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는 시험과 유혹의 장소요, 분별의 장소
광야는 시험의 장소요, 유혹의 장소이다.
두 얼굴을 보이는 광야에서 '돌보심의 얼굴'을 바라보면 시험을 받지만
'고통의 얼굴'만 쳐다보면 유혹을 받게 된다.
이스라엘의 광야 삶을 보도하고 있는 성서 본문들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페이라조 또는 페이라오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시험하다' 또는 '유혹하다'라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어떤 이는 '시험'이나 '유혹'이나 그 말이 그 말이 아닌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같은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 가톨릭 신자들은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라 기도하고,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은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라 기도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두 단어는 서로 의미가 다르다.
'시험'은 적극적인 의미를 가지나 유혹은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영어로 시험은 test 이고 유혹은 tempt 이다.
시험은 하느님으로부터 오지만 유혹은 사탄에게서 온다.
야고보서는 "유혹을 당할 때에 아무도 '하느님께서 나를 유혹하신다'하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의 유혹을 받으실 분도 아니시지만 악을 행하도록 사람을 유혹하실 분도 아니십니다. 사실은 사람이 자기 욕심에 끌려서 유호을 당하고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가져옵니다."(야고 1,13-15)라고 말한다.
그렇다. 하느님은 인간을 유혹하는 분이 아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시험하는 분이시다.
그래서 시편 저자는 "주여, 저를 시험하소서. 내 은밀한 생각을 아시옵소서.
나쁜 길을 걸을세라 보아주시고 영원한 길을 따라 나를 인도하소서." (시편 138,23-24)
라고 기도한다.
시험이 하느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분명히 보이는 경우는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받은 시험이다.
"이런 일들이 있은 뒤에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셨다." (창세 22,1)
시험은 하느님께로부터 오고, 유혹은 어둠의 세력에서 오는 것이라면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라고 기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신앙을 단련시키고자 우리를 시험하시는데 하느님께 "저희를 시험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라고 기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가 하느님께 청하는 것은 어둠의 세력이 우리를 유혹할 때 그 유혹에 빠지지 않게 도와 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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