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송봉모 신부님

[스크랩] 책 <광야에 선 인간> - 광야의 존재 목적

김레지나 2011. 1. 12. 23:35

광야는 과정 (Process)

 

이집트를 탈출한 야곱의 후손들이 광야길을 걷게 된 것은

하느님 계획에 의한 것이다.

하느님 친히 노예살이를 하던 땅인 이집트에서

자유의 땅인 가나안으로 건너가는 중간에 광야길을 거치도록 마련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광야는 과정이 된다.

자유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중간 과정이다.

 

이 과정은 단순히 공간적. 시간적 차원의 중간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 자체가 변화를 겪는 거듭남의 과정이다.

수백년간 이집트에서 노예살이를 하다가 탈출한 야곱의 후손들이 즉시 하느님 백성,

이스라엘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리가 바뀌었다고, 또는 시간이 경과했다고 하느님 백성이 되는 것은 아니다.

외적인 상황이 바뀌었다고 사람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듯이 말이다.

펜을 바꾼다고 해서 글씨체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듯이,

야곱의 후손이 이집트의 노예살이를 그만두고 떠났다고 해서

대뜸 하느님 백성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야곱의 후손들이 이스라엘이 되기 위해서는 존재 자체가 거듭나는 자기 정화와 자기 정립의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이것이 광야가 근본적으로 갖는 적극적 의미이다.

광야는 존재 자체가 변화를 겪는 거듭남의 과정이다.

야곱의 후손들이 하느님의 백성이 되고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광야를 거쳐야 했듯이 우리도 하느님의 사람이 되고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광야를 거쳐야 한다.

그러니 지금 나의 생을 황폐하게 만들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광야라고 할지라도 내가 자유인이 되고 하느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광야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인 것이다.

 

도대체 광야에서 야곱의 후손들이 어떤 일들을 체험하였길래 광야는 존재 자체가 거듭나는 자리가 되는가?

야곱의 후손들은 광야에서 그들에게 익숙했던 이집트 세계를 버려야만 했다.

수백년간 이집트 문화에 젖어 살아온 사람들이 즉시 야곱의 땅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그들이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되기 위해서는 몸에 묻어 있는 이집트의 잔재들을 털어버려야 했다.

 

그렇다면 이집트란 어떤 의미가 있는가?

3000년 전 이집트는 오늘날 최고의 경제적. 군사적 힘을 자랑하는 미국이나 일본 이상의 강대국이었다.

이집트는 당시 가장 큰 부(富)와 군사적 힘, 그리고 세계 최고의 문명을 드날리던 나라였다.

이러한 나라에서 수백년간 노예살이를 한 야곱의 후손들이 하루아침에 세속적 가치가 아닌 하느님의 가치를 받아들여 살 수는 없다.

하느님의 새로운 가치를 배우기 위해서 그들은 이집트라는 옛 가치를 버려야만 했다.

그러므로 광야는 과거 삶의 양식을 버리고, 과거의 인생관을 버리고 새로운 세계의 양식과 인생관을 찾기 위한 과정이다.

 

구약성서의 '출애굽'은 '이집트에서 탈출'이란 말을 줄인 것이다.

그리스어로 '출애굽'은 엑소도스이다. 그 의미는 그동안 살아왔던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길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과거의 삶의 양식과 인생관을 버리고 새로운 삶의 양식과 인생관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이다.

 

출애굽의 그리스어 엑소도스가 시사하듯이,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하느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과거의 인습과 과거의 자아를 버려야 한다.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새로운 무엇을 더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안주해 왔던 세속 중심의 삶을 버리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비가인 에크하르트는 "하느님깨 도달하는 과정은 영혼에 무엇을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 묻은 그 무엇을 털어내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렇다!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덧붙이거나 행할 필요는 없다.

우리 영혼에 묻은 그 무엇인가를 털어내야 할 뿐이다.

이 점은 어느 고승의 시와도 일맥상통한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이 시는 반복해서 '벗어놓고'란 단어를 쓰고 있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 엑소도스를 한다는 것과 그 무엇인가를 털어낸다는 것과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간다는 것은 다 같은 말이다.

얼마나 놀라운 일치인가!

출애굽기 저자는 유다인이며, 에카르트는 그리스도인이고, 위의 시를 쓴 사람은 불교인이지만 셋 다 일치된 발언을 한다.

셋 다 진리를 추구하는 이들로서 진리 추구의 삶, 구도의 삶에서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공통되어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 영혼에 묻어 있는 인욕의 때를 벗어버리는 것이다.

영혼에 묻은 그 무엇을 털어낸다는 것은 자기의 한 부분을 부수는 행위이다.

이런 점에서 광야는 자기가 부서지는 자리다.

새로운 가치관을 위해서 지난날의 가치관을 버리고 부서지는 시기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존재 자체의 변화를 겪고,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고,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과거를 부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을 죽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날의 내가 죽고, 내가 영위해 왔던 인습에 죽는 것이다.

이집트에서 400년을 살아온 야곱의 후손들이 그 동안 생명처럼 여겨왔던 것들을 포기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었겠는가!

그래서 출애굽기를 읽다 보면 야곱의 후손들이 얼마나 자주 이집트를 그리워하며, 자기들을 광야로 이끌어 낸 하느님을 원망하는지 보게 된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려서부터 이 세상의 가치관을 지니고 살아온 우리가 광야에서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자신의 과거를 버리라는 요구를 받는다면 우리는 크게 반항할 것이다.

익숙해져 있는 과거를 버린다는 것이 쉽지 않기에 광야를 피하거나, 거부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광야를 받아들이고 새롭게 태어나지 않는 한 우리는 광야의 미아가 되어서 계속 해맬 것이고, 참 자유인의 기쁨이나 해방은 영원히 맛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광야에서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대면하여, 버릴 것은 버리고 부수어 버릴 것은 부수어 버린다면 우리는 새로운 삶으로 태어나게 될 것이다.

 

 

 

출처 : 퍼렁별나라공쥬님의 블로그
글쓴이 : 찬미예수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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