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길
어째 내 유일한 인생을
아침이면 피었다가
한낮이면 사라지는 나팔꽃도
한껏 피었다가 지거늘
어찌 내 유일한 인생을
꽃피우지 않으랴!
우리 유일한 인생을 활짝 꽃피우며 살아갈 수 있는 길과 영성이 있다면
어떠한 노력을 들여서라도 획득해야 하리라.
금세기 뛰어난 영성가의 한 분으로 토머스 머튼 신부가 있다.
그는 가장 엄격한 봉쇄 수도회인 트라피스트회 회원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절대적 침묵과 고독 안에서 구도생활을 한 머턴 신부가 가르치는 영성은
놀랍기 그지 없다.
그에 의하면 영성은 세상과 격리된 봉쇄 수도원이나 고요한 피정 집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시정(市井) 한복판, 구체적 삶의 자리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하느님을 찾고, 이 자리에서 고통과 기쁨을 겪으며 살아가면서
영성생활을 해 나가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하느님을 찾고자 한다면 자기 자신 안으로 깊이 들어가 참 자신을 만나고,
세상 안으로 깊이 들어가서 세상 일들, 곧 우정을 맺고 정의롭게 살고 비신자 사이에서 하느님을 찬미하고 복음을 전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머턴 신부에게 참 자신과의 만남은 곧 하느님과의 만남이다.
우리가 참된 자아를 만나게 될 때 하느님과 다른 사람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사물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며 깊은 일치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하느님을 찾고, 자기 자신이 되어 살아가는 것은 곧
'지금 이 순간의 성스러움'을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섬기는 하느님이 일상도의 하느님이라면 이러한 하느님을 섬기면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영성은 당연히 일상도의 영성일 것이다.
하느님이 일상도의 하느님이란 점은 그분의 이름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야훼라는 이름은 '나는 있는 자로서이다.' 이다.
'나는 있는 자로서이다.' 이신 하느님은 어제와 내일을 모르시는 분이다.
오늘만을 아시고, 지금 이 순간만을 아시는 분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주님의 기도에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고 기도하라고 하신다.
일상도의 하느님께 어떻게 "내일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고 기도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일상도의 하느님을 지금 이 자리에서 체험하면서 '지금 이 순간의 성스러움'을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길이요, 영성의 길이다.
일상도를 살아가는 인간의 길을 좀더 깊이 알기 위해서 시편 1편을 묵상해 보자.
이 시편은 지금 이 순간의 성스러움을 살아가는 삶이 바로 인간의 길, 인간이 걸어야 할 길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복되어라, 사람이여.
악인의 조건을 걷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머물지 아니하고
교만한 이들의 모임에 앉지 않는
사람이여!
야훼의 법을 낙으로 삼아
밤낮으로 그 법을 되새기는 사람,
그는 냇가에 뿌리를 내린 나무 같아서
잎사귀 시들지 아니하고
철 따라 열매를 맺으리
그가 무엇을 하든 잘되리라.
악인은 그렇지 아니하니
바람에 까불리는 겨와도 같아
야훼께서 심판하실 때에 다리를
세우지 못하고
죄인이라 의인들 모임에 끼지도 못하리라.
하느님이 의인의 길은 보살피나
악인의 길은 멸망에 이른다.
시편 1편을 열고 닫는 단어는 '길'이다.
"죄인의 길에 머물지 않으며"가 처음에 나오고,
"하느님이 의인의 길은 보살피나 악인의 길은 멸망에 이른다"로 끝을 맺는다.
길은 생명체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동물의 왕이라 불리는 호랑이는 숲의 주인이지만 아무 길이나 다니지 아니하고
꼭 자기가 다니는 길로만 다닌다고 한다.
또 밤하늘에서 빛나는 수많은 별들도 언뜻 보기에는 한 곳에 붙박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궤도에 따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어떠한가?
각 종교는 불교이든 유교이든 그리스도교이든,
그 종교를 믿는 신자들이 걸어가야 할 길은 분명히 제시한다.
불교 신자들은 팔정도(八正道), 곧 여덟개의 바른 길을 걷도록 초대된다.
팔정도란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직업 - 계 (戒 - 경계할 계)
바른 묵상, 바른 관상, 바른 정진 - 정 (定 - 정할 정)
바른 시각, 바른 생각 - 혜 (慧 - 지혜 혜)
이다.
유가에서는 중용(中庸)의 도를 가르친다.
인간이 소이(所以), 인간된 바를 따라 살아가려면 중요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길을 걷도록 초대받는가?
'인간의 길'이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걸어가야 할 길이 인간의 길 이외에 다른 길이 어디 있겠는가?
이제 시편 1편을 한 구절 한 구절 묵상하면서 인간의 길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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