서 자살까지 기도했던 사람인데, 그가 알코올 중독에서 본격적으로 해방된 것은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 모잉'에서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하면서부터였다.
'이렇게 나이를 먹은 내게 가장 중요한 점은 '나는 뤼시엥이고, 알코올 중독자라는 것입니다.'"
왜 자신이 알코올 중독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그렇게도 중요한가?
그것은 그럴때에만 비로소 해방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셋째, 왜 내게 광야가 필요한지를 깨달아야 한다.
병적 증세에서 벗어나기를 거부하는 저항감이 거세게 밀려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중독자가 이를 악물고 참고 견뎌야만 중독증에서 벗어날 수 있듯이, 내가 병적으로 집착하고 있는 도시문화의 가치에 다시는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 광야를 참고 견뎌야 한다.
넷째, 광야의 삶이 힘겹더라도, 도저히 견딜수 없다고 생각되더라도 떠나온 과거를 다시 움켜쥐지 말아야 한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얼마나 자주 과거를 보았는가! 얼마나 자주 "우리가 이집트에 있었더라면 지금쯤"을 되뇌었는지 모른다.
"내가 이집트에 있었더라면 지금쯤..."이란 표현은 내가 광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광야의 삶이 고통스러울지라도 자꾸 과거를 되돌아보아서는 안 된다.
옛 속담에 "새벽이 오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란 말이 있다.
우리가 광야에서 가져야 할 마음자세는 약속의 땅에 대한 희망이다.
우리가 광야에 놓여진 것은 자유의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서이다.
이유 없는 고통이 없으며, 열매 없는 고통도 없다.
그러니 광야 삶이 힘겨울 때 과거지사를 자꾸 언급하면서 광야를 거부하기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여야 한다.
광야는 우리 정신과 영혼 세계를 파괴시키는 중독 증세들을 제거하는 곳이다.
그 동안 우리를 묶어왔던 족쇄들, 인이 박힌 마약들을 제거하는 시간이다.
광야에서 어떤 자세를 갖느냐에 따라 우리는 약속의 땅에 다다를 수도 있고,
광야의 미아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반항하지 말아야 한다.
광야를 은총의 장소로 받아들이고 그 시간을 은혜로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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