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송봉모 신부님

[스크랩] 시편 23의 주석학적. 인간학적 이해 - 내 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

김레지나 2011. 1. 12. 23:29

시편 23의 주석학적. 인간학적 이해

 

내 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어라

 

신앙이란 신비스런 체험이나 환시,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은 것이 아니다.

신앙이란 하느님은 참으로 존재하시는 선하신 분이고, 그 하느님이 나를 사랑으로 창조하셨으며, 나를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특히 어두운 시간에 나를 안아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영성 중에서 가장 보배로운 영성은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확신하는 것이다.

그 까닭은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한다는 것은 구세주의 이름이기도 하고,

구세주의 영원한 약속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다.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마태 1,23)

임마누엘은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임마누엘이신 구세주께서 구원사업을 다 마치시고 하늘로 승천하실 때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약속하셨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그러니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은

시련의 시기에 가장 큰 보호자를 갖게 되는 것이다.

 

아프리카 어느 부족에서는 아들이 어느 정도 자라 성인식을 치를 때가 되면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칠흑같이 어둔 밤 밀림 속으로 가 칼 한 자루만을 주고 돌아온다.

아들은 밀림 속에서 혼자 밤을 지새워야 하는 것이다.

맹수들의 울음소리, 풀벌레 소리,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두려움에 떨면서 뜬눈으로 긴긴 밤을 보내게 된다.

그렇게 밤이 가고 어렴풋이 주위를 분간할 수 있는 시간이 오면

아이는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왜냐하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아버지가 완전무장을 하고 자기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는 '아하, 나는 혼자서 무서운 밤을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아버지가 내 옆에 함께 계서 밤새 나를 돌보아 주었구나.' 하고 깊이 깨닫게 된다.

그후 그 아이는 어디를 가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비록 아버지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항상 자기를 지켜봐 주고 돌보아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내가 얼마나 강한 인간인가?"가 아니라,

"우리의 하느님이 얼마나 강하신 분인가?" 이다.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하느님의 생이 굽이굽이에서 우리를 돌보고 계심을 믿는다면 한결 안심하게 될 것이다.

 

출처 : 퍼렁별나라공쥬님의 블로그
글쓴이 : 찬미예수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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