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는 우선순위(Priority)를 보는 장소
구약성서를 읽다보면 예언자들이 신앙을 저버린 이스라엘에게 자주 목소리를 높여 광야로 돌아가라고 외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느님은 호세아 예언자를 통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이제 나는 이스라엘을 꾀어내어 광야로 나가 사랑을 속삭여 주리라."(호세2,14)
"너와 나는 약혼한 사이. 우리 사이는 영원히 변할 수 없다. 나의 약혼 선물은 정의와 공평. 한결같은 사랑과 뜨거운 애정이다. 진실도 나의 약혼 선물이다. 이것을 받고 나 야훼의 마음을 알아 다오."(호세 2,19-20)
하느님은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해서도 당신을 저버린 이스라엘에게 돌아오라고 호소한다. "나 야훼가 하는 말이다.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나를 따르던 시절, 젊은 날의 순정, 약혼시절의 네 사랑을 잊을 수 없구나.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나에게 깨끗이 몸바쳤었지."(예레 2,2-3)
왜 하느님은 예언자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로 돌아가라고 호소하는가?
또 왜 초대 그리스도교회의 '사막의 교부'라 불리는 많은 구도자들은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구도생활을 하지 않고 생의 조건이 철저히 결여된 광야로 간 것일까?
사실 예수께서도 자주 광야에 나가 기도하셨다.
공생활 시작 전에도 광야에서 40일간 기도하셨고, 첫 사도직을 행하신 날도 새벽녘 광야에 나아가 기도하셨고, 열두 제자들을 뽑기 전에도 광야에 나아가 기도하셨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광야는 생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의 조건이 결여된 광야에 섰을 때 자기가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결국 모든 것이 하느님께 의존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느님께서 야곱의 후손들을 광야로 이끄신 것은 그들에게 생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였다.
하느님이 생의 근본임을 몸으로 철저히 체득하게 하기 우해서였다.
생의 기본 조건이 철저히 말살된 광야에서 야곱의 후손들이 살아 남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하느님뿐이었다.
광야라는 환경의 악조건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하느님만을 의지해야 했다.
광야에서 목이 탈 때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외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창자가 오그라드는 것 같았을 때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애원하는 것뿐이었다.
다른 부족의 침입을 받아 무서워 떨 때도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을 향해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 것뿐이었다.
그렇다! 하느님이 야곱의 후손들을 자유의 땅으로 인도하기 전에 광야길로 내몬 것은 그드릉ㄹ 양성시키기 위해서였다.
진실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었다.
광야의 악조건을 통하여 인간 생의 우선순위가 하느님뿐이라는 진리를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었다.
야곱의 후손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위한 인간적인 계획이 전져 통하지 않는 광야에서는 하느님 섭리에 온전히 의존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임을 교육받는다.
예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라. ...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마태 6,31-32)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 아버지께 우선순위를 두면서 살아갈 때 그분께서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들을 미리 헤아려 돌보아 주신다는 가르침을 광야에서 배운 것이다.
야곱의 후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광야는 삶의 우선순위를 가르쳐 주는 장소이다.
고통스런 삶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하느님께 우선순위를, 첫 자리를 내드려야 한다.
인간이 광야에서 무엇이 우선인가를 알아본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깊은 고통중에 궁극적으로 만나게 되는 분은 하느님이요, 선택하게 되는 것은 신앙이다.
예를 들어 자녀 때문에 광야에 헤매는 분들은 그 광야로 인해서 하느님께 우선순위를 드리게 된다.
자녀가 반항하고, 불량배들과 어울리고, 마약을 하는 등 자식으로 인해서 고통을 겪는 부모들은 그 고통 때문에 하느님을 우선순위로 만나게 된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 때문에 속을 태운다.
아이들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럴수는 없다.
이미 말했듯이 인생이 힘겨운 것은 만사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녀를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면 할수록 절망과 고통은 커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고통을 겪는 중에 깨닫게 되는 것은 '자녀가 더 이상 자기 자녀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라는 진리이다.
하느님만아 자기 아이의 참 보호자란 것을 깨닫게 된다.
비록 자신이 자녀들을 낳고 기르긴 했지만 자기의 소유가 아님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사랑을 줄 수 있어도 부모의 생각까지는 줄 수 없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육체를 줄 수 있으나 영혼을 줄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우선순위를 깨닫게 될 때 비로소 부모는 자녀를 놓을 수 있게 된다.
많은 부모들이 멀어져 가는 자식 뒤를 쫓아 가면서 괴로워한다.
그러나 멀어져 가는 자식을 쫓아갈 필요는 없다.
로맹 롤랑은 말한다.
"인생이란 경마장 같은 것, 그것은 원형으로 돌아가기에 자식 뒤를 쫓아가면 쫓아갈수록 자식은 부모에게서 멀어져 갈 것이다. 하지만 자식을 쫓아가지 말고 가만히 제자리에 서서 기다려 보라. 기다리고 있노라면 멀어져 갔던 자식은 부모가 서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생의 광야를 부정적으로 본다.
하지만 광야는 우리 영혼에게 참으로 귀한 것이다.
광야는 우리 생에서 가장 귀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보물과 같은 것이다.
가브리엘 마르셀은 "내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병고와 가난이다." 라고 말하였다.
이런 말을 한 마르셀은 미친 사람인가?
만약 마르셀이 미친 사람이라면 구도생활을 한다고 광야로 나간 사막의 교부들도 다 미친 사람일 것이다.
또 수시로 광야에 물러가 기도하신 예수님 역시 미친 사람일 것이다.
이들은 모두가 사서 고생하기 위해 광야로 간 이들이다.
척박함과 고독의 자리를 일부러 찾아간 이들이다.
그렇다면 가브리엘 마르셀은 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병과 가난이라고 한 것일까?
그것은 그가 광야 체험을 통하여 하느님을 생의 첫 자리에 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부정적으로 여겼던 광야는 사실은 귀한 보물과 같은 것이다.
광야는 우리를 깨들음으로 초대한다.
먹고살기에 바빠서 인생의 의미나 진리의 세계를 추구할 엄두조차 못 내고 있는 우리에게 광야는 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라고 초대한다.
고마타 싯다르타의 출가 동기가 어디에 있었는가?
인간의 생로병사. 광야를 보고 나서가 아니었던가!
우리 모두가 생로병사라는 광야를 직접 체험하면서 살아가지만 싯다르타와 같은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구도적 삶에 나서는 것은 어인 일인가?
왜 싯다르타와 같은 소수의 사람들만 이 생로병사라는 광야 앞에서 자유와 해방을 맛보는가?
어인 일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똑같은 광야를 거닐면서도 광야의 미아가 되어 방황하다 허무하게 죽어가는가?
싯다르타는 시들어 가는 육신에서 인생의 허무를 보았지만 우리는 가는 세월을 감추려 온갖 값비싼 화장품을 발라댄다.
싯다르타는 병으로 신음하는 인간을 보면서 생의 본모습을 깨달았지만 우리는 병들지 않고 오래 살겠다고 건강식품에, 보약에, 온갖 것들을 사먹는다.
싯다르타는 죽음 앞에서 인생의 무상을 깨닫지만 우리는 고개를 돌리면서 언젠가는 스러질 목숨을 애써 외면하려 한다.
이 세상은 광야임을 깨달아야 한다.
인생이 광야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덜 중요한 것을 포기할 수 있다.
덧없는 것에서 손을 놓을 수 있다.
인간관계가 중요한 사람, 명예가 중요한 사람, 자식이 중요한 사람, 자리가 중요한 사람, 이런 사람들은 그 중요하다는 것 때문에 짧고 귀한 생을 힘들게 살아가다 마음의 고통이 극에 달할 때야 생의 우선순위를 깨닫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광야는 우리 영혼에게 귀한 것이요, 해방을 위한 '초대'이다.
야곱의 후손들이 하느님을 우선순위로 택하고 그분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광야로 초대됐듯이 우리도 허망한 것들은 다 떼어버리고 가장 중요한 것을 선택하라고 광야에 초대되었다.
하느님의 가치 세계를 선택하라고 광야에 초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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